"민주당의 어머니는 전라도 호남입니다."
9일 강원 횡성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 합동연설회. 강원지역 당원들을 상대로 마련된 자리였지만 정청래 후보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호남을 향했다. 강원 현안이나 공약은 꺼내지 않았다. 대신 "호남은 민주당의 어머니"라며 거듭 지지를 호소했다.
'어머니' 18번, '호남' 7번
정 후보는 자신의 친어머니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했다.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충남으로 시집온 어머니에게 과거 공천 탈락 당시 거취를 물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전남 강진 출신인 아내의 가족사도 꺼냈다.
개인적인 '어머니' 이야기는 곧 "민주당의 어머니는 전라도 호남"이라는 말로 이어졌다. 이후 '어머니'는 사실상 호남 당원들을 부르는 호칭이 됐다.
정 후보는 윤석열 정부 당시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싸웠던 이력을 강조하며 "어머니, 제가 반명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어 "민주당의 어머니들, 호남의 어머니들, 아버지들 저에게 대답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이날 정 후보의 연설에서 '어머니'라는 표현은 모두 18차례, '호남'은 7차례 등장했다.
지역 정책을 이야기할 때조차 강원이 아닌 호남이었다. 정 후보는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약속하며 "속도전, 추진력, 돌파력은 어머니, 저 정청래가 제일 잘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까지 호남이었다.
정 후보는 "대전에서, 대구에서, 부산에서, 강원도에서, 서울에서, 경기에서 이 노사모들이 호남으로 달려간다"며 "이재명 대통령과 당의 의리를 제가 지켰다. 이제 당원들께서 저를 지켜달라"고 했다.
강원 공약 쏟아낸 김민석·송영길과 대조
다른 후보들의 '지역 밀착형' 연설과는 대조됐다.
김민석 후보는 춘천·원주 바이오 산업 육성, 강릉 ITS 세계대회 지원 등 강원 현안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당대표 취임 뒤 첫 현지 상주지역으로 강원을 선택하겠다며 "내년 4월 강릉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했다.
송영길 후보 역시 남북으로 갈라진 강원 고성을 거론하며 '강원 평화경제특구' 구상을 내놨다. 정 후보의 연임 도전을 향해서는 "두 번 세 번 끓여 맛이 안 나는 뼈해장국"이라고 비유하며 날을 세웠다.
송 후보와 김 후보가 자신의 정치적 구상을 강원 현안과 접목한 것과 달리, 정 후보는 강원 연단을 사실상 호남 당원들을 향한 호소의 무대로 활용한 셈이다.
강원 3%보다 호남 33%…시선은 '다음 승부처'로
정 후보의 이런 연설에는 경선 판세에 대한 계산이 깔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강원지역 권리당원은 약 4만5천명으로 전체의 3% 수준이다. 반면 전북·광주·전남 등 호남의 권리당원은 전체의 약 33%에 달한다. 38%가 몰려 있는 서울·경기 표심도 호남과 분리될 수 없다.
당장 강원 현장보다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최대 승부처인 호남 당원을 공략하는 편이 표의 효율만 놓고 보면 훨씬 유리한 것이다.
초박빙으로 흐르는 경선 상황도 정 후보의 선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경쟁자인 김민석 후보 등은 최근 정 후보를 향해 '반명'과 '분열주의' 공세를 집중하고 있다. 정 후보 역시 누적 득표율에서 추격을 허용하며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날 연설에서 정 후보가 "이재명의 짝꿍이자 법사위원장인 제가 왜 반명입니까"라고 호소한 것도 이런 공세를 정면으로 의식한 발언이다. 자신을 '이재명과 함께 싸워온 사람'으로 다시 각인시키고, 민주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에 정치적 정통성을 호소한 것이다.
'어머니'라는 호칭도 그 연장선에 있다. 정책이나 노선보다 자신의 이력과 '의리'를 앞세우고, 호남을 '어머니'로 부르며 지지를 호소하는 감성적 메시지를 택했다.
정 후보의 시선이 강원이 아니라 다음 승부처인 호남을 향해 있었던 셈이다.
다만 이런 선택에는 대가도 따른다. 호남의 정통성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정작 강원 당원들을 위한 연설회에서 지역 현안을 사실상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강원에서 열린 연설회였지만, 정 후보가 이날 가장 간절하게 부른 이름은 '강원'이 아니라 '호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