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누르기 막는다면서 코로나 때 가격이 기준?…빠져나갈 구멍 '숭숭'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일명 '주가 누르기 방지법' 내용이 담겼지만 지나치게 촘촘한 조건을 달면서 오히려 편법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가를 낮추려는 유인을 없애려면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5일 VIP자산운용은 이번 세제개편안에 주가 누르기 방지법 내용이 담긴 것 자체는 진전이지만, 상속·증여 시점의 순자산가치를 최소 평가 기준으로 도입해 정부안을 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상장주식의 상속·증여세는 상속·증여 시점 전후 2개월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계산한다. 주가가 낮을수록 지분 평가액과 세금이 함께 줄기 때문에 승계를 앞둔 최대주주는 주가를 낮게 유지할 유인이 생긴다.
이번 정부안은 현재 평가액에 30%를 더한 금액과 과거 6개월부터 최대 6년 6개월까지의 평균 주가 가운데 가장 높은 금액을 적용한다. 과거 주가가 높았던 기업은 평가액이 올라가므로, 단기간 주가를 떨어뜨려 세금을 줄이는 효과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주가가 낮았다면 과거 평균도 낮다. 눌린 주가에 30%를 더해도 기울어진 저울에 추 하나를 얹는 데 그칠 수 있다. VIP자산운용 측은 "'짧게 누른' 주가는 보정할 수 있지만, '오래 눌린' 주가에는 효과가 제한적이다"라며 "주가 누르기를 막겠다면서 눌린 주가를 다시 기준으로 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주가는 정상가격 아냐…산업 변화 반영 못 해
정부안은 현재 주가가 승계를 위해 낮아져 있는 것이 문제이므로, 과거 주가까지 평가 기간을 확대해 보정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하지만 이는 기업이 상속·증여 시점에만 일시적으로 주가를 누른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다. 통상 승계를 염두에 둔 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의 주가는 상시로 눌려 있다. 과거의 눌린 주가를 평균해도 정상 가격이 되지는 않는다.
6년 반이라는 긴 평가 기간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그 사이 업황이 바뀌거나 주력 사업이 전환되고, 인수합병으로 사업 구조가 재편되는 등 기업의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코로나19 확산기에는 진단키트 수요가 급증하면서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단기간에 크게 올랐다. 만약 이들 기업이 지금 상속·증여를 한다고 해서, 코로나19 특수기의 주가를 기준으로 반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또한 현재 반도체 호황기를 지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6년 후에 평가할 때 지금의 주가를 반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VIP운용은 "결국 6년 반 전 주가는 '정상 가격'이라기보다,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가격"이라고 짚었다.
현시점 순자산가치가 기준 되어야… 평가 방법 간소화 필요
VIP운용은 과세 기준을 과거 주가가 아니라 상속·증여 시점의 실제 기업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가를 낮춰도 세 부담이 줄어들지 않도록 제도 자체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가 누르기의 경제적 유인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대안으로 발의된 이소영·이훈기 의원안은, 시가평가액이 순자산가치의 80%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순자산가치의 80%를 최소 평가액으로 삼는 비상장주식 평가 방법에 따라 기업가치를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김민국 VIP운용 대표는 "현장에서 많은 상장회사 실무담당자들이 비상장주식 평가 방법을 적용하는 데 따른 시간과 비용 부담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그럼에도 해법은 평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성이 낮은 자회사에 대해서는 장부가액 사용을 허용하는 등 평가 절차를 합리적으로 간소화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순자산 기준 5% 미만의 자회사는 회계상 장부가액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SK그룹 지주사 SK처럼 자회사가 많은 경우에도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핵심 자회사만 제대로 평가하면 전체 기업가치 대부분을 반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효성 있는 주가 누르기 방지법, 증시 양극화 해소 가능
VIP운용은 정부안이 '의심 기업을 선별해 눌린 주가를 보정하는 방식'이라면, 이소영·이훈기 의원안은 '주가를 낮춰 얻는 절세효과 자체를 없애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몇몇 기업을 사후적으로 적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 전체의 행동을 바꾸는 제도가 되려면 주가와 독립된 최소 평가 기준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단순히 상속·증여세 제도를 손질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대주주가 기업가치를 낮출수록 세금이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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