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1년 연봉’서 이젠 500만원…총선 기탁금의 정치학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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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모두 1430명의 후보가 300개의 의석을 차지하기 위한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20대 총선 당시 158명이던 비례대표 도전자가 307명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난 게 큰 차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국민의당 등 비례대표 후보만 낸 정당이 35개나 출현한 것도 큰 이유지만 비례대표 후보가 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내야하는 기탁금이 3분의1(1500만원→500만원)로 줄어든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허경영당' 기탁금 납부 2위
'25세 이상'(공직선거법 16조 2항)이면 금배지 도전에 별다른 제한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기탁금은 사실상 유일한 진입장벽이다. 21대 총선의 본선 도전을 위해 지역구 후보는 1500만원, 비례대표 후보는 500만원의 기탁금을 내야 했다. 지역구 후보는 15% 이상 득표하면 자신이 납부한 기탁금 전액을, 10~15%를 득표하면 반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비례대표 후보가 낸 기탁금은 소속 정당이 1명 이상의 당선인을 배출하면 전액 돌려받게 된다. 선관위에 올해 걷힌 기탁금 총액은 약 183억원에 달한다. 가장 많은 기탁금을 낸 정당은 253개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낸 더불어민주당(37억9500만원)이다. 2등은 지역구에 235명과 비례대표에 22명을 공천해 36억3500만원을 낸 '허경영당'(국가혁명배당금당)이다. 미래통합당의 지역구 후보 237명이 낸 돈은 모두 35억5500만원이다.
기탁금이 처음 등장한 건 1960년 5대 총선이다. 그 전엔 ‘200인 이상의 추천’만 있으면 입후보할 수 있었다(1948년 제정 국회의원선거법). 의원내각제와 양원제가 도입되면서 민의원(미국의 하원의원에 해당)은 30만환, 참의원(상원의원에 해당)은 50만환을 내야 후보 등록을 할 수 있게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1960년 제조업 상용 근로자 평균 월급이 2만6000환 정도였다. 민의원 기탁금은 웬만한 근로자 1년 치 급여보다 많은 돈이었다. 화폐개혁 이후인 1963년 처음 출시된 삼양라면의 가격은 10원이었다.
기탁금이 왜 도입됐고, 왜 30만환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제헌국회부터 지금까지 회의록을 다 찾아봤지만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며 “1960년 법 개정 당시 회의록에 어떤 의원이 ‘나는 선거운동에만 50만환 쓰고 당선됐는데, 기탁금이 30만환이면 내 친구는 입후보도 못 한다’고 묻자 정부 관료가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정황이 남아 있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장벽 높인 박정희·전두환
‘30만환’의 기탁금은 3년만인 1963년 사라졌다가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도입한 직후 부활했다. 정당추천은 200만원, 무소속은 300만원으로하는 기탁금 차등제가 도입된 것도 이 때다. 이 금액은 5년 뒤 각각 300만원과 500만원으로 올랐다. 오를 때마다 회의록엔 ‘선거문화가 혼탁하여’ '공명선거문화 창달을 위한' 등의 이유가 붙었다.
전두환 정부는 1981년 선거법 개정으로 기탁금을 정당 추천 700만원, 무소속 1500만원으로 2배 넘게 올렸다. 당시는 삼성전자 대졸 연봉이 500만원, 강남 은마아파트 31평 한 채가 2500만원이던 시절이다. 서 연구원은 “당시 개헌 논의 등이 담긴 국회 회의록에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가 가택연금 등으로 야당 정치인의 발을 묶는데 부담을 느낀 정황들이 남아 있다”며 “대신 '돈'으로 경쟁세력 앞에 진입 장벽을 세우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탁금 장벽의 높이는 민주화 이후 첫 총선이었던 1988년 13대 총선 때 최고(무소속 2000만원, 1000만원)였다. 민주화 바람을 타고 재야 출신들이 대거 제도권 진출을 시도할 것을 걱정했던 거대 여야가 합의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 도전자의 수는 1043명으로 12대 총선(440명)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된 한겨레민주당(63명)·민중의당(16명) 등이 등장했고, 무소속 후보(111명)가 쏟아져 나온 결과였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처음 도입된 소선거구제가 당시엔 신생 정당들에게도 해볼만한 싸움처럼 여겨졌다"고 말했다.
기탁금 장벽에 균열 낸 헌재
기탁금의 벽을 허물기 시작한 건 헌법재판소였다.1989년 헌재는 당시 '정당추천 후보자 1000만원, 무소속 후보자 2000만원'이던 기탁금에 대해 “평등보호원칙과 참정권을 침해하고, 정당인과 비정당인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1991년 국회는 모든 국회의원 입후보자가 1000만원을 내도록 선거법을 개정했고 그 결과 1992년 14대 총선 때는 무소속 출마자가 225명으로 2배(13대 111명) 늘어났다.
1994년 현행 공직선거법이 만들어진 후에도 입후보자 수는 기탁금 액수의 등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다시 2000만원으로 2배 오른 2000년 16대 총선 도전자는 15대 총선 때보다 348명 줄어든 1038명이었다. 특히 15대 때 394명이었던 무소속 후보의 수는 반토막(202명)이 났다. 이는 또 한 번 헌재가 개입하는 계기가 됐다. 유재건 민주당 의원과 신장식 민주노동당 후보(현 정의당)가 낸 헌법소원에 대해 2001년 헌재는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응답했다. "손쉽게 조달할 수 없는 금액이고 반환기준도 과도하게 높아 입후보를 가로막고 있다"는 이유였다.
기탁금은 17대 총선부터 1500만원으로 조정됐다. 이 금액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2003년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기탁금이 3분의 1(1500만원→500만원)로 줄어든 것도 헌재 결정의 영향이었다. 2015년 녹색당이 “비례대표 후보자가 내야 하는 고액 기탁금이 정치 진입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지 못한다”며 헌법소원을 냈고, 2016년 또 한번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진입장벽 없앨 때"vs"아직은 필요"
지역구 기탁금 1500만원은 1981년과 같은 액수다. 그간의 경제 성장을 감안하면 진입장벽은 크게 낮아진 셈이지만 기탁금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달 27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기탁금 1500만원이 참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다시 제기했다. 조희정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후보 난립을 막아야 한다는 게 당위가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며 “기탁금은 없애고 다른 제도적인 장치로 입후보의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복경 연구원도 “그나마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행정대집행 비용’ 개념으로 기탁금을 내는 영국도 180만원 수준”이라며 “1500만원은 행정비용이라기엔 여전히 과도한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액수가 소수세력 정치 진입의 걸림들이 될 정도여서는 안 되겠지만 아예 없애는 건 선거의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연·임장혁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