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총선 즈음 노사모에서 싸리비라 불리우던 정청래와 미키루크 이상호는 국민의힘이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하는 후보들의 검증을 하겠다고 나섰고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출마 후보들에 대한 검증을 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청래가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섰고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왜 갑자기 심판이 선수로 출전하느냐 출마를 포기하라고 했으나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비굴하게 아부하며 한번만 봐달라 했고
끝내 출마해 소위 탄돌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탄돌이로 국회의원이 된 정청래는 이상호 명계남과 국참연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는데
국참연을 만든 이유는 친노그룹에서 유시민의 영향력이 강해지자
유시민을 견제하고 자신이 주군으로 섬기던 정동영을 차기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여기서부터 정청래의 반노질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정청래는 노대통령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를 했고 2006년 한미 FTA가 추진되자
정청래는 협상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며 심지어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도 앞장서서 참여하기도 했다.
대선 시즌이 되자 정청래는 정동영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 위해 더 더욱 노무현을 철저히 밟았고
정동영이 대통령 후보가 됐으나 이명박에게 완패를 당했다.
낙향해 봉하마을에서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던 노무현은 봉하마을에서 국민들의 큰 인기를 끌었고
수많은 일반인들이 찾아오고 정치인들 또한 노무현의 인기에 편승해 봉하마을을 찾았다.
그러다 노무현이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했고 검찰에 소환되는 등 어려움을 겪자 봉하마을을 찾던 청치인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노무현은 철저히 고립됐고 거의 모든 정치인은 노무현을 외면했다.
서거 직전 노무현 주변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극소수였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손가락으로 꼽히던 극소수의 사람들이 봉하마을에 장례식장을 급조해 만들었고
몇 몇 정치인들이 찾아 왔지만 정청래는 끝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로 정동영, 이상호는 욕먹을 각오하고 봉하마을에 왔지만
욕먹을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정청래는 결국 오지 않은 것이다.
난 지금도 사람들에게 멱살 잡혀 울부짖던 이상호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멱살 잡힌걸 내가 말렸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중반 이후부터 반노질로 일관했고 장례식장에도 찾아오지 않은 정청래가
퇴임사에서 노무현을 언급하는 것을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함을 느꼈다.
노무현이 힘들때는 철저히 외면하다 이제와서 노사모 운운하고 노무현팔이를 하며
친노 표를 얻으려는 정청래는 결코 노무현의 이름을 거론할 자격이 없다.
물론 노무현과 이재명은 전혀 다른 인물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 뒷통수 까는 행위 자체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지 버릇 개 못주는것 같다.
정청래가 당 대표 출마를 하건 뭘 하건 내가 알 바 아니지만 그 입에서 노무현의 노자도 꺼내지 말기 바란다.
더럽다.
https://www.facebook.com/share/p/1LCoK5HM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