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헌법에 명시된 '긴급재정명령권'을 언급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이 조항을 언급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긴급한 경우 헌법이 정한 긴급재정명령을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장기화로 인한 ‘중동 쇼크’에 에너지 수급 위기가 심화 중인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긴급재정명령 언급은 '비상 국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체적인 맥락에서 나왔다. "'법 때문에 안 되는데 어떡하냐'고 하지 말고, 현재의 제도나 법령의 제한을 극복할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며 ""입법도 대체할 수 있는 긴급재정명령 제도가 헌법에 있지 않나"고 언급한 것이다. 기존 법령 절차가 위기 대응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이를 건너뛸 수 있는 수단으로써 명시적으로 거론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필요하면 법도 바꾸고 시행령도 바꾸고 지침도 바꿀 수 있다. 법적으로 허용되는 행위는 관행에서 벗어나더라도 할 수 있다"며 "뭔가 걸리는 게 있으면 각 부처에서 끌어안고 고민하지 말고 국무회의로 가져오거나 대통령실로 가져오라. 비상 입법을 해서라도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긴급재정명령이 뭐길래…‘국회 건너뛰는’ 대통령의 경제 비상권한
긴급재정명령은 쉽게 말해 '대통령이 국회 없이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명령을 즉각 내리는 권한'이다.
헌법 76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대통령이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해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발동 요건은 엄격하다.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라는 단서조항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단독으로 발동할 수 있지만, 국회의 사후 통제를 피할 수 없다. '지체 없이 국회에 보고하여 그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국회의 승인을 얻지 못한 때에는 그 처분 또는 명령은 그때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현행 헌법 체제에서 단 한 번, 1993년 금융실명제가 유일
긴급재정명령이 실제로 발동된 역사적 선례도 존재한다. 정부 수립 후 발령된 긴급명령은 총 16건으로, 1~14호는 한국전쟁 당시 발령됐으며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당시 1차 오일쇼크로 사채 이자 감면과 부채 상환을 유예하는 일명 '8·3 사채 동결 조치'도 긴급재정명령의 형태로 이뤄졌다.
‘87년 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 체제에서 긴급재정명령이 발동된 것은 단 한 번,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선포가 유일하다. 당시 정부는 국회 논의 과정이 외부에 알려지면 검은 돈이 해외로 이탈할 것을 우려해 철저한 보안 속에 준비를 진행했으며, 여당과 야당 모두가 논의 과정에서 배제된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그 뒤로 33년 동안 긴급재정명령 카드는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가능성이 언급, 검토됐지만 실제 긴급재정명령 발동까지 이르진 않았다. 실제 발동 가능성에 대해 여당 내부에서도 시각이 엇갈리는 이유다.
청와대는 이번 발언에 대해 "관료들이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경제 위기나 비상 상황에서는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긴급재정명령 발동 선언이 아니라, 위기 대응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지 말라는 주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 조항을 직접 거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현 정부가 중동발 경제 위기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라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