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가장 문제적 레토릭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의 의중(意中)'이다. 이 말은 대개 설명을 생략한다. 왜 필요한지, 무엇이 더 나은지, 국민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따지는 대신 이 한마디로 토론을 덮어버린다. 주장에 근거를 붙이는 대신 권위를 덧씌우는 방식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의중'은 강한 언어처럼 보이지만, 논증을 건너뛴 쉬운 정치의 언어일 때가 많다.
최근 검찰개혁과 관련한 이른바 '공소취소 거래설' 파문이 그랬다. 여권 최대 스피커인 김어준 씨의 유튜브 방송에서 나온 발언은 애초 공소청 보완수사권 등과 관련해 '검찰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과 달리 파장은 정반대로 흘렀다. 쟁점은 곧바로 '대통령의 의중을 검찰에 전한 측근이 누구냐', '대통령의 의중이 자신의 공소취소와 연결돼 있느냐'는 정치 공방으로 옮겨갔다. 논란이 커지자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가짜뉴스"라며 진화에 나섰고, 더불어민주당도 결국 고발을 택했다. 결국 참다 못한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국무회의에서 "숙의를 하라고 하지 않았나. 터놓고 지겨울 정도로 얘기를 해야한다"면서 당·정·청 검찰개혁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불거진 불필요한 논란에 아쉬움을 토로하며 교통정리에 나서야 했다.
유사한 논란은 꾸준히 있었다. 가장 가까이는 지난 1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 추진 논란이 그랬다. 논쟁의 초점은 합당의 필요성과 절차, 나아가 지방선거 전략이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 정치는 곧바로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느냐', '명심(明心)이 실린 것이냐'는 공방으로 옮겨갔다. 강득구 민주당 최고위원의 이른바 '명심 소셜미디어(SNS)' 논란까지 번지자 강훈식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뜻을 말할 때는 신중해달라"고 했고, 청와대는 "합당은 양당이 결정할 사항일 뿐 청와대는 논의나 입장이 없다"고 선을 그어야 했다. 합당론보다 '대통령 뜻'이 더 큰 정치 자산처럼 유통된 셈이다.
한국 정치에는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읽는 사람이 유능한 정치인인 것처럼 여기는 오래된 습관이 있다. 궁정정치의 잔재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왜 내가 옳은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를 논리로 설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런 편리한 정치는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에 둔 경우가 많고, 대개 퇴행적인 결과로 흐른다. 정책의 본질은 흐려지고, 당내 신뢰는 깎이며, 대통령은 정작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에 이름을 빌려준 사람처럼 소모된다.
정치인은 대통령의 의중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의 요구를 읽는 사람이어야 한다. 특히 집권 여당 정치인이라면 더 그렇다. 대통령과 함께 내건 원칙을 국민 눈높이에서 구현하고, 필요하다면 반대편도 설득해야 한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신념만이 아니라 자기 행위의 결과를 감당하는 책임윤리(ethic of responsibility)라고 봤다. 이 오랜 원칙 앞에서 대통령의 의중은 지양해야 할 한낱 수사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 칭찬과 사랑을 받는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갈 길은 분명하다. 대통령의 의중을 유통하는 정치를 삼가는 것이다. 민주정치는 의중이 아닌 공론을 통해, 권위가 아닌 설득을 통해 건강해진다. 대통령을 위한다며 '의중'을 앞세우는 순간 정치는 작아지고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떨어진다. 대통령의 뜻도, 정책의 힘도, 끝내는 '국민에게 이로운가'라는 책임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
ㄹㅇ 의중 좀 고만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