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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로 그 ‘검사를 중수청으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이 모든 난리통의 마지막에 다시 고안해서 넣었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물론 검사의 수사 능력을 활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실제 검찰개혁 강경파들이 ‘검수완박’ 주장의 연장선에서 중수청 설치 구상을 내놨을 때 주장한 바도 그것이다. 검사들이 중수청에 가서 수사를 하도록 하면 된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렇다면 수사사법관에 대해 왜 반대를 했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혹자는 ‘검사를 중수청에 보내는 것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수사사법관이라는 특권적 직책에 반대한 것’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논리도 ‘수사사법관은 제2의 검사’라는 논리의 변형일 뿐이다. 가령 어느 회사에 부장과 대리가 있는데, 부장 승진 자격을 특정 자격을 지녔거나 승진 시험을 통과한 자로 제한했다고 해보자. 과연 이 사람들이 그걸 다 특권이라고 하겠는가? ‘수사사법관은 제2의 검사’라는 논리가 있는 가운데, ‘수사사법관과 전문수사관의 관계는 검찰청의 검사-수사관의 관계와 같다’, ‘따라서 중수청은 제2의 검찰청이다’라는, ‘발가락이 닮았다’ 혹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논란다’ 식의 허술한 논리체계가 작동한 결과였을 뿐이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법사위 강경파라는 인사들도 자기들 정치의 문제가 뭔지 안다는 거다.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검찰개혁의 과정을 둘러싼 혼란은 단지 일을 못하거나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명확히, 어떤 정치적 동원 방식의 문제이다. 그것은 검찰개혁-포퓰리즘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검찰개혁 과제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예감이 틀렸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