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공격은 왜 이렇게 집요한가?
김병기가 통일교 특검에 찬성한 후 쿠팡 사태가 이어지는 와중에 그의 전 보좌관 2명이 동시에 김병기에게 화살을 돌리며 사퇴를 요구하는 장면은 단순한 내부 갈등으로 보기 어렵다.
정치 공세가 집중되는 순간은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명백한 실수가 드러났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안’을 던졌을 때다. 최근 김병기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바로 그 전형적 예로, 대중은 이제 그들의 프레임에 놀아나지 않을 만큼의 분석력과 맷집을 갖춰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쟁점은 전직 보좌관 문제, 도덕성 논란, 권력 지향적 태도다. 그러나 사안의 실체를 조금만 따라가 보면, 이것이 개인 비위나 일탈에 대한 자연스러운 문제 제기라고 보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공격은 유난히 조직적이고, 시점은 절묘하며, 논점은 일관되게 ‘개인’에 고정돼 있다. 나머지 299명의 국회의원이 이 정도 갑질은 당연한 줄 행사했을 것이고, 보좌관 9명씩을 더하면 2,700명이 늘 뒤에서 욕하면서 앞에서 굽신댔을 것이다.
이름이 불리지 않는 쿠팡
김병기 사안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모든 경로가 쿠팡을 향하고 있음에도 정작 쿠팡이라는 이름이 논쟁의 중심에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병기의 전직 보좌관 2명이 쿠팡에 입사했고, 쿠팡은 최근 수년간 15명이 넘는 국회 보좌관·정치권 출신 인사를 대관·정책 대응 명목으로 흡수해 왔다. 이는 이미 언론과 시민단체 자료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논쟁은 쿠팡의 전관 채용 구조나 정치적 역할이 아니라, 김병기 개인의 태도와 인성, 도덕성에 집중된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질문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문제의 성격도 바뀐다. 공격하는 질문의 구조를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인물 심문만 남는다.
쿠팡은 단순한 유통기업이 아니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 시기 형성된 정치–제도–자본이 결합한 결과물에 가깝다. 느슨한 플랫폼 규제, 방치된 물류 노동 문제, 혁신기업이라는 보호막 속에서 쿠팡은 공격적 확장과 장기 적자를 감수하는 성장 전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은 ‘시장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쿠팡의 성장은 애초부터 정치적이었다. 이재명을 공격하는 문재인 정부의 과실을 이재명 정부 인사를 사퇴시키려다 같이 망하는 건 아닐까 싶은 정도다. 권력을 누릴 만큼 누린 문재인의 발호는 그가 그만큼 뒤가 구리다는 추측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친문 줄타기와 쿠팡 전관의 반복
의혹이 제기되는 지점은 쿠팡의 현직 부사장이 조국 전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부터 개인적 친분을 이어왔다는 사실, 그리고 민주당 내에서 조용우, 정청래 보좌관 계열을 포함해 이른바 ‘친문 줄타기’를 해 온 인물들이 쿠팡과 전관 형태로 연결되어 있어 반복성으로 이미 대중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정치권에서 인맥이 작동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특정 정치 계보의 인물들이 특정 기업으로 집중적으로 이동하는 현상은 구조적 질문을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전관예우의 관행이 매우 불결하고 지저분한데 김병기에 던지는 살들은 그 주체가 누구이든 정치적 해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쿠팡은 이들에게 민간 기업이었을까. 아니면 정치 이후를 대비한 안전한 착지 지점, 혹은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완충 장치였을까. 만약 후자에 가깝다면, 쿠팡은 기업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자산이 된다. 그리고 그 자산을 건드리는 질문은 곧 정치 세력 전체를 불편하게 만든다.
공격자들이 친문이라는 아이러니
김병기 공격의 또 다른 특징은, 그를 공격하는 주체들 역시 상당수가 친문 정치 생태계 내부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전직 보좌관들의 문제 제기는 내부 고발의 형식을 띠지만, 그 톤은 유난히 격앙돼 있고, 시점은 정교하다. 개인적 양심의 발로라기보다, 정치적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 수단처럼 보이는 이유다.
여기에 변호사 단체, 특히 변협을 둘러싼 정치적 역할에 대한 의심도 겹친다. 친문 세력은 오랫동안 변협을 자신들의 우호적 지형으로 인식해 왔고, 실제로 정치적 국면마다 변협의 목소리는 일정한 방향성을 띠어 왔다. 만약 김병기 공격 국면에서 법조 담론이 방패이자 칼로 활용되고 있다면, 이는 개인 문제를 넘어선 조직적 방어 메커니즘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필요하다면 극우 진영의 공격 논리까지 차용하는 장면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목적은 명확하다. 질문을 던진 사람을 문제로 만들어 질문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김병기, 편승자인가 제거 대상인가
그래서 김병기를 다시 보게 된다. 그는 정말, 이 구조에 편승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그 구조의 실체에 접근했고, 그것을 정리하거나 차단하려다 불편한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통일교 특검 찬성, 쿠팡 대관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이후 이어진 집중 공격의 흐름은 우연치고는 지나치게 정교하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은 외부의 적이 아니다. 내부에서 구조를 알고, 그것을 말하려는 사람이다. 만약 김병기가 쿠팡을 매개로 한 친문–자본–정치 네트워크의 연결고리를 일정 부분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을 공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했다면, 그에 대한 반격은 개인 스캔들 이상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이재명이라는 불편한 변수
이 지점에서 이재명이 다시 등장한다. 이재명은 친문 네트워크의 보호 아래 성장한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늘 그 구조의 바깥에 있었고, 그래서 불편한 존재였다. 김병기가 이재명과 접점을 가진 인물로 인식되는 순간, 그의 행보는 개인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신호가 된다.
쿠팡–친문–전관 네트워크가 하나의 느슨한 이해 공동체였다면, 이재명 계열은 그 구조를 위협하는 변수다. 김병기를 향한 공격이 유독 거친 이유는, 그가 단지 한 의원이 아니라 그 변수와 연결된 지점으로 보이기 때문일 수 있다.
왜 정치 공세 구조는 드러나지 않는가?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김병기를 공격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왜 쿠팡은 기업의 이름으로 남는가. ‘문팡’의 구조가 아니라, 개인의 도덕성으로 축소되는데 대중은 계속 이용당할 것인가.
정치는 스토리와 수 싸움이다. 가장 쉬운 승리 방식은 질문을 지우는 것이다. 김병기를 무너뜨리면, 쿠팡을 둘러싼 정치–자본–전관 구조에 대한 질문도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이 싸움은 집요하다. 그래서 공격은 감정적이다. 그래서 논쟁은 구조를 피해 간다.
이것은 한 정치인의 거취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치가 자본과 어떤 방식으로 결합해 왔는지, 그리고 그 결합을 문제 삼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김병기가 어디까지 다가갔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있다.
그가 건드린 무언가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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