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Korea> 지금 정도로 장발 스타일을 해보신 적 있어요?
박서준 아니요, 처음이에요.
스스로 거울 봐도 멋진 거 알죠?(웃음)
아직 적응이 덜 되었는지 상당히 불편합니다….
최근 나영석 피디의 예능을 촬영하셨더라고요. 올해 1월엔 JTBC <경도를 기다리며> 방영을 마쳤고요. 몇 개월간 대체로 어떻게 보내셨어요?
연말까지는 좀 풀어져도 되지 않을까 싶어 별 계획 없이 쉬면서 보냈고, 올해부터는 다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사이사이 해외 일정을 소화했어요. 그리고 이제부터 집에 있을 때만큼은 사소한 루틴을 좀 가져보자고 마음먹었거든요. 그렇게 지내보니까 나쁘지 않아요.
그게, 잘 되던가요?
되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그런 생활을 좋아하던데요?(웃음) 저도 이럴 줄 몰랐어요. 뭐 대단한 건 아니에요. ‘하루 중 6시까지는 뭔가를 세 가지 이상 해보자’. 그런데 한 가지를 할 때 1시간 이내로. 그 정도 시간 되면 딱 멈춰요. 6시 이후면, 제가 반주를 워낙 좋아하니까 그때그때 시간 되는 사람들 만나 저녁 먹고 적당히 술도 마시고 그러죠.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부터 잘 개고. 사소한 것만 지키면서 살아보니 조금 힐링도 돼요. 일상에서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모습, 나름대로 건강을 챙기려는 모습이 스스로도 썩 나보이지 않으면서 편해요.
INFP들의 특징이 쉬어도 쉬는 게 아니래요. 몸만 정체되어 있는 거라 쉬는 것 같지가 않다고. 그래서 최소한이라도 ‘쉼의 구조’를 만들어줘야 좋대요. 또 에너지가 있을 때 움직이려 하지 말고, 일단 움직여보면 그 과정에서 오히려 에너지가 생길 수 있다나.
어? 엄청 공감되는데요? 그런 설명은 처음 들어보네요. 맞는 말 같아요. 저는 ‘의미 있는 걸 해야 한다’는 생각이 크거든요. 그런 생각을 이제 좀 바꿔보려는 거예요. 꼭 의미가 없어도, 혹은 의미가 있건 없건 그런 기준을 따지기보다 ‘사소한 것으로 일상을 채워보자’는 게 포인트예요. 변화를 줘봤더니 어떤 속박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있어요. 의미를 기준으로 두면 뭔가에 좀 쫓기는 기분도 들거든요.
잠은 잘 자는 편인가요?
잘 못 자요. 잘 못 잘 때가 많아서, 방법을 알아요. 활자를 보면 됩니다(웃음). 오늘 내가 잠들기 어려울 것 같다, 하면 좀 어려운 책을 바로 꺼내죠. 멜라토닌 같은 거보다 그게 더 나은 처방전입니다(웃음).
울다 보면 지쳐서 잠들기도 하죠. 저는 늦은 밤에 <경도를 기다리며>를 보다가 자꾸 눈물이 나온 적 있네요. 배우 인생에 그런 드라마를 남긴 기분은 어때요?
제게는 너무 의미 있는 작품이었어요. 덕분에 내가 살아온 시절을 다시 떠올려보기도 했고요. 늘 압박감으로 다가왔던 감정 신에 임할 때 좀 더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자주 경험했어요. 연기 면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여러 가지를 남긴 작품이에요.
대학생 때부터 3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박서준과 원지안 배우가 보여주는 인연이 있었죠. 그 긴 청춘 시절이 절절하면서도 재미가 있었어요. 가슴 시리거나 혼란한 감정을 표현할 일이 많았는데, 배우로선 큰 훈련이 되었을 것도 같습니다.
보통 한 작품에서 중요한 감정 신을 세 번 정도 소화한 기억이거든요. 그런 촬영을 앞두면 ‘잘 버티자, 잘 뽑아내면 되지’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경도를 기다리며>에선 그럴 일이 너무 많으니까 접근법을 확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감정선이 중요한 신을 찍고 나면 되게 공허해져요. 그 공허함을 금방 다시 채울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야 다음에 쓸 수 있는 감정이 생기기도 하고. 매회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압박감을 가질 법한 신들에서 오히려 자유로지곤 했어요. ‘그냥 상황에 맞게 잘 털어내보자’가 됐죠.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믿게 됐어요.
평소 대본을 외울 때 상대역의 대사는 잘 안 보신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도 그랬나요?
네. 앞으로는 바뀔 수 있겠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리액션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상대방이 어떤 대사를 할지 미리 알면 왠지 계산하게 될 거 같아요. 상대의 말을 처음 듣는 기분으로 듣고 싶어요. 아마 법정물이나 전문성이 필요한 장르에서는 또 다른 식으로 가야 할 거예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연인들이 있잖아요. <경도를 기다리며> 같은 이야기의 경우, 한 남자의 순애보적인 면을 강조하기보다는 ‘결국 지속될 수밖에 없는 사랑’을 나이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풀어낸 거 같아서 좋았어요. 연기한 ‘경도’라는 인물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의 마음을 대변하는 인물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적지 않은 한국의 남자들에게 이런 정서가 있지 않을까…. 이 드라마를 나이대가 좀 있는 분들이 많이 봐주신 거 같더라고요. ‘몇 년생 누구야, 아직도 생각난다’ 이런 댓글들이 재밌었어요. 한 사람에 대한 마음을 그 세월 동안 가져간다는 게 어떻게 보면 판타지죠. 그런데 제가 어릴 적엔 적당한 순애보가 더 당연하게 통했던 거 같거든요. 요즘엔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확실히 시대의 정서라는 게 있어서 과거엔 멜로 작품이 그렇게 많았던 건가 싶기도 했어요. 대중가요만 봐도 발라드 장르는 과거에 훨씬 많았잖아요.
에단 호크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대요. 러브 스토리 작업을 하면, 자신의 취약한 상태를 드러내게 돼서 배우로서 두렵다고요. 세상 사람들이 나의 취약한 면을 지켜보게 놔두는 일이니 좀 무서울 수밖에 없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어떤 상황을 두고 취약한 면이라고 했을지 좀 궁금해지긴 하네요. 감정적으로 내가 바닥까지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수도 있고, 연기이긴 하지만 내 모습을 돌아봤을 때 아주 나약해 보일 수도 있고. 그런 지점들이 무섭다면 무서울 수 있겠네요. 아무래도 인물에 너무 공감하는 식으로 가면 엄청 힘들어져요. 잘 해냈다는 후련함이 들기보다, 그 여운과 잔상이 계속 남거든요. 그런 상황도 내가 취약해지는 느낌에 포함되겠네요. 그런데 저는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해요. 사랑은, 인간으로 태어나 느끼는 감정 중에 가장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걸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어떻게 보면 대단한 기회죠.
차기작은 <내가 죄인이오>라는 드라마죠? 누아르, 하드보일드물로 유명한 웹툰이 원작이에요. 지금껏 보지 못한 박서준의 모습을 볼 수 있겠어요.
네. 아직 촬영 시작도 안 했지만, 기존과 많이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지금까지는 제가 그런 장르를 하기엔 너무 어려 보일 거 같았어요. 안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하는 기분이었달까. ‘이제는 이런 옷을 좀 입어봐도 되지 않나’ 싶었어요. 이 선택으로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도 있고. 제가 내년에 한국 나이로 마흔이거든요. 이번 작품이 좋은 기점이 되었으면 해요.
지금은 어떤 나이라고 생각하세요?
너무 좋은 나이라고 봅니다. 조급하지도 않고, 여유가 생겼고. 그러면서 앞으로를 좀 더 풍성하게 채워갈 수 있다고 느끼는 나이예요. 지금 생각으로는 40대 후반까지는 계속 좋다는 느낌이 유지될 거 같아요.
참 좋은 나이를 지나는 와중에, 결핍이라고 느끼는 것도 있을까요? 다르게 말하면 지금 박서준에게 가장 필요한 거요.
그 부분에 대해선 스스로 명확히 알고 있어요. 제가 좀, 책임을 져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누군가가 나에게 의지하는 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 저는 남에게 의지할 줄을 몰라요. 의지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거. 그게 저의 결핍이라면 결핍이에요. 단점이기도 하고요. 내가 힘든 이야기는 안 하고 싶고. 그런데 나이 들수록 전보다 금세 잊는 성격이 되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그 감정이 좀 오래 갔다면, 이제는 그 기간이 짧아지더라고요. ‘그때는 그랬지’ 하면서 전보다 무뎌졌달까. 누구에게 잘 기대지를 못하는 것에 대해선 그냥 ‘내 삶은 이렇게 세팅이 된 거구나’ 받아들이고 있어요.
삼형제 중 장남이라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제가 어릴 때부터 어떤 생각이 들거나 어떤 감정이 생겼을 때, 그걸 잘 표현하지 못하긴 했어요. 꺼내놓으면 안 되는 상황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표출이라는 걸, 연기하면서 처음 제대로 해봤거든요. 그 해소감을 느꼈을 때 너무 신이 났어요. ‘아, 이 일을 꼭 해야겠다’ 생각했죠
그 신인 시절의 박서준에게 지금 한마디해보세요(웃음).
언젠가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는 이렇게 말했네요. ‘지금 열심히 하고 있지? 힘들지? 10년 뒤에도 똑같아’(웃음). 그 힘듦이라는 게… 물론 경제적으로는 훨씬 여유가 생겼죠. 돈은 너무 감사한 것이지만, 저에겐 그렇게 결정적인 무엇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이제는 좋은 일도 좀 하고 살아야지 하면서 기부도 할 수 있다는 점은 좋죠. 과거에 ‘내가 만약 여유가 생긴다면 이런 데 기부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실천하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이런 비유를 접한 적이 있어요. 컵에 물이 차 있으면, 거기서 넘쳐나는 만큼만 남을 도우려고 하면 된다고. 아직 내 컵에 물이 다 차지도 않았는데 자꾸 꺼내서 주려고 하지 말고, 충분히 찼을 때 누군가를 도우면 된다는 말이었거든요. 와닿았어요.
무엇을 경계하세요?
경계하는 거요. 음. 선입견이요. 그걸 최대한 안 가지려고 해요. 선입견이 생겼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에는 떨치려고 노력하고요. 만약 소문이 별로 안 좋은 사람이 있다고 치면, 사실 내가 직접 만나 겪었을 때는 다를 수 있잖아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믿으려고 해요.
박서준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뭘까요?
오해야 뭐 너무 많죠. 많지만 굳이 다 해명할 필요는 없고요.
많나요? 굳이 해명할 필요는 없는 거지만, 말씀하시게 먼저 판을 깔아드리고 싶네요.
글쎄요. 오해도 결국 선입견의 문제일 수 있고요. 그냥 이 사회 전체의 분위기에 대해 생각해보면, 종종 이런 바람이 들어요. 착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가 되었음 좋겠다고. 그리고 누군가 좀 잘 되거나 새로운 도전을 통해 박수받는 상황이면, 그 점을 인정하고 칭찬할 줄 아는 문화가 더 있었음 해요. 남을 질투하고 깎아내리기보다는 동경하고 지지하는 사회가 더 발전적이지 않을까….
동감합니다. 좋은 말씀이고요. 이제, 오늘 인터뷰의 최후발언 해보시겠어요?
최후발언이라고 하니 대단히 중요한 걸 말해야 할 거 같네요(웃음). 기회를 주시니 이 말을 제일 먼저 하고 싶어요. 좀 오그라들 수도 있어요.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람이 위태로운 상태일 때는 그런 응원이나 위로가 잘 안 와닿아요. 가족이든, 지인이든, 누가 힘내라고 해도 그 말이 안들어오죠. 그런데 그 상태에서 벗어나면, 그제야 고마움을 크게 느껴요. 나를 응원하는 이들이 많구나. 나, 잘 살고 있구나.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저만의 주관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좋은 가치관으로, 잘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여러가지 생각하게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