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다하지 않은 우리, 청춘
배우 강하늘, 박정민의 청춘
두 분이 찍은 영화 <동주>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혹시 완성본을 미리 봤나요?
정민 아직 못 봤어요.
설레나요? 아니면 무섭나요?
정민 저는 무서워요. 어떤 점에서요? 정민 다루기 조심스러운 얘기를 하는 영화고, 또 열심히 했다는 점에서요. 시험 공부 열심히 하면 더 긴장되는 것처럼요.
어떤 말을 들으면 무서움이 없어질 것 같아요?
정민 그 어떤 말도요. 하하.
하늘 저도 기대나 설렘보다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요. 우리는 충분히 열심히 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시험 성적을 숫자보다는, 우리가 느껴야 하는 거잖아요. 많은 분들의 비판을 받아야 하고, 그 와중에 우리 스스로도 만족해야 할 텐데 겁이 나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는 그래도 설레는 순간이 더 많았죠?
하늘 그럼요. 영화가 흑백으로 완성될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현장에서 모니터할 때도 흑백이었어요. 전 그게 그렇게 기분이 이상하면서 좋고, 설레더라고요.
정민 저는 처음에 캐스팅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요. ‘이걸 왜 나한테 하자고 했지?’라는 생각에 매니저한테 내가 한다고 하면 이 영화를 할 수 있는 거냐고 연신 물어봤어요. 그때 기분이 좋고 설레었어요. 제 나름의 슬럼프를 겪던 시기였거든요.
‘왜 나한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았어요? 하늘 씨가 동주일 수 있었고, 정민 씨가 몽규일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하늘 정민이 형은 대본을 받고 실제로 중국에 있는 묘까지 갔어요. 탐사를 하고, 혼자 고사까지 지내고 왔대요. 형은 정말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이 역할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는 능력도 마음도 있는 사람이에요. 송몽규 열사는 평전으로만 읽어도 열정적이고 모든 걸 쏟아붓는 성격인 것 같은데, 아마 그런 열정이 어울리지 않나 싶어요.
정민 또래 배우들 중에서 하늘이가 가진 이미지가 윤동주라는 역할에 가장 닿아 있는 것 같아요. 거기에 약간의 운명도 있어요. 하늘이가 영화 <쎄시봉>에서 윤동주 선생님의 6촌 동생인 윤형주 선생님 연기를 했잖아요. 묘하게 닿아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동주와 몽규를 연기하면서 가장 험난한 순간은 언제였어요?
하늘 마지막 촬영이 같은 날이었거든요. 끝나자마자 둘 다 졸업했다는 기분이 들어 대본을 위로 던졌어요. 대본이 싫었다는 말이 아니라 중압감에 시달렸거든요. 영화를 19회 차 만에 찍었어요. 어느 한순간이 험난했다기보다는 영화 촬영하는 내내 험난했던 것 같아요.
정민 대본을 받은 순간부터 마지막 오케이까지.
끝나고 나서는 영화로부터 빨리 빠져나왔나요?
정민 어떤 배우는 너무 빠져 있어 몇 개월 동안 힘들어하는 분도 있잖아요. 저는 모르겠어요. 끝나자마자 후련해서 벗어던졌어요. 그런데 그건 있더라고요. 저는 애국심 같은 게 없던 사람인데, 캐릭터를 공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관심이 생겨 촬영이 끝나고 두세 달 역사에 빠져 살았어요. 재미있어 책도 찾아보고, 동영상 강의도 들었어요. 그 정도? 역할에서 못 빠져 나와 ‘일본에 가서 내가 폭탄을 던질 거야’ 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니고요. 하하.
하늘 도대체 역할에 빠져서 못 헤어나온다는 뜻이 뭔지 아직 저는 모르겠는데, 그게 만약 방금 형이 말한 거라면 저도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원래 시를 좋아했는데, 영화를 찍고 나서 시에 더 관심이 생겨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많이 읽었어요.
그렇게 긴장과 고생하며 찍으면서 두 분이 어떤 대화를 나눴어요?
정민 쓸데없는 얘기만 주로 했어요.
하늘 대본에 대한 얘기는 굳이 나눌 필요가 없었어요. 그냥 서로 믿은 것 같아요. 내가 정민이 형한테 바라는 것도 없었고요.
정민 저는 동료 배우와 어떤 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를 주고받지 못하겠어요. 그걸 하는 순간 상대방 연기에 관여하게 될 것 같아서요. 왜냐하면 내가 분석한 게 있는 만큼 상대도 준비한 게 있을 거잖아요. 그래서 그냥 추워 죽겠다는 얘기만 계속했어요.
촬영이 언제였는데요?
하늘 3월요. 그런데 촬영지가 강원도 오지였어요. 강원도 산골 3월의 추위는 어마어마해요.
영화가 흑백으로 상영된다고 들었어요. 찍으면서 느낀 흑백 영화만의 묘미가 있었나요?
하늘 표정의 디테일이 달라요. 컬러로 된 영화에서는 색감이 있으니까 표정에 그렇게까지 눈이 안 가는데, 흑백 영화는 얼굴이 하얗고 눈썹과 눈동자가 검은색이니까 움직임이 더 잘 잡히는 거예요. 그래서 더 재미있었어요. 사실 컬러는 연기자가 눈을 몇 번 깜빡여도 잘 모르거든요. 그런데 흑백은 굉장히 잘 잡혀요. 그동안 <쉰들러 리스트> 같은 흑백 영화를 보면서 뭔가 다르긴 한데, 그게 무엇 때문인지 몰랐는데, 이번에 알게 됐어요.
정민 다른 데 눈이 안 가고 말하는 사람한테만 눈이 가요. 사람한테 집중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무섭고요.
영화 속 배경이 일제 강점기인데,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연기하는 건 어떤 기분이에요?
하늘 어떤 시대극을 하건 비슷한 것 같아요. 어쨌든 그때도 사람이 살았다는 거죠. 결국 우리가 작품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건 시대의 풍습이 아니라 사람이잖아요. 물론 그 시대에 살지는 않았지만, 사람으로서 하고자 하는 얘기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정민 저는 시대극도, 실존 인물을 연기한 것도 처음이라 그런지 새로운 경험을 얻었어요. 현대극에서 누군가가 새로 만든 인물을 연기하려면 사람이 상상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그 인물에 대한 구멍이 많아 그걸 메워야 하거든요. 그걸 혼자 분석하면 오류가 날 수도 있고, 일관성이 없어질 수도 있어요. 이번 영화는 최소한 그런 위험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인물을 관통하는 중심이 책에 명시되어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다만 어려운 건 그 시대의 사람들이 느낀 감정의 크기와 질을 모르겠다는 거예요.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 한이 어떤 건지 감히 가늠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럼 지금을 살고 있는 두 분은 시대를 잘 타고났다고 생각하나요?
하늘 네. 연기라는 재능이 과거에는 그다지 대접받을 만한 건 아니었잖아요. 그나마 제 능력을 계속 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잘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정민 저도요. 저는 기본적으로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라 뭐든 온전히 만족하지는 못해요.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은 마음이 있어요.
영화 예고편에서 두 주인공을 ‘빛나던 미완의 청춘’이라고 칭했어요. 두 분이 해석한 동주와 몽규는 어떤 청춘이었나요?
하늘 윤동주 선생님의 청춘 앞에는 흔들림이라는 수식을 붙이고 싶어요. 선생님의 청춘은 굉장히 뜨겁고 푸르렀기 때문에 흔들린 것 같아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시를 보면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쓴 글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또 어떤 상황에 노련하게 대처하는 게 아니라 부딪치면서 흔들리는 모습이었던 것 같고요.
정민 그분의 묘 앞에서 들었던 감정이 좀 복잡했어요. 대본을 잘 모르겠어서 도움 좀 받아보겠다고 무작정 가서 묘 앞에 서는 순간 ‘내가 뭘 도와달라고 지금 이분한테 찾아온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원망하는 건 아니지만 윤동주 선생님의 묘는 되게 화려해요. 그에 반해 바로 옆에 있는 송몽규 열사의 묘는 비석도 벌어져 있고, 벌초도 되어 있지 않은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이름이 꿈 ‘몽’ 자에 별 ‘규’ 자예요. 이분도 글을 쓰셨는데, 필명이 꿈별이었거든요.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아마 제가 그곳에서 느낀 감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아픔을 느끼셨을 거잖아요. 송몽규 열사는 억울하고, 아프고, 하지만 별처럼 빛난 청춘 같아요.
그럼 박정민과 강하늘이라는 청춘은 어떤 청춘인가요?
하늘 안 그래도 tvN 예능 프로 <꽃보다 청춘> 마지막 날에 청춘에 대한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고민을 길게 했어요. 아직까지 청춘이 뭔지 고민한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청춘인 것 같아요. 고민하지 않던 시절, 그러니까 청춘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깝지 않았을 때가 청춘인 것 같아요.
정민 제 청춘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내 청춘에 대해 얘기하면, 무슨 말을 해도 나중에는 후회할 것 같아요.
요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한 가지는 뭔가요?
하늘, 정민 <동주>. 하하. 매일 어떤 글이나 기사가 올라왔는지 확인하고 있어요.
흥행이 많이 신경 쓰여요?
하늘 흥행이라기보다는, 윤동주와 송몽규를 아는 사람들이 욕하지는 않을까 싶은 거죠. 유명한 사람의 일대기를 그릴 때 일단 반대부터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막무가내인 악플보다 그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반응이 더 깊이 다가올 것 같은 거죠. 너무 대단한 분이잖아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동주와 몽규로 돌아가 서로에게 영화에서 하지 못한 인사를 건네본다면요?
정민 너는 나처럼 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나는 그걸로 좋다.
하늘 ‘나의; 벗’이라는 말이 영화 안에서는 없어요. 그래서 한번 말해주고 싶어요. 나의 벗, 몽규야. 그리고 나의 소중한 사람, 몽규야. 고생 많았고 미안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9g6-y-NkOY
기사 출처 http://www.smlounge.co.kr/nylon/article/26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