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피워 낸 자신감, 박정민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는 말과 글은 물론 꿈꾸는 기회마저 빼앗긴 아프고 부끄러운 시대를, 부끄럽지 않고자 끝까지 저항하며 살아낸 빛나는 청춘에 관한 이야기다. 교과서 속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만 만나던 윤동주의 시와 삶 그리고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동지이자 라이벌로서 윤동주와 인생을 함께했던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궤적을, 또 다른 측면에서 여전히 불합리하고 부끄럽기만 오늘날에 되새긴다. 흑백필름 위에 아름답고 또 뼈저리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기를’ 바라면서. 시인 윤동주와 친구이자 사촌으로 평생을 함께했던 열사 송몽규를 연기한 박정민은 촬영 내내, 아니 영화가 완성돼 극장에 내걸린 지금 이 순간까지도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는 고백을 했다. 그것은 ‘한 시대를 온몸으로 품고 행동한’ 인물을 통해 느낀 반성과 자책감, 그리고 ‘아직은 부족한’ 배우로서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감과 부담 같은 데서 비롯된 부끄러움일 거다.
“창피하지만 대본을 받았을 때까지도 송몽규라는 분에 대해 잘 몰랐어요. 누구보다 뜨겁게 실천하며 살았던 분이지만 관련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 탓에, 감독님 표현대로 ‘과정은 아름다우나 결과가 없는 사람’으로 잊혀지고 만 거죠.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거고, 그렇기에 선생님의 뜻과 정신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잘 전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촬영을 준비하면서 용정에 있는 두 분의 생가와 묘를 방문했는데, 그때도 마음속으로 약속을 했거든요. 최선을 다해 선생님을 ‘오늘’로 잘 모셔 오겠다고요. 그런데 막상 뛰어들고 보니 정말 쉽지 않았어요. 한참 모자란 제가 오히려 그분의 훌륭한 모습에 그저 기대기만 했던 건 아닌가, 후회되고 죄송스러워요.”
누구보다 성실하게 탐구하고 집요하게 고민하며 역할을 준비했으면서도, 박정민은 끊임없이 더 자신을 돌아보고 또 채찍질하려 했다. 평소에도 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또 의심하며 엄격하게 스스로를 다잡는 유형이라는 그는 그 불안한 흔들림과 혹독한 담금질이 “그나마 이만큼” 자신을 이끌고 온 원동력이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감히 표현해내기도 벅찬 인물, 송몽규를 현실로 끌어오는 동안 쏟은 진심과 노력이 당장은 고됐지만 결국은 자신을 일구는 견고한 밑거름이 될 거란 사실도 믿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 부끄러움과 깨달음을 잊지 않고 삶과 결부해나가고자 한다. 비록 당장 만족스럽지 못했고 내일 곧바로 만개하지 않는다고 해도, 온 힘을 다해 이 순간을 붙잡고서 말이다.
“앞으로 제가 어떤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송몽규 선생님은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남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밖에 모르던, 그저 남들이 말하는 성공이나 좇고 싶어 했던 제가 조금이나마 주변을 돌아보게 됐거든요. 제가 발붙이고 있는 이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둘러보고 고민해봐야 한다는 인식도 하게 됐어요. 인간적으로도 무척 많이 성장한 거죠. 그리고 솔직히 <동주>를 만나기 전까지 배우로서 방황과 흔들림을 많이 겪었어요. 이제까지는 막연한 당위성 때문에 꾸역꾸역 우겨서 오긴 했는데, 크게 인정도 못 받고 스스로도 만족스럽지가 않으니 결국에 난 ‘안될 놈’인 건 아닐까 의심했었어요. 갈수록 자기 비하만 하게 되고 열등감과 불안감만 쌓여서 정말로 다 놓기 직전이었는데 <동주>를, 송몽규 선생님을 만나 거꾸러지지 않고 다시 설 수 있었던 거예요.”
비장하다 느낄 만큼 지독했던 그의 ‘부딪힘’ 뒤에는 사실 혼자만 오래도록 머물러 있다는 열패감과 두려움, 확신 없는 내일에 대한 막연함, 그리고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을 옭아맬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피곤함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하지만 박정민의 그 흔들림은 결코 누군가의 주목을 빨리 받기 위함이나 쉽게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긍정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 나아가 ‘나로서’ 제대로 이야기하고 만족하고 싶다는 목표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작게나마 그 소중한 자신감이 피워 낸 열매의 달콤함을 맛보는 중이다.
“결국은 지극히 평범한 원론일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제 방식대로 지독하게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실은 꽤 부정적인 사람인데, 그래도 연기에 있어서는 그렇게 힘들고 무서워도 놓지 않은 걸 보면, 게다가 이렇게 좋은 작품과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걸 보면, 막연하지만 긍정하게 되거든요. 수월한 길, 빠른 길에 현혹되지 않고 존경하는 선배들을 따라 저도 중심을 잃지 않고 걸어가고 싶어요. 특별한 거 없어요. 온갖 수식어를 다 갖다 붙여봤는데, 결국은 그냥 ‘무척 연기 잘하는 배우’, 그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확신은 아직 없지만, 자신 있어요.”
인터뷰 : http://magazine.firstlook.co.kr/archives/star/106_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