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에서의 5박 7일. 보상 같은 시간이었다. 퍼스트 사진집 『꿈의 가까이』 발매로부터 6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어」 「내 기준으로 봤을 때 완벽해」라고 생각할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낸 사진집을 찍었을 때는 「사진집을 내는 건 분명 이번 뿐이겠지」 라고 생각해왔다. 미나미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장소라는 이유로 『꿈의 가까이』의 로케지로 선택된 곳은 호주의 바이런 베이와 골드코스트였다. 남반구에 있는 호주에서 그녀는 "첫번째 여름"을 만끽했다.
당시 노기자카46에 가입한지 3년째. 제가 얼마나 그룹에 남아있을지 같은, 아이돌로서의 미래가 그저 막연했던 시기에 제안을 받았어서요. 그 때는 「어떻게든 해내자!」 라고 정신 없이 몰두했어요. 팬분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어떤 걸 보고 싶어하는지 같은 건 조금도 몰랐고요... 하지만 다 성장하지 못한 저의 풋풋함 같은 걸 전부 담아내 대만족한 사진집이 되었고, 많은 분들에게 기쁜 말도 들었어요. 그게 이번에 노기자카로서의 활동도 10년째를 맞이해서, 지금의 저라면 좀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고, 팬분들이 보고 싶어 하는 저에 대해서도 『꿈의 가까이』 때보다는 확실히 이해하고 있고요. 그래서 6년 전과는 또 다른 우메자와 미나미가 전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저의 다양한 표정들... 웃고 있는 모습 뿐만 아니라 긴장하고 있는 얼굴도, 생각에 잠긴듯한 얼굴도, 미련을 털어낸 얼굴도, 전부 드러낸 작품이 되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요.
노기자카로서 살아가는 동안은, 계속 싸우고 있어
⸺ 이 6년 동안 그녀는 외적인 부분은 물론, 내면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었다. 그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는 성공한 경험보다도, 오히려 역경이 되기도 한다. 『꿈의 가까이』 촬영이 끝나고 나서, 출간되기 전까지 그녀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큰 역경에 직면했다. 촬영을 끝내고 2020년이 되었을 때, 전세계가 "코로나 화"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에 휩사였고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꿈의 가까이』가 발매된 전후, 저 역시 여러가지로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었어요. 노기자카46에 가입한지 4년째,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동기가 개인으로서의 목표를 발견해서 다방면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던 시기였거든요. 거기에 저도 영향을 받아서 「뭘 해내고 싶은걸까?」 「하지만 하고 싶은 걸 찾았다고 해서 그걸 말할 수 있는 입장인걸까」 라고 생각해서요. 싫어질 정도로 네거티브했던 것 같아요. 노기자카로서 살아가면서 계속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데, 당시에는 결론적으로 저 스스로와 싸우고 있었어요. 제가 저 자신을 가장 몰랐던 시기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머릿속이 뒤죽박죽된 건, 그때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유관객 라이브를 할 수 없게 된 것도 컸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세계에 들어오게 된 계기였던 시라이시 (마이) 상의 5월에 예정되었던 도쿄돔에서의 졸업 콘서트가 불가능해졌고, 가을에 무관객 중계 형식으로 졸업 라이브를 하게 됐을 때는 몸 안쪽에서 답답함과 분노가 솟아올라서, 그걸 어디에 표출하는게 좋을지 고민했어요. 저는 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동기에게 「그때 엄청 우울해 했잖아」 라고 들은 적도 있어요.
⸺ 그 "네거티브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 건 라이브였다.
중계 형식이었는데, 오랜만에 다같이 라이브를 했을 때 진심으로 「즐거워!」 라고 생각했거든요. 솔직히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계속 일에 몰두하고 있다 보면 「조금 버거울지도」라던가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라던가, 막혀버린 적이 있어서요.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그 버거움이나 부담을 주는 라이브를 강제로 빼앗겼을 때, 그 당연한 날들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알게 됐어요. 라이브에서 멀어지고 나니 비로소 「나는 라이브를 좋아하는구나」 「이 행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몰라. 그렇다는 건 즐기지 않으면 아깝잖아」 라고 생각하게 됐고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퍼포먼스적으로도 예쁘게 보이는 걸 한번 멈추고 「좀더 마음껏 해도 돼」 라고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 관객의 반응을 느낄 수 없는 중계 형식의 라이브는, 아직 라이브로서는 완전하지 않고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라이브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구나」라고 실감함으로써 굳어질 뻔 했던 마음을 풀어줬다. 동시에 그건, 자신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이거다, 나는 이 장소에 서고 싶었던거야!」 라고 생각한 건 유관객 라이브가 열렸을 때였어요. 2021년에 요코하마 아리나에서 개최된 마츠무라 사유리 상의 졸업 콘서트. 함성 소리는 아직 NG였기 때문에 콜이나 레스 보이스도 없었지만, 저희가 그만큼 소리를 냈거든요. 관객분들도 멤버들도 서로 격려하면서 열심히 분위기를 끌어올렸던 그 때의 단결력은... 대단했어요! 어떻게 해서 새로운 형태의 라이브를 성립시킬 것인지, 스탭분들을 포함해 멤버들과 상의하기도 했어요. 당시에는 선배님이 많이 계셨기 때문에 선배님들이 이끌어 가셨고, 저희는 따라가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지만, 공연장은 열기와 기백, 파동으로 가득 차있는 느낌이었어요. 소리를 낼 수 없는 만큼, 시선과 시선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도 촘촘했고, 객석이 무척 선명하게 보였죠. 저도 「구석 구석 놓치지 않고 봐야지!」 라고 생각했고, 노래도 코로나 사태에 맞춰서 박수를 많이 사용하는 곡을 받기도 해서, 「여러분 박수 쳐주세요!」 라고 외치면서, 실제로 박수를 쳐주실 때 「뭐지, 이 광경은?」라고(웃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반짝이는 세계가 눈 앞에 펼쳐져서, 동시에 고요함 속의 에너지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어요. 환호를 듣는 것 이상의 기쁨이 있었네요. 매년 할 수 있었던 메이지 진구 구장의 무대에, 코로나가 끝나고 오랜만에 섰을 때는 박수에 맞춰 공연장이 하나가 되는 고양감이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고요... 저희의 노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곡이 많다는 걸 깨달은 것도 하나의 수확이었어요.
⸺ 당시에 대해 너무 행복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노래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 있나요?」 라고 물어보니, 밝은 목소리로 「있어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어릴 때부터 노기자카46의 노래도 포함해 다양한 노래를 들었고, 음악에서 용기를 얻었기 때문에, 제가 만약 누군가의 용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멋진 일은 없겠지 싶어요. 특히 노기자카의 노래에는 뭔가 메시지가 있거든요. 말이란 신기한게, 그대로 직접 들었을 때는 와닿지 않던 말이 멜로디가 입혀지는 순간, 마음 속 깊이 스며들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이 노기자카의 덧없음이랄까, 항상 흔들리는 마음에 다가와주는 이 노래들을 제가 주인공 중 한명이 되어 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고 행복해요. 그만큼 부담도 있지만요.
너희들은 지금 무척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 그, 가사가 마음을 울린 노래를 뽑아달라고 말했더니, 「너무 많이 있는데...」 라고 조금 생각하고 나서 「제가 부른 노래보다도, 다른 멤버가 부른 걸 들었을 때가 더 마음에 와닿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최근에 특히 「노기자카스럽네~」 라고 생각한 건 언더곡인 『교감신경우위』. 사랑을 호흡에 비유하면서, 열정적일 때의 강한 마음과 편안할 때의 감정 같은 애매한 자신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데, 그게 엄청 노기자카의 주인공 같아요(웃음). 노기자카46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해준 아이들은 노기자카만의 색을 좋아해주고 있기 때문에, 노래 속 화자의 말에 위로 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가 무척 많고 그런 아이가 노래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건 2대 캡틴인 아키모토 마나츠 상의 센터곡인 『우리들의 사요나라』도 저에게 있어서는 부적 같은 노래에요. 처음에 곡과 가사를 받아 레코딩할 때, 모두의 목소리가 들어가면서 곡이 입체적으로 변해 가잖아요. 그때 가사의 의미를 저만의 방식으로 곱씹으면서 어떤 식으로 부를지 생각할 때, 마나츠 상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마나츠 상은 저에게 정말 커다란 존재였기 때문에, 레코딩할 때 감정적으로 변했던 게 생생히 기억나요.
⸺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제가 좋아하는 노기자카의 덧없음」이라는 말을 통해 그녀가 6년 전보다 성숙해졌음을 느꼈다. 코로나 시국에 마음의 움직임도 그렇지만, 무의식적으로 영원을 믿고 있어도 현실은 반드시 그 마음을 배신한다. 하지만 상처 받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풍경도 있다. 덧없음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을 갖추었기에, 그녀는 지금 이렇게 강하면서 유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덧없음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에 대해 「줄곧 예전부터」라고 말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이별의 아름다움"을 절실히 느낀 건 동기가 연달아 졸업한 2025년이었다.
2025년은 제가 노기자카로서 활동하면서, 제 안에서 존재감이 컸던 사람들이 이 자리를 떠나는 일이 많은 해였어요. 선배님의 졸업을 많이 지켜보면서, 무척 외롭고 슬프고 불안해도 졸업 자체는 비교적 빠르게 받아들여졌거든요. 선배와 동기는 들어온 시기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니까, 졸업을 결정한 타이밍도 이유도 저 나름대로 상상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동기의 경우에는 같은 출발선에 섰는데 「아, 이 아이는 이렇게 빨리 결심했구나」 같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졸업 콘서트 때도 동기이기에 가까이 서게 해주시거든요. 그래서 라이브 전반에는 조금만 멀리서 졸업하는 동기를 바라보면서, 그 아이가 없는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 같아요(웃음). 「이 아이가 없어져도 괜찮을까, 나?」 라고 생각하면서 매번 무대에 서있는 것 같아요. 떠나는 날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봤을 때는 정말 절실히 「덧없는거구나, 우리의 존재라는건」 하고 생각해요.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활동했는데, 분명 노기자카가 아닌 아이를 상상하는 게 점점 아무렇지 않아지려나」 「노기자카에 있는 게 당연했던 아이가 노기자카가 아닌 쪽이 당연해지고 있어. 그러면 어느새 예전을 떠올리는 게 어려워지겠지.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걸까」 같은.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지만, 언젠가 끝이 올 거라는 걸 알기에 이 활동 속 만남과 이별이란 경험이 무척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도 생각해요.
⸺ 퍼스트 사진집 때는 자신의 일에만 전념하고 있었다고 회상했지만,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은 자신보다 타인에 대해 줄곧 이야기하고 있다. 뭐랄까 그 모습이 성모처럼 자애로 가득차서, 여신처럼 신성하다. 그렇게까지 타인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캡틴이 된 것도 크지 않을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캡틴이 되었던 1년차에는 계속 불안해서 「어떻게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돼」 「내가 할 수 있는게 뭔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걸 찾지 않으면 안돼」 라고 생각했던 시기였고, 아무튼간에 고민도 많고 너무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나 풋풋함 같은 것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작정 달려가면서 처음이니까 용서받은 것도 많이 있으니까요.
노기자카에 부캡틴 제도가 도입되고 처음으로 선임된 게 저였기 때문에, 마나츠 상의 졸업을 알았을 때 (다음은 나일까?)라는 막연한 예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마나츠 상이 졸업하시는 게 외롭고 싫었고, 당시의 저는 비뚤어진 부분이나 조금은 반항적인 면모도 있었기 때문에 제가 캡틴이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멤버 전원 앞에서 「캡틴은 우메자와가 맡게 되었습니다」 라는 발표를 듣게 되어서 아주 잠깐 조금 어두워졌던 것 같아요(웃음). 그 때 마침 개인으로서 『킹덤』이라는 무대를 하게 되어서, 캡틴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차분히 생각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고요. 그 덕분에 구원받은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2년차가 되고 나니 부담감이 심해졌어요. 캡틴이라는 직책이 1년차 때보다 더 무서워졌어요. 「괜찮을까. 작년을 넘길 수 있을까?」 같은... 후배들도 포함해서, 주변이 점점 성장해 가니까 그걸 나도 따라갈 수 있을까 싶었달까요. 모두에게 말을 건네는 입장으로서, 설득력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도 있었고...
3년차가 된 2025년에는 또 다른 단계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어요. 그건, 제가 캡틴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들어온 6기생의 존재가 크다고 생각해서... 6기생에게는 정말 다양한 감정을 느꼈어요. 저도 현역이고 부담감이 있는데, 그 이상으로 「여러분은 노기자카잖아요」라는 것을, 모두에게 어떻게 전하고 자리 잡게 해야할지 등등. 여러가지를 공유하고 싶은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로써 캡틴인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2년차 때와는 달리, 정서적으로 안정된 만큼 주변의 변화에 무척 민감해졌어요. 동기와의 이별을 통해 노기자카의 덧없음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예전보다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됐고요. 그게 새로운 단계인 것 같아요.
노기자카46의 노래란 누가 부르냐에 따라서, 보고 듣는 방식이 달라지거든요. 예를 들어, 저희 3기생이 가입하자마자 받은 『미래의 답』이라는 곡을 6기생이 유닛으로 커버해준 적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지금의 우리가 부르는 것보다 전해지는 게 많을 것 같아!」 라고 생각했고, 기쁘면서도 아쉬운듯한 복잡한 감정이 들었네요(웃음).
애초에 『미래의 답』이란 제목이 너무 멋지지 않나요! 가사도 긍정적이고 희망이 넘치지만, 당시의 저희가 찾아갔던 답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부분도 감회가 새로웠어요. 노기자카의 노래는 노래했던 오리지널 멤버가 없어져도, 거기에 또 새로운 멤버가 더해져 노래가 이어져 가잖아요. 그렇게 함으로써 노래에는 화학 반응이 일어나거든요. 다만, 아직 그 노래를 부르는 현역 멤버가 있는 와중에 다른 아이가 부른다는 게 무척 재밌어서, 저희가 부르던 것과 같은 가사인데도 전해지는 방식도 반짝거림도 다르구나 싶더라고요. 아마 지금의 저희가 부르면 성숙하겠지만 6기생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서요. 「우리는 무작정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반짝거렸으려나?」 라고 조금 걱정됐어요(웃음).
하지만 그래서 노래라는 게 재밌고, 다인원 그룹이기에 생기는 변화가 있다는 건 노래가 누군가의 마음 속에 계속해서 살아있다는 증거라고도 생각해요. 6기생의 『미래의 답』을 듣고, 저는 「전해야돼!」 라고 생각했거든요. 「너희들은 지금, 무척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라는 건, 직접 말로써 전해주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니까요. 아무래도 노기자카46는 올해 그룹으로서 결성 15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가입한 10년 전보다도 줄곧 그룹의 색이나 형태가 뚜렷해지고 있어요. 물론 아직 성장 가능성이 많이 있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한편, 어느정도 「노기자카 하면 이것」이라는 이미지가 확립된 그룹이라고도 생각해요. 6기생은 그런 세계에 뛰어 들어서 최선을 다해 「노기자카가 되자」 라고 노력하고 있지만,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어떻게 하면 노기자카가 되는건지 전혀 모를거잖아요. 실제로 저도 10년 전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보는게 좋을지 등등 아무것도 몰랐고, 다양한 분들이 말을 걸어주셔서 알게 된 것도 많이 있기 때문에 저도 제가 받은 애정을 후배에게 돌려주고 싶어서... 그건 말로 전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어서, 6기생에게 「모두 빛나고 있어!」 라고 전했더니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기뻐요」 라고 말해줬는데, 그건 저에게 「전해야돼!」 라고 생각하게 만든 너희들의 빛나는 모습이 눈부시기 때문이야, 라고 생각해요. 정말 멋진 아이들이거든요.
「고독」이란 사실을 받아들이니 한결 편해졌다
⸺ 후배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캡틴다운 강한 말이 연이어 튀어 나왔다. 그녀가 캡틴이 된 것은 필연이었을지 모른다고 느끼게 될 정도로. 취임 당시에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던 건 틀림 없지만, 캡틴이라는 역할을 맡게 된 것에 대해서는 그녀도 지금은 감사하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캡틴을 맡게 된 초반에는 정말 불안했어요. 노기자카를 좋아한다는 자신감은 엄청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캡틴을 맡을 수 있을까?」 라는 부담감이 엄청나서... 역할을 맡게 된 만큼 적극적으로 움직여야겠다고도 생각했고, 제가 무심코 내뱉는 말이나 멤버에게 건네는 말은 물론이고, 제가 모두에게 말을 건넴으로써 라이브가 시작되기도 해서, 말의 소중함을 느끼는 매일이에요. 저의 말로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고, 변하지 않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어요. 위축되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고요. 그런 상황이 매일 지속되면서 말에 대해 민감해졌고, 말의 소중함도 몸소 실감했어요. 성격적으로는 캡틴을 맡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캡틴으로서의 입장은 보다 다양한 책임감이나 해야하는 일을 깨닫게 해줬다고 생각해요. 다만 지금의 마음가짐을 「캡틴이기 때문에 하고 있어」 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원래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해주는 걸 무척 좋아하고, 멤버 모두를 좋아하기 때문에 하고 있는거라... 그렇지만 캡틴이 되기 전의 저보다는 캡틴이 된 지금의 제가 좋아요. 여러가지 일이 있었는데, 「할 수 있어서 좋았어」 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제 안에서 무척 큰 변화였어요.
⸺ 후련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남몰래 많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캡틴이 되고 나서 가장 큰 위기는 언제인지 물어보니, 단번에 「2년째라고 생각해요. 2024년 2월」이라고 대답해, 너무나도 빠른 답변에 놀랐는데 「분명한 기억이 있거든요, "이 라이브가 내 안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다" 라는 기억이」 라고 말하며, 시선을 살짝 내린 채 말을 이어갔다.
그때, 노기자카46의 데뷔 이후 12번째의 버스데이 라이브가 있었거든요. 물론 라이브는 멤버나 스탭이 한마음이 되어 만들어 가는 거니까, 팬분들은 충분히 즐거우셨을 거라 생각해요. 다만 저 개인은 그 라이브와 마주하는 방식이 서툴렀달까... 캡틴 취임 2년차가 된 순간에, 여러가지 모르게 되어버렸어요. 애초에 어느 누구도 같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없으니까요.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고민하는 부분도 다를거고, 그에 대한 대처 방식도 마주보는 방식도 다르잖아요. 역할이 다르니까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게 있는 게 당연한데, 저는 캡틴이라는 간판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라이브가 실패하면, 그건 내가 실패했기 때문이야」 라는 식으로 스스로에게 무리한 부담을 주고 있었어요. 모두는 「그룹에 대해 생각해주면 좋겠지만, 그정도까지 짊어질 필요는 없어」 「즐겁게 하는게 중요한거야」 라고 말해줬는데, 「그 정도로 타협하면 안돼」 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부분도 있었고요. 오랫동안 함께 해온 멤버이기에 전해지지 않는 것에 민감해지기도 하고, 「이 아이에게는 닿은 것 같은데 이 아이에게는 닿지 않은 것 같네」랄까, 그렇게 느끼면서 그로 인해 허우적거리는 기분이 들었고, 한번은 「이제 말하는 거 그만둘까」 라고 생각한 시기도 있었어요.
당시에는 결론적으로 리허설이 힘들었어요. 멤버의 기분을 미리 파악하고 멋대로 받아들여서, 여러가지로 민감해져버렸죠. 뭔가 말하려 하다가도 「아... 전..해..졌으..려나?」 같이 되어서, 전하는 말에 열정을 담는 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고... 하지만 그것도, 그저 제가 제멋대로 고민하고 있었던 거고, 실제로 커뮤니케이션 부족 때문에 리허설이 지연되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어떻게 움직이면 더 좋아질지를 많이 고민하면서 「이거 말하고 싶어!」 같은 건 떠오르지만, 전하는 방식을 모르기도 했고요. 실제로 그 시기에 무척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있는 아이도 많았다고 생각해서, 그 아이들을 도와줄 수 없다는 무력함도 느꼈어요. 그래서 매일 리허설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힘들어」 라고 중얼거리면서 울곤 했네요(웃음). 그럴 때 저는 바로 산책하고 싶어지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도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그저 걸었어요. 다만 팬분들에게 그 불안이나 갈등이 전해져 버리면 프로답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전에서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은 전혀 갖지 않은 채 무대에 임했지만요. 줄곧 곁에 있어주신 스탭분들께는, 아마도 제 감정이 비쳐 보였던 것 같아요.
당시에 대해 "실패"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아쉬운 기억이 있기에 확실히 실패하지 않게끔 움직일 수 있게 됐어요. 그런 의미에서 2024년의 버스데이 라이브를 무시하 마친 건 저에게 있어서 커다란 한 걸음이었어요. 캡틴이 되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강점은, 본인의 고독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멤버들은 무척 힘이 되어주고 있고, 멤버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로써 물리적으로 외롭진 않지만, 감각적으로는 정말 압도적으로 고독해서요(웃음). 이 역할은... 캡틴의 심정이나 압박은, 해본 사람만 알 거에요. 그러니까 무리하게 공감을 구하려 하면 무의미해져서 스스로 목을 조이게 된달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고독을 자각한 이후가 정신적으로는 한결 편해졌어요. 특히 라이브는 그룹으로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너무 요구하게 되는데, 「모두 각자 다양한 곳에서 여러 경험을 쌓고 나서, 그룹에 힘써주고 있어. 각자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면, 내가 지나치게 요구하는 건 틀린거야」 라고 깨닫고 나서, 정신적으로 무척 편해졌어요.
⸺ 노기자카46라는 장소는 일종의 학당이다. 꿈을 가진 소녀들이 모여서, 음악을 통해 자신의 동경을 구체화하고 있다. 귀엽고 우아하며 고상하고 화려하지만 파워풀. 천계와 같은 덧없는 아름다움을 지상에 재현하는 그녀들은, 몇시간의 판타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하드하게 연마하면서, 앞으로 전진한다. 그렇게 각자의 갈등 속에서 진리를 찾고, 그것을 기도 삼아 다음 세대로 이어가고 있다. "처음 맞이한 여름"을 만끽했던 『꿈의 가까이』로부터 6년. 모델로서도 동일한 커리어를 쌓은 그녀는, 패션의 본고장인 밀라노의 말펜서 공항에 내렸다. 세계의 패션을 이끄는 도시에서 패션 슈팅을 하는 것은 그녀가 오랫동안 바랐던 일이었다.
젊을 때 다양한 세상을 경험해 두는 게 좋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최근까지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해외에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겠지」 라고 생각하는 제가 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이번에 이탈리아에 와서 결정했어요! 저, 우메자와 미나미는 개인적으로 또 이탈리아에 갈거에요! 그리고 촬영으로 갔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재방문하고 싶어요! 밀라노에서는 웅장한 빅토리아 엠마누엘 2세의 갈레리아를 좋아하게 되었고,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본 야경도 멋있었어요. 하지만 26살인 제 감정과 가장 싱크로했던 건 세계 유산인 친퀘테레에서의 촬영이었을지도 몰라요. 바다의 색이 끝없이 연한 물빛이고, 석양이 지면서 섬세하게 색이 바뀌더라고요. 어두워질수록 거리의 사람들이 점점 즐거워 보였고, 누구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춤을 추기 시작하더라고요(웃음).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흰 드레스를 입은 사진이라고. 「꽃을 들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고, 바다가 보이는 절벽 위에서 저녁에 느긋히 시간을 들여 촬영했다. "아름다운 파도"라는 이름이 이끌어 당긴건지, 하늘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도 옅고 덧없는 빛의 그라데이션이 그녀를 감쌌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듯한 부드럽고 풍부한 빛은, 정신성까지 포함해 그녀의 부드럽고 윤기나는 아름다움을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