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서 만날 수 있었던 말 2 해설
2013년 9월 1일 20시 41분
―35살까지 많이 경험하고 견문을 넓히고 몸으로 문장을 쓰라
카토 시게아키
내가 이주인 시즈카 씨와 만난 것은 두번이며 한번은 모 출판사 회장의 고희연이었다. 연이 닿아 초청 받은 그 파티는 호텔 연회장을 전세 내서 열렸고 당시 26살인 나는 그 호화로움에 그저 압도됐었다. 주뼛주뼛 내 자리에 도착하자 옆자리 이름표에는 이주인 씨의 이름이 있었다.
이주인 씨가 오셔서 나는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자 이주인 씨는 내 나이를 물은 뒤 “35살까지 여행을 하라”고 했다. 나는 “네!”라고 기운 차게 대답 했는데―왜 35살인 거지―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시종일관 긴장했던 나는 그 부분을 묻지 못했다.
이후 계속 ‘여행의 나이 제한’에 대해 의식하게 됐으며 왜 젊을 때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 대답을 알고 싶어서 나는 이주인 씨의 분부를 실행했다. 적극적으로 여행을 했고 2016년 양력 설에는 단신으로 쿠바로 떠났다. 그 때의 일들을 ‘TRIPPER’라는 문예지에 기고한 것을 계기로 同誌에서 ‘할 수 있다면 스티드로’라는 여행 에세이를 연재하게 됐고 그 뒤 ‘여행’과 ‘말’은 내게 있어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
이들 연재를 취합한 것을 2020년에 상재(上梓, 출판)했다. 그 후기에는 상술한 “35살까지 여행을 하라”는 이주인 시즈카 씨의 조언을 인용해 ‘35살이라는 나이는 분명 이주인 씨의 경험에 근거한 교훈이겠지요. (중략) 배운다면 이른 시기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라는 ‘여행의 나이 제한’에 대한 답을 냈다.
본서를 읽고 그 답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Ⅰ-三 ‘그것은 마치 일본미술처럼 한 번 좋아하게 되면 결코 질리지 않는다’ 페이지에는 ‘젊을 때는 눈으로 본 것, 느낀 것……모든 것을 흡수하는 힘이 있으며 아직 유연한 뇌와 정신이 눈 앞에 있는 것의 본질을 파악하려 한다’고 했으며, 또한 Ⅰ-七 ‘여행은 독서와 닮았다’에는 ‘내가 때때로 젊은이들에게 여행을 추천하는 것은 인간 형성에 여행은 상당히 질 좋은 수업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나도 그 젊은이 중 한 사람이었던 바인데 35살이 가까워진 지금 이주인 씨의 말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게 될 뿐이다. 그리고 이주인 씨의 조언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또한, 내 젊음의 산물이었음에 틀림없다.
여행의 매력을 단적으로 표현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나로서는 <삶의 모습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 자신은 쿠바에서는 헤밍웨이가 본 경치를 느끼고 스페인에서는 살바도르 달리의 위트를 엿봤으며 스리랑카에서는 제프리 바와의 얼을 접했다.
그렇게, 일체의 장소에서, 일체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흔적을 느낀 끝에 나는 스스로를 응시한다. 과연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그들처럼 살 수 있겠는가.
여행을 하는 것은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며 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스스로의 인생과 마주하는 것이다. 여행 에세이를 연재하며 그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삶의 모습과의 만남=여행이라면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본서의 마지막은 나가토모 케이스케 씨에게 바쳤으며 이에 미루어 이주인 씨가 나가토모 씨를 얼마나 경애했었는지가 전해진다.
소중한 시간과 만나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한다. 그 시간은 이별하더라도 여전히 우리 마음에 머문다.
여기서 졸저 인용을 자제하지 않는데 사실 ‘할 수 있다면 스티드로’의 마지막 연재도 이별에 대한 것이었다. 회사 사장인 쟈니 키타가와 씨와 관련된 것이다. 거기서 그에 대한 건 다 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서를 읽고 떠올린 사건이 있다.
쟈니스사무소에 막 입소했던 무렵 잡지 촬영으로 하와이에 가게 됐고 그 취재에 쟈니 씨도 동행했다. 일을 하다가 빈 시간에 호텔 수영장에서 동료들과 놀고 있자 자칭 헐리우드 배우라는 백인 남성 두 명이 말을 걸었다. 영어는 몰랐지만 그들은 아무래도 “같이 사진을 찍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듯했으며―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기묘한 요청이다―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아무 의문도 갖지 않고 이에 응했다. 그 광경을 멀리서 보고 있던 쟈니 씨는 엄청난 얼굴로 나에게 달려와 그 백인 남성들을 내쫓고 이렇게 말했다.
“YOU, 최저야. YOU는 프로인데 왜 거절하지 않는 거야”
그리고 그는 “해고다!”라고 나에게 말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왜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되묻지 않고 그냥 그런 거라고 나애게 들려주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되묻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한 말의 의미를 혼자서 상상하고 있다.
나가토모 씨가 이주인 씨에게 건넨 말에 “인간이 만든 것에는 그에 상응하는 값이 붙는 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어쩌면 쟈니 씨는 나를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가토모 씨가 소중히 여긴 시계와 골프화처럼 나도 그런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겠느냐고, 인용 부분을 읽고 생각했다.
이처럼 본서를 읽고 있자면 잊고 있던 기억이 연이어 상기된다. Ⅲ-二十 ‘거기에 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있겠죠’의 문말을 보았을 때 그 문장은 있었다.
‘작가는 머리 속으로 문장을 쓰는 게 아니라 발로, 몸으로, 그곳에 가면 자연스레 그곳에서 배양된 것이 있다’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것도 이주인 시즈카 씨에게 들은 것이다.
나는 스마트폰에 메모를 했던 것 같아 스크롤 했다. 2013년 9월 1일까지 거슬러올라가자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35살까지 많이 경험하고 견문을 넓히고 몸으로 문장을 쓰라.
이주인 씨와 처음 만난 그 파티 후, 나는 이렇게 메모 했다.
완전히 기억에서 누락돼 있던 것은 한심하기 그지없지만 변명을 하자면 이주인 씨의 조언은 내 안에 계속 남아있었기에 메모를 복습할 필요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몸으로 문장을 쓰라’는 부분을 깜빡했었다.
그로부터 8년. 내 저서 수가 7권이 된 지금 이주인 씨의 말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상상은 체험으로부터 출발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풍경은 스스로 보고 들은 것에서부터 탄생하는 것이다. 즉 상상에는 체험이 불가결한 것이다.
스마트폰의 메모에는 뒷부분이 있었다.
―사보타주를 한 녀석은 바로 사라진다. 열심히 했을 때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있다.
이주인 씨의 말을 그대로 받아쓴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런 말을 나에게 전했었다. 그리고 이주인 씨는 내가 수상한 제42회 요시카와에이지문학신인상의 선고위원이었다.
두 번째 만남은 이 문학상 수상 회견이었다.
이주인 씨는 8년 전과 다름 없는 날카로운 눈빛과 온화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잘 했어요” 그가 닿은 내 어깨는, 따뜻했다.
나는 그 때도 긴장해서 그다지 잘 대화 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한 묻고 싶었던 것을 묻지 못했다.
“35살까지 2년도 남지 않았는데 코로나 시국에 여행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이주인상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그 답도 본서에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책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여행과 독서는 닮았다.
(카토 시게아키 / 탤런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