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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김혜리, 김소미 기자가 나눈 <오디세이> 이야기 정리 (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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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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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 크리스토퍼 놀란 하면 시간을 재편하는 걸 평생의 숙원 사업인 것처럼, <메멘토>부터 시작해서 선형 서사로 잘 가지 않는다. 여러 가지 방식을 실험해 왔다. 거꾸로 가기도 하고 범위가 다른 시간대를 동시교차 편집하기도 하고. 마법이라는 장치를 통해 서로 다른 시간을 복기하기도 하고. 플래시백 정도는 기본으로 있는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오디세이>는 컷이 많긴 한데 워낙 잘 알려진 이야기라 덜 혼란스러웠다. <오펜하이머>만 해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니까 조금 공부가 필요한데,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이 끝났는데도 ‘오디세우스’만 집에 못 돌아왔고, 그가 부하들과 탄 배가 신의 분노를 사서 계속 산 넘어 산의 역정을 통과해서 결국 귀향한다는 것만 알면 된다. 그걸 따라가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그걸 어떤 식으로 플래시백의 계기로 줬을까. ‘오디세우스’가 들른 섬 가운데 7년이나 머물게 되는 곳이 ‘칼립소’가 있는 곳인데, 기억이 안 나다가 꽃을 좀 덜 먹으니까 트로이 전쟁의 승전부터 순서대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을 떠올리는 플래시백을 편리하게 이용했다. 근데 ‘칼립소’가 물어보면 술술술 대답하는 걸 보면서 ‘기억이 안 나는 거 맞아? 잃은 거야, 안 잃은 거야?’ 싶었다.

 

김소미 : 저는 로토스가 있다면 현대인에게도 심리치료에 굉장히 유용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연합의 왕들 중에서도 가장 작은 규모의 섬나라의 통치자이고, 유일하게 돌아오지 못한 남자고, 그래서 너무나 집으로 돌아오기를 꿈꾸는 남자라는 걸 알고는 있는데, 놀란이 주목하는 심리기제는 아마도 이 영웅은 그렇게 집에 가고 싶다고 하면서 약간 집으로 돌아가기를 회피하는 듯한 상태를 보여준다. 그의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는 귀향을 두려워하는 심리기제가 있다. ‘묘하게 뒤틀린 마음의 원천에는 해소되지 않은 죄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라는 풀이에 굉장히 집중하는 영화다. <인셉션> 식으로 말하면 놀란은 ‘오디세우스’의 림보를 보려는 거다.

 

김혜리 : 그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겉으로는 ‘나와 부하는 집으로 가야 하고, 내 부하들의 귀향엔 나 자신조차도 방해가 되선 안 된다’라고 말한다. 사실은 같이 가야 하니까 자기가 가고 싶지 않더라도 부하들을 위해 이타카로 돌아가는 건 꼭 해야 하는 일인데, 만약 ‘오디세우스’가 개인적으로 귀향을 꺼리고 있다면 이유는 2가지로 추정된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연합 장군 중에서 지략이 뛰어나고 스마트한 사람으로 캐릭터가 잡혀있다. ‘오디세우스’가 목마라는 간지를 내서 폐색에 지쳤던 그리스군이 상대방 성 안으로 무사 통과해서 들어가고, 밤에 목마 안에서 우르르 뛰어나와서 성문을 열어준다. 그 어렵던 10년간 못했던 함락을 해내는 건데, 적군한테 ‘전쟁 더 이상 하지 말자’고 선물로 남겨둔 그 기념물을 갖고 들어간 거다. 고대 전쟁의 도의인 건데 그걸 이용해서 상대방 뒤통수를 친 셈이 되기 때문에, 그건 사실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일인 거고. 이 영화가 관객들이 모를까봐 여러 번 강조하는 이야기가 ‘제우스’의 법이다. ‘내 집에 온 손님을 네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대접해라. 왜냐하면 그는 신이 가장한 나그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게 지중해 세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법인 것처럼 나오고 원전보다 훨씬 더 강조하는 거 같다. 말하자면 그 목마는 그 계율을 깬 거다. 그래서 그것과 그날 자기가 목도한 살상 때문에 깊은 회의에 빠졌다는 설정인데, 사실 저는 10년간 그만한 살상을 안 본 것도 아닐텐데 꼭 그날 밤 살육 때문에 이 장군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 현대적인 해석 같아서, 오히려 자기가 위법했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컸다는 생각이 1번째 이유다. 2번째는 저만의 생각인데, 이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면 중에 자기만의 자존심이 굉장히 세달까? 남성적인 긍지 같은 게? 이를테면 사냥을 할 때 활시위를 먼저 튕겨서 사냥감이 도망칠 기회를 준 다음에 쏘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자기만의 행동 규범이 있다. 사냥이란 건 일방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이래야지 공평한 싸움이 된다고 보는 거다. 그건 아무도 안 시켰는데 자기가 만든 거다. 그리고 모험 중에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가 나오는데, ‘키클롭스’로부터 벗어날 때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 배에 탔고 빨리 도망가는 게 합리적인데 그 괴물한테 복수하기 위해 눈을 쏜다. 옆의 부하는 괴물이 성내면 우리가 위험해진다며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눈을 쏘고, ‘키클롭스’가 ‘포세이돈’의 아들인 관계로 그 다음부터 항해가 더 힘들어진다. 이렇게 합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데 한방을 질러야지 속이 시원한 성격이 있는 걸 봐서 ‘오디세우스’는 굉장한 모험가고, 정착보다는 미지의 세계로 자꾸 나아가고 위험스러운 폭력에 몸을 던지고 싶어하는 본능이 자기 안에서 싸우고 있는 것 같다. 군주니까 그러면 안되는데. 그래서 사실은 집에 안 가고 방황하고 싶어하는 기질이 그의 안에 있고, 가장과 군주로서의 책임감과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이건 놀란 감독이 항상 얘기하는 것이, 자기는 영화 때문에 아이들을 떠나 있고 거기에 죄책감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그 반대편에 할리우드의 최강자로서의 야심이 또 있는 거다. 그런 걸 자꾸 투사하는데, 표면적으로는 관객이 받아들이기 쉬운 살육의 죄책감을 내세운 게 아닐까 짐작해봤다.

 

김소미 : 오히려 그 양립하는 이중성・모순성이 더 적극적・성공적으로 투사됐다면 접혀진 부채의 살날들이 훨씬 더 많고, 그게 관객을 효과적으로 사로잡을수록 영화의 여러 면에 가닿는 거라서, 그랬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그렇기도 하고. ‘오디세우스’가 어떤 인물인가 하면 말 그대로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고 나중엔 나라로 돌아가는 사람인데, 어떤 면에서는 계속 도망치는 사람이기도 하고 대단한 전쟁 영웅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굉장히 꾀 많은 사람으로 수식되기도 한다. 다방면의 면이 있다고 묘사된다. 그러니까 원래의 ‘오디세우스’는 더 복잡한 남자인데. 죄책감이라는 근대적인 인간형의 감정, 놀란의 국적을 생각하면 굉장히 기독교적인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전면에 나와버리면서 오히려 많은 것들을 밀어버린 측면이 있다.

 

김혜리 : 이해하기 쉽게 만든 거다.

 

김소미 : 그러다보니 멜로드라마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그것이 또 감정으로 작용한다. ‘죄책감을 가진 남자가 어떻게 자기 안의 여러 가지 두려움과 회피 심리를 극복하고, 마침내 왕국으로 돌아와서 평생 자기를 기다린 아내 ‘페넬로페’와 재결합하는가’. 완전 러브스토리의 감동으로 밀어붙인 경향이 있다.

 

김소미 : 예전에 제가 한 비평집에서 ‘오디세우스’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호메로스의 판본에는 없지만 후대에 전승되는 트로이 전쟁 신화 중의 일부다. ‘오디세우스’는 사실 트로이 전쟁에 너무 나가기 싫어서 미친 척 연기를 한 거다. 미쳤으면 전쟁에 나가지 못하니까. 처음에 소금에 밭을 뿌리면서 밭을 가는 시늉을 하는데, 사자가 쟁기 앞에 어린 ‘텔레마코스’를 갖다 놓으니까 ‘오디세우스’가 자기도 모르게 쟁기를 틀어버리면서 온전한 정신이 들통난 거다. 그만큼 전쟁에 나가기 싫었던 남자, 겉으로는 굉장한 영웅이고 통치자지만 그 안의 유약함과 평화롭게 살고 싶은 인간다운 욕망을 가진 남자가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휩쓸렸고. 사실 전쟁에 관심도 없고 전쟁에 나가기도 싫지만 막상 그리스 연합의 일원으로 참전하게 됐을 때 지략가적인 면모를 발휘해 최선을 다하고.

 

김혜리 : 일단 나갔으니까. 이겨야 집에 빨리 가니까.

 

김소미 : 그래서 트로이 목마라는 어떤 탁월한 전수를 고안해내버린 거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아주 지혜로운 자였는데, 그것이 불러올 무시무시한 참상까지는 헤아리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이게 결국 누구랑 겹쳐지냐면, 전쟁 앞에서 자기의 선택이 곧 죄가 되는 원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남자라는 점에서 <오펜하이머>와 정신적인 속편을 이루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김혜리 : 영화 보고 이틀째인가, ‘아니, 이 두 오씨 남자가? 두 시나리오가 거의 복사 아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궤적이 너무 비슷하다. 놀란 감독이 ‘시간 조작’이라는 형식적인 모험을 하는 것도 필모그래피 전반에 다 있지만, 주제 면에서도 ‘위대한 남자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리고 그 남자들이 대체로 반성하려고 한다. 그러나 세계의 중심은 여전히 그들이다.

 

김혜리 : 스티븐 스필버그의 주된 감정이 ‘경이감’이라면 놀란은 ‘회한’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뒤집어서 얘기하면, 지난 20년간 놀란은 <오디세이> 변주를 감질나게 해오다가 마침내 원본을 만든 거다. 힘과 돈을 갖게 됐을 때.

 

김혜리 : 한편 한편 보면 그중에서도 ‘오펜하이머’는 ‘오디세우스’와 여정이 너무 비슷하다. 자기의 뛰어난 지력・지혜를 이용해서 이쪽은 히로시마를, 이쪽은 트로이를 파괴하고. 둘다 아내한테 못할 짓을 했고. 계속 회한에 차서 그걸 곱씹으면서 살아간다. 이런 상황을 장면 배치까지 해서, 놀란의 머릿속에 있는 내러티브의 거푸집 같은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오펜하이머>와 <오디세이>가 개별 작품들 중 놀랄 만큼 유사하다. 시대적 배경 같은 게 다르니까 언뜻 떠올리지 못하지만 막상 살을 발라놓고 뼈만 놓고 보면 재밌다. 비슷함의 정도가 상당히 높다.

 

김소미 : <오디세이아>가 기본적으로 모든 주인공들 서사의 원형이라서, 사실은 놀란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많은 구조는 ‘오디세우스’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오펜하이머’나 놀란 영화의 남성 주인공들이 유달리 ‘오디세우스’ 유형이기 때문에 놀란에게만큼은 <오디세이아> 각색이 자기가 앞서 해온 것들의 원본, 드디어 소스코드로 다가갔다는 필모그래피적 의미를 확실히 붙여볼 수 있다.

 

김소미 : 근데 그동안 관객들은 놀란의 많은 영화들이 기본적으로 복잡하다고 인식을 했다. 시간이 비선형적이고. 그 계보에서 보면 사실 신화라는 것의 이야기 형태 자체는 놀란이 추구했던 방향과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모든 결말을 알고 있고, 얼핏 스토리텔링의 형식은 구슬로 누가 전해도 그 뼈대가 쉽기 전해지는 단순한 양상의 이야기일 수 있다. 겉면으로 봤을 때 양태는 달라보이지만, 사실은 작동 원리는 자기의 원본에 다가간 경우가 아닐까 싶다.

 

김소미 : 그런 면에서 감동이 있기도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놀란은 자기가 지어올리는 세계의 형식에 통달한, 그 자신이 내러티브의 정교한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주인공들 역시 대부분 판을 짜는 사람들이었다. <인셉션>의 꿈의 설계자, <테넷>의 시간의 작전가, <오펜하이머>의 폭탄 전문가가 모두 그렇다. 그러다보니 투박하게 표현하면, 놀란은 결국 ‘남성 천재’들을 사랑하는 것 같다.

 

김혜미 : ‘배트맨’도.

 

김소미 : 그렇다. 근데 ‘오디세우스’는 생각보다 못난 면이 많다. 교활하고, 폭력성이 제어가 안 되는 부분도 있고. ‘키클롭스’의 동굴에서 돌아나오는 와중에 굳이 화살을 쏘고 간다는 것이 제겐 오만으로 느껴졌다. 이미 ‘키클롭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자기의 존재와 용맹함을 한번 알리고 가는 남자인 거다. 어떤 순간엔 그 가오가 제어가 안 되는 거다. 그게 ‘오디세우스’인데, 놀란은 굉장히 많이 절제했다. 교활함도 많이 덜어냈고.

 

김혜리 : 절제한 편이다. 그건 보여줘서 다행이다. 일단 캐스팅, 맷 데이먼이 갖고 들어오는 느낌이 있다.

 

김소미 : 맞다. 아주 바르고, 덕성 있는 지략가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 점에서 <오디세이>가 말 그대로 정말 놀란의 남성형에 부합하는 영화였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유리한 것은 분명하고. 그러나 원전을 읽은, 원전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약간의 재미를 덜어낸 각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혜리 : 그런 복잡한 구조와 정교한 영화 테크놀로지・비전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이게 <오디세이아>의 깊이 있는 해석인가?’ 생각하면 딱히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서사시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아무도 그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가서 아주 늙은 나이까지 평안을 찾는다. 바다의 영웅인 그가 혼자서 고독하게 내륙까지 향하며 노를 들고 갔는데, 사람들이 노가 뭐 하는 물건인지 모르는 땅에 갔을 때 비로소 평온에 다다른다는 멋진 엔딩이다. 근데 이 영화는 화려한 제의 같은 엔딩을 만들어냈다.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옥좌를 물려주고 사랑하는 아내랑 떠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도 생각나고 놀란답게 바꾸긴 했는데, 원전에 있던 그 결말이 사실은 ‘오디세우스’라는 남자의 히스토리를 생각하면 조금 더 만족스러운 엔딩이 아니었을까 한다.

 

김혜리 : 제가 웃었던 점은, 인간을 돼지로 어떻게 바꾸느냐였다. 놀란은 너무 아날로그적이고 싶은 거다. <해리 포터>처럼 뿅! 해서 바꾸는 게 아니라 계속 만진다. 촉각적으로 남자를 계속 쓰담쓰담 하며 돼지로 바꾸는 걸 보고 ‘진짜 아날로그하고 싶었구나’ 생각했다.

 

김혜리 : 이건 농담인데, 사실은 판타지 요소가 많을 수 있는 이야기다. 기기묘묘한 게 많이 나오고. 영화 보면서 든 생각은 ‘정말 최대한 현실적이고 싶었구나’였다. ‘몬스터다!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이다!’ 같은 걸 최소화하고 싶었던 것 같다. ‘키클롭스’는 그나마 많이 등장하고 자세히 보여주는데, 나머지는 아니다. 반인반수 ‘세이렌‘은 나오긴 나오는데 되게 멀게 처리했다. ‘오! 괴수다, 판타스틱한 몬스터다’라고 주의를 끌지 않게 했고, 해협의 바다괴물도 자세히 안 보여주고 촉수가 쑥 나와서 배를 위협하는 정도로만 나온다. 고대의 환상 세계를 많이 안 보여준다. 원작을 보면 신과 인간이 같이 있던 세계인데, 이 영화의 신은 젠데이아의 ‘아테나’만 우리가 볼 수 있고, ‘제우스’는 번개로 대체한다거나, ‘아폴로’는 ‘‘아폴로’가 키우는 소가 저 섬에 있다’ 이 정도. 초현실적인 요소를 엄청 최소화해서 아날로그 미학하고 상통하게 보여주려는 방향성이 느껴졌다.

 

김소미 : 괴수를 그나마 보여준다고 할 수 있고, 신을 배제했다는 게 놀란 버전의 <오디세이아>의 굉장히 중요한 선택 같다. 이들이 대신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냐면 ‘아테나’를 제외하곤 현실 세계의 동태들로 빗대어진다. 실제로 ‘제우스’가 노하면 번개를 친다던가 ‘포세이돈’이 노하면 파도가 된다던가, 그 시대에 믿었던 것처럼 신이 곧 바다의 거친 풍랑이 되는 시기고, 이것이 서사의 위기로 연결된다. 어떤 점이 재밌냐면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이 다 함께 거친 바다를 건너가고 있을 뿐인데,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아들 ‘키클롭스’에게 화살을 쏴 화나게 해서 이런 시련이 오는 것이라고 주관적으로 해석해서 믿어버린다. 이 파도는 ‘포세이돈’이라고. ‘포세이돈’은 보이지 않으므로 그걸 ‘포세이돈’이라고 믿는 주관성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부하들은 ‘오디세우스’에 대한 신의를 잃게 된다. 역시나 놀란은 근대적인 인간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개인적인 주체로서 판단하지 않는다면 부하들은 ‘오디세우스’를 의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테나’는 유일하게 왜 보이냐는 질문을 해보면, 젠데이아를 이렇게 쓰면 안될 것 같은데, 흰옷을 입고 주로 ‘오디세우스’를 향해 실망스럽다는 듯 고개를 젓는 여자로 등장한다.

 

김혜리 : 진짜 연기랄 것도 없달까? ‘쯧쯧, 그건 아니지’ 하며 둘째 손가락을 흔드는 것 같은 표정을 내내 짓고 있으니까.

 

김소미 : 마지막에서야 눈물을 좀 흘리는데, ‘아테나’만이 보이기 때문에 다르게 보이지만, 존재 형식은 ‘제우스’나 ‘포세이돈’과 사실상 같다고 본다. 객관적인 이야기의 층위에서 ‘아테나’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오디세우스’에게만 보이는 그의 내면, 즉 주관적인 층위에서만 ‘아테나’가 존재한다. 연장선상에서 종합하면, 우리가 아는 신화에서 학습한 올림포스의 신은 놀란의 <오디세이아>에는 없다. ‘아테나’ 또한 신이 인간에게 내려온 게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 신의 형상을 입고 밖으로 삐져나온 것에 가깝다. 그러니까 사실 <오디세이>는 신화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으로는 오히려 심리적인 사실주의로 향하는 작품인 거고. ‘신의 내면화’라는 선택을 하면, 신들이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신적 주체가 아니라 ‘오디세우스’의 거울이 되는 거다. ‘아테나’는 이 영화에서 죄책감을 심하게 앓는 ‘오디세우스’의 거울인 거다. 신들이 독자적으로 능력을 펼치는 고대 그리스의 세계를 꿈꾼 관객들에게는 이것이 일종의 축소인 거다.

 

김혜리 : 근데 저의 즐거움은, 어렸을 때부터 <오디세이아>를 읽으면서 제가 상상했던 세계를 일치율 높게 보여줘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그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했을 법한 걸 보여주지 않나. 가령 ‘목마를 끌어당길 때 그렇게 무서운 걸 어떻게 트로이인들이 트로이 성 안으로 갖고 들어갔나’ 같은. 저는 항상 ‘목마가 얼마나 컸을까? 그 안에서 어떻게 몇 날 며칠 잠복을 했을까?’가 궁금했다. 책 삽화 같은 걸 보면 어떤 건 목마가 건물만 하다. 이건 비교적 작고 특이한데, 말이 앞발을 들고 세로로 직립해 있는 모습으로 디자인한 거다. <덩케르크>를 보면 배가 침몰할 때 그 안에서 병사들이 겹쳐져서 서로가 서로를 누르고 그 안에서 배설물 같은 것들이 있고 어둡고 눅눅하고 더러운 불편한 상황에서 사람이 찌부되어 있는 걸 보여주는데, 딱 ‘고대의 트로이와 그리스에선 어땠을까’를 목마 안에 적용시킨 거다. 웃겼던 게, 맷 데이먼이 야습하려고 목마 배를 열고 동아줄을 잡고 뛰어내려 오는데, 갓 태어난 기린처럼 쥐가 나서 다리를 잘 못 펴고 처음에 뒤뚱뒤뚱하지 않나. 그런 부분이 역시 세심하고, 놀란 식의 신화 재현 같았다.

 

김소미 : 아마도 관객이 이 영화에 확 끌려들어가는 순간이 있다면 그 트로이 목마 내부의 재현 씬이 등장하면서부터일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그 밑에 깔린 병사들은 며칠 내에 익사했다는 서술과 함께. 그 내부의 풍경이란 건 너무 비루한 거다. 이후에 벌어지는 그리스의 장밋빛 승리, 굉장한 영웅주의와는 너무나 먼 거리의 풍경들이 트로이 목마 내부의 참상이었고. 그 비루함을 직시하는 것은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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