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기들 엄청 왔더라 ㅠ 두 시간 가까운 상영시간이
만만치 않아서 사방에서 뒤척이고 웅성웅성 하던데
어차피 애들 영화에 어른이 끼어서 보는 것이므로
내가 이방인이다 생각하고 쥐죽은듯이 보았음
근데 대체 애들보다 더 떠드는 어른들은 뭔지 ㅠ
'고래보석의 전설'은 후속 극장판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로미(캐치 타니핑) 극장판 2편임
1편이 특별히 로미와 하츄핑은 왜 소울메이트가 되었나
하는 점을 다루어서 하츄핑의 비중이 커진 것이고
그 제목이 극장판 브랜드가 된 것이라
하츄핑은 이번 편에서는 제목만 빌려준 것임
2편은 주인공 로미와 엄마 밸리타의 관계가 중심이며
하츄핑은 로미 곁의 친구 정도라 보면 되겠음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고 원형적이라
완성도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건 이 영화의 타겟 연령대가 너무 낮기 때문임
그래서 유아가 이해하도록 의도적으로
단순화한 것인지 그냥 각본이 덜 정교한 것인지
분명하게 분간이 안 됨
그래서 스토리보다 정치성을 들여다보는 게 더 재미있음
유아용이라고 해서 배경이 왕정이어야 할 이유도 없고
주인공이 공주여야 할 이유도, 주요 캐릭터로
미형 인간만 배치해야할 이유도 없기 때문임
그러니까 제작진이 수많은 세계 가운데 일부를
선택한 것이고 사실은 이것이 이 영화의 성격이 됨

그리고 나는 이 영화가 의외로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했음
하츄핑은 표면만 보면 특히 젠더 표현 면에서
진보적인 부분이 많음
주인공 로미는 똑똑하고 재능이 많고
왕비 벨리타는 왕국 최고의 마법사이고
해적 선장 아히죠라든가, 오래 전에
왕국을 구한 전설의 공주라든가
여자아이가 꿈꿀 수 있는 많은 세계를 열어두었음
반면에 영화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질서들은
왕정이라든가, 왕위 세습, 선택받은 혈통,
운명, 특별한 교육과 재능 같은 것들인데
신분이 책임이나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
디즈니 공주들에 비해서 하츄핑에서는
왕궁이나 높은 신분 자체가
좋은 것으로 그려지는 면이 있어 보였음
누구나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공주라는 것부터가 멋진 일이라는 세계 ㅠ 근데
사실 이것은 보수성의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고

더 수상하고 보수적인 요소는 모녀 관계의 묘사임
영화에서 로미는 마법공부 대신에 요리를 하다가
불을 낸 뒤에 벨리타에게 혼나고
엄마 미워!ㅠ 하고 뛰쳐나간 뒤에 엄마가
레비어스에게서 자신을 지키다 납치당한 걸 목격한 뒤에
나 때문에 엄마가! 마법공부 열심히 할 걸!
엄마 말 잘 들을걸 ㅠ 하면서 힘들어하는데
이것은 이야기 내내 이어지며 영화의 주제가 됨

이건 영화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존재처럼 보이는
해적 아히죠에게 더욱 두드러지는데
그녀는 해적 선장이고 남자 부하들을 거느리고
잘 싸우고 용감하고 독립적인 성인임
그런데 한편으로는 엄마를 잃어버린 딸이기도 함
아히죠의 사연은 로미와 쌍둥이처럼 닮았음
해적 캡틴인 엄마가 무모하게 행동하던 아히죠를
구해주려다가 레비어스에게 대신 희생된 것
그러니까 아히죠는 대가를 치른 미래의 로미이며
착해지고 난 뒤에 로미에게 잔소리를 하는게
이유가 있는 사람이 됨
결국 엄마 말 잘 들으라,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하는 교훈을 무려
벨리타, 아히죠의 해적 엄마, 어미 보석고래까지
세 쌍의 관계를 통해 반복하게 되는 셈임
강력한 마법사여도 되고 왕국을 구해도 되고
꿈을 가져도 되고 해적이어도 되는데
엄마 말은 잘 들어야 하는거!!
공주도 효녀, 해적도 효녀, 고래도 효녀(?)임!ㅠ

여기에는 실리적인 이유가 있어보이는데
이 영화의 주 타겟은 어린 여자아이들이지만
그걸 돈 내고 보여주는 사람들은 부모임
티켓을 사서 같이 들어가고, 팝콘을 사서 옆에 앉고
대체 뭔 영화인지 105분동안 같이 보는 입장에선
영화가 애들한테 어떤 메시지를 심어주는건지
꼼꼼하게 확인할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제작진 입장에서는 어린이들보다
더 무서운 심사위원이 부모가 됨
그러니까 이 스토리는 한편으로는 부모 특히
엄마를 정면으로 포섭하는 영화라 할 수 있겠음 ㅠ
이게 노골적으로 보이는 것이 클라이막스의
백지영 투입 시도로
백지영의 '처음이라서'는 어린이 영화 음색이 아니고
딱 엄마 세대가 느낄 수 있을법한 가창과
정통 발라드 스타일의 작곡으로 되어 있어서
누가 봐도 부모와 자녀를 함께 노리는 곡임
한 곡으로 티켓 두장 처리! ㅠ
이렇게 안심되는 영화가 어디 있겠음
강하고 활동적인데 '엄마 필요 없어!' 이렇게 안하고
남자친구 만나고 모험하고 엄마한테 반항도 하지만
결국 엄마의 사랑과 책임을 이해하는 ㅠ
근데 뭐 극장에 있는 절대다수의 어린이 관객이
부모랑 같이 오는거니까 ㅠ

반면에 정치성이나 각본과는 별개로
특별해 보이는건 기술적인 성취임
이 영화는 어려워 보이는 걸 많이 골랐는데 일단
무대를 바다로 옮기면 제작 난도가 몇 배가 됨
수중 산란이나 빛, 물 표현, 굴절이라든가 물보라,
인물들의 움직임이나 색조 공간 묘사, 파도,
수많은 물고기의 표현이라든가 잠수함, 범선,
보기에도 쉽지 않을 것 같은 장면과 소재가 많고
그것들이 그렇게 어색하지가 않고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들이 많음
그리고 애들 영화니까 대충 만들지 않겠다는
태도가 가장 느껴지는 부분은 음악임
뮤지컬 넘버들이 좋고, 적당한 타이밍에 들어가 있고
특히 클라이막스에 나오는 박혜원의 사랑의 빛은
각본의 병목을 오로지 기세로 돌파해야 하는데
그걸 작화와 액션과 박혜원의 굉장한 가창으로
설득시켜버렸다는 건 훌륭한 점임

이 영화는 설정에서 수상한 점이 많지만 어쨌든
제작진이 쉬운 핑계를 별로 사용하지 않았음
지루한 구간이 별로 없고, 매 순간 그림이 예쁘고,
액션과 노래와 자잘한 사건들이 있고
애들이 보니까 이 정도면 됐지
라는 태도가 어떤 순간에서도 별로 보이지 않으며
이것은 이 영화의 결정적인 장점임
유아는 뮤지컬 편곡, 수중 랜더링,
물고기의 세심한 움직임, 물 표면의 까다로운 묘사
바닷속 세계를 만들 때의 복잡한 색상 선택
케이팝 디바의 가창 같은 세부 요소들을 잘 모름
하지만 화면이 크고 아름답고, 멋진 음악이 나오고
귀엽고 매력있는 주인공들과 거대한 괴물이 나오고
압도적인 클라이막스가 있으면
그런 것들을 느낄 수는 있음
어린이들의 그런 체험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영화임

그리고 의외로 완구 끼워팔기도 별로 없는거 같더라ㅠ
1편은 흥행이 불확실해서인지 딱 봐도
이건 극장 나가면 팝업스토어에서 팔겠네 싶은
마술봉, 펜던트, 집, 버스 이런게 왕창 나왔는데
극장판으로만 큰 수익을 낼 수 있는게 확인돼서인지
속편은 오로지 작품에 집중함 ㅠ
완구는 완구대로 팔고 영화는 영화대로 가치있게
남겨서 IP사업으로 돈 벌 수 있다는 자신감 ㅠ
이게 야망이지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