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하자면, '파닥파닥'은 지금까지 내가
본 것들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최악의 영화였음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런 내용인지 전혀 몰랐기 땜에
그리고 그 감상 경험은 악몽같은 트라우마로 남아
나에게 영원한 충격을 주었음
나는 다시 '파닥파닥'을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그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임
심지어 그 영화는 뮤지컬이었음! 그런 악랄한
영화를 만든 감독은 지옥에 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함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보기 전 알았던 유일한 정보
'미스터 로봇'의 감독이 '파닥파닥'의
이대희라는 건 빨간불 경고와 같았음
홍보물만 보면 안전한 상업 영화 같은 모양새이지만
절대로 그럴 리가 없으니까!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음
2055년, AI 로봇들이 여러가지 용도로 쓰이고 있는
근미래 사회의 로봇 쇼케이스 현장에서
신제품 로봇 맥스가 오작동을 일으킴
현장에서 로봇 관리 및 감시를 맡던 요원 한태평은
갑작스레 인간을 덮친 로봇 맥스와 맞서 싸우다
사고가 나서 혼수상태에 빠짐
그리고 깨어나보니 그의 의식은
폐기되기 직전인 로봇으로 옮겨가 있었음
이는 회사의 임원이자 죽은 사장의 동생인 강민의
음모인데, 그의 속마음을 사장의 딸이자 강민의
조카인 나나가 엿듣게 되고
죽을 위기에 처한 나나를 맥스의 몸에 들어간
한태평이 구해주면서 둘은 함께 도망치게 되는데..

왠지 복잡해 보인다면 내가 설명을 제대로
못해서일 거고 ㅠ 막상 영화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음
터미네이터, 로보캅, 레옹을 3분의 1씩 섞은 내용이라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 영웅 서사이고
큰 틀도 그렇게 짜여져 있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위기부터 결말까지 전개를 예측할 수 있음
그렇다면 익숙한 줄거리를 쓴 안전한 영화인가?
그럴 리는 없지. '파닥파닥'의 감독이니까.
이 영화의 제일 못된 점은 등장 인물들이 마치 '또봇'
처럼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외양을 하고 있다는 것임
하지만 작중의 표현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미스터 로봇'의 액션은 시각적으로 매우 과격하고
그 수위가 높은 편임
시작부터 사람들이 팍팍 죽어나가기도 하고
어떤 순간은 고어 영화를 방불케하기도 함
귀엽고 순진한 외형을 이용해서 관객의 감정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방식이라 하겠음

그러니까, 틀은 안전하고 익숙한데 그 내용물은
미친 사람 손을 거친 걸로 보이는 것임
여기서 3D 애니메이션 특유의 이질감은 특히 중요함
이런 캐릭터 디자인에서는 사람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고 로봇은 로봇처럼 보이지 않는데
그 때문에 작중의 모든 존재가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 것 같고 이 영화에서 죽거나 다치는
대부분의 존재가 로봇인데도 그 신체 훼손이나
고장이 진짜 아프게 느껴지는 면이 있음
실사였으면 트랜스포머 같은 '로봇 액션'으로
보였을 장면이 정말로 고통스런 혈투가 되는 것임
로봇들이 뚝뚝 흘리는 시커먼 기름이 무엇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고 이를 이용해서
매우 짓궂고 잔인한 묘사를 보여주기도 함
이 방식을 캐릭터 묘사에도 똑같이 사용하고 있어서
심지어 주인공인 나나는 별로 착한 애도 아님
자기 성질, 욕망, 그대로 다 드러내는데다
자신에게 뭐가 필요한지 영악하게 써먹을 줄도 알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녀가 대적하는 악역인 삼촌은
더욱 무자비한 심연의 존재가 됨
그가 고안한 괴물인 여성형 로봇은 보는것만으로
기분이 나쁜데, 그런 불쾌한 정신세계와 저급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면
너무나 설득되는 결과물임

그러니까, 로건, 레옹, 터미네이터 2의 감성.
보호자-아이의 유사 부녀 관계, 희생, 눈물, 사랑
을 다루는 것 같은 컨셉인데도 한편으로는
하츄핑의 주인공처럼 말간 눈의 순진해보이는
소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성질을 부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로봇은 자신의 처지 자체를
비관하면서도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기름처럼
피를 뚝뚝 흘리고 팔다리가 잘려나가면서
죽을 힘을 다해 그 세계에서 제일 기괴한 괴물
터미네이터3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집요한
여성형 로봇과 맞서 싸우는 그런 애니메이션인 것임
시각적으로나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훌륭하지만
이 영화의 결말이 인상적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임
우리가 아는 익숙한 감동은 계산되어서 감흥이 약함.
똑같은 얼굴, 똑같은 어법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
'아, 여기서 울게 하려는구나' 하는 걸 쉽게 알 수 있고
이런 시도들은 대부분 얄팍하다고 여겨짐

반대로 기괴하고 낮선 형식을 통해 감동을 주면
보는 사람들은 그걸 더 강렬하게 느낌
왜냐면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상한 지점에서 진짜 감정이 툭 하고 튀어나왔때
그 모양이 실제 같고, 진실하게 여겨지는 것임
그래서 한없이 아동용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귀엽게
그려진 나나의 얼굴을 보며 진심으로 빠져들게 되는
엔딩신을 보는 건 매우 놀랍고 독특한 경험임
얘가 예쁘게 생겨서 이 내용에 몰입한 게 아닌데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 거니까
이 모든 과정을 겪게 한 뒤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그 순간 감독은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음
'정상적인 얼굴을 한 감동이 감동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