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릴 곳이 따로 없어서 영화카테에 올려
너무 화가 나서...
여기 쓴 14000원이..
여기 쓴 2시간 반이...
솔직히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메세지가 뭐인지를 차치하고 한국인에게는 볼 필요가 없는 영화다.
토할 정도로 많이 봐서 굳이 같은 내용을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체 이게 뭐 그렇게 날카로운 통찰이라고 몇번을 대단히 날카로운 일침인 것처럼 감격해줘야할까

너무 많이 본 내용 - 표절이라고 해도 위화감 제로
영화의 줄거리, 메세지, 연출 모두 이미 웹툰 기기괴괴 성형수, 나를 바꿔줘, 욕망일기에서 봤다. "여성이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못 참아서 소탐대실하다 결국 파멸하는 자멸포르노"를 똑같은 기법으로 최소 한 다섯번?은 본 것 같다. 한국웹툰이나 영화는 거의 보지도 않는 내가 말이다.
기승전결도 같고, 관객의 감상도 같고, 작가의 인터뷰도 같다. 여자들이 엎치락 뒤치락 하며 피튀기며 서로 죽이려고 싸우는 장면도 같고, 결국 온 몸이 세상에서 제일 추한 몬스터가 되어 슬라임처럼 녹아 바닥에 푹 퍼져버리는 장면도 같다. 기실 인터뷰에서 감독의 이름이나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꿔치면 어떤게 어느 작품의 감상이고 어느게 어느 작품의 인터뷰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워낙 많이 본 내용이기도 하지만, 기기괴괴 성형수쯤 돼서는 그냥 플롯에 연출에 모든 디테일까지 전부 같아서 그냥 판권 사온 실사화라고 해도 한점 이상함이 없을 정도. 하지만 표절이라고 할 생각은 없다. 너무 반복되다보니 그냥 인셀세계관처럼 그들의 동기화된, 오메가버스처럼 특정 계층의 사람들끼리 향유하는 일종의 세계관이라고 느낀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당사자성
이 영화와 기존 K웹툰 작품들의 유일한 차이는 감독의 성별뿐이다. 이성이 같은 내용을 그렸을땐 비판하던 여자들이 이 작품을 유독 호의적으로 봐준다면, 감독이 당사자성이 있단 이유만으로 필요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해준 것일 것이다. 만약 진짜 당사자성을 지닌 자가 사회고발을 하려고 했던게 의도라고 할지라도, 그 기법은 전형적으로 남자가 여자의 몸을 묘사했던 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됐다.
정말 고발자가 다름으로 해서 메세지가 달라질 수 있다면 어떻게 작품의 시그니처가 되는 모든 장면이 다 겹칠 수가 있을까?
예를들어 강간포르노를 찍으려고 하는 사람과 강간포르노를 고발하려고 하는 사람이 같은 기법으로 포르노를 찍는게 정말 가능할까? 강간가해자는 최대한 드러나지않게 지우고, 피해자의 나체와 "젖가슴"만 집요하게 촬영하는 포르노기법으로 강간장면을 찍는게? 그리고 그렇다면 그건 또다른 강간포르노의 재생산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왜 하필 공교롭게도 그 방식은 늘 남성들의 수요에 맞춰져있으며, 새로운 시도는 대체 언제쯤 하는걸까?
"새롭고" "파격적이고자"한 시도조차 이렇게 수도 없이 봐온 형태랑 다를게 아예 없다면 이 영화가 갖는 차별성은 대체 무엇인가?
실제 여자들이 겪는 현실과의 괴리감
작품을 보면 감독이 여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메세지가 너무 잘 보인다
"여자들은 멍청해서 한순간의 아름다움을 위해 진짜 중요한 것들을 다 버리고 끝내 자멸하고 말지. 물론 사회가 여자들을 그렇게 몰아가지만 말이야. 나는 자업자득하는 여자를 그림으로서 그 사회문제를 비판하고자 해. 외모지상주의를 욕하기 위한거니까 날것의 젖가슴 그리고 엉덩이를 화면가득 흔들면 비판적인 예술로 보이겠지. 멍청한 여자들아, 제발 자기혐오를 멈추고 스스로의 몸을 사랑하렴. 스스로 추한 고깃덩어리가 되려고 하지마."
뭔소리죠? 동일노동+동일임금+가부장제폐지+살해당하지않을권리+밤거리를 안전하게 걸을 권리를 달라구요.
이 영화는 오늘날 여성들이 실제로 사회에서 하는 요구와 너무나 동떨어진 영화다.
한밤 중에 키세스가 되어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안전하게 대학에서 공부 할 권리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여자들에게 너무나 나태한 담론이다. 언제까지고 성형을 하고 다이어트 약을 먹고 하이힐을 신은 여자들을 비판하고 싶다면 통계를 좀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런 여성들은 있다. 그리고 그런 여성을 다룬 작품은 이미 많다. 이미 매일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는, 저출산통계에 보이는, 자신들의 인생을 살기 시작하고 투쟁하고 싸우는 여자들의 모습은 언제쯤 비출 셈인가
애초에 이 영화의 타겟은 누구인가?
젊은 여자들 대다수는 왕년엔 성공했으나 노화되는 신체에 이입하기도 힘들뿐더러, 이미 너무 격이 다른 것을 걸고 투쟁하고 있다.
나이든 여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면 너무나 방식이 천박하다.
사회를 비판하고자 했다면 사회는 여전히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직접적으로는 피해자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하는 방식으로만 그리고 있다.
남자들에게 불편한 깨달음을 주려고 했다기엔 남자 한대 팰 때 여자 1조대 팼으니 너무 알량하다.
결국 타겟은 아직도 성형중독에 걸려 자멸하는 멍청한 여자들에게 일침을 놓는 욕심많은 남성들과 감독 자신을 위한 포르노다. 와중에 젊은 미인 여배우가 엉덩이를 흔드는 아이캔디마저 악착같이 챙기는.
개연성이 있었나?
그래서 일단 메세지를 차치하고, 잘 만든 영화이긴 한가?
처음 10분, 20분만 봐도 연출이 너무 싸구려였다. 그래 유치해도 페미니즘 영화라면 어쩔 수 없지, 뜻이 좋다면 참으려고 하고 계속 봤지만, 뜻이 처참한 수준이란걸 알게 된 지금 도저히 포장해줄 자신도 없다.
사실 위에 말한 한국웹툰들이 개연성이나 연출은 훨씬 더 뛰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최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손에 넣고 누가 굳이 자길 모욕한 사람에게 가서 엉덩이를 흔드는 모닝쇼에나 출연할까? 왜지? 좀 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애초에 그 모닝쇼의 타겟은 누구인가? 50대 여배우가 찍는 몸매 트레이닝 무비와 20대 수영복 쇼의 타겟이 같을 수가 있나? 이건 내가 잘 모르겠다. 그런 이상한 쇼가 실제로 있을 수도.
옛헐리웃스타가 전경좋은 고층최고위빌딩에 경제걱정 안 하고 혼자 살면서 고작 고등학교 동창에게 흙탕물에 젖은 전화번호를 받고 먼저 데이트를 신청하고 잘 보이려고 화장을 떡칠하는게 말이 되는 내용인가?
어쩌면 이 캐릭터는 굉장히 지능이 낮게 설정된 캐릭터일까?
제대로된 설명서도 없는 처음보는 제품들을 능숙하게 사용하거나, 전혀 다른 인물을 실수 한번 없이 능숙하게 연기해내는 걸로 봐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않았다.
2시간 반에 가까운 일반 영화로 쳐도 정말 긴 분량을 봤는데도 이 캐릭터의 지능수준, 경제수준, 가족관계, 가치관 이외의 성격, 취미, 왜 나이들어도 충분히 미인인데 이 정도까지의 취급을 받는지가 조금도 감이 오지 않는다.
그 캐릭터의 일관성을 생각해도 납득되기 어려운 이상한 선택들만 골라 하는데, 그걸 설명 할 방법은 "아니 왜 그 여자들도 원래 성형이 기괴한건데 좋다고 하거나 하잖아요. 그걸 풍자한거임"이라는 불특정다수의 여자들을 가리키지 않고선 설명도 할 수 없음
솔직히 이 분량에 이렇게까지 캐릭터에 입체감을 주지 못했으면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아니라 그냥 일반 오락영화로서도 실패임
심지어 메세지를 담고 싶었으면 더 캐릭터 설정에 공을 들였어야했던건데 처참한 수준이다.
어떤 여자가 이렇게까지 납작한 캐릭터를 보면서 "맞아맞아. 와 나라도 저랬을지도 몰라. 그래! 나라도 저 상황에선 저럴 수 밖에 없었을거야. 하지만 그건 잘못된 거였어."라고 스스로를 미러링하며 깨달을 수 있을까? "왜 저러지? 아무리 그래도 저런다고? 굳이? 음? 아 그치만 성형을 풍자한거겠지...? 약물중독을 풍자한걸테니까? 아무리 그래도...?"하고 억지로 납득하면서 봤을 것이다.
작품에 나온건 실제 여자가 아니라, 실제 여자를 상징하는 존재도 아니라, 남자들이 일침을 놓기 위해 만든 가상의 존재이기 때문
정작 이런 류의 영화가 공격하기 무서운건 공격하는 꼴을 못 본다
적나라하게 사회부조리를 꼬집는척 하지만 언제나처럼 남자들의 기분을 거스를 사회문제는 아주 조금도 건드리지않고 여자의 자업자득적 서사로 문제를 대폭 축소하고 일침주며 끝맺는, 전형적인 오빠가 허락하는 페미니즘이다.
담론을 발전 시키는 것도 아니고 대안을 주는 것도 아니다. 메세지래봤자 사회문제를 받아서 묘사한거 밖에 없다. 그나마도 잘하는덴 실패한거고.
이 세계관을 가진 자들이 가부장제나 유리천장의 사회적 가해자들을, 여성들을 죽이는 남자들을, 이렇게 기괴하게 비틀고 뒤틀어서 고발하는 꼴을 못 본다. 언제나 피해자를 더 고어하게 그리기, 피해자를 더 맛깔나게 혐오하기 대회가 그들 사이에서 열리고 있다.
좀 더 성숙한 페미니즘을 그리는 것은 결국 좀 더 성숙한 여자들의 몫이다. 이 감독을 거기 껴줄 맘은 없다.
설령 서브스턴스에서 다룬게 페미니즘이 맞다고 할지라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10년은 낡았다
페미니즘은 생물처럼 성장하는 학문이다. 과거에는 여성을 해방하기 위한 노출이 현재는 여자를 억압하거나 성적으로 소비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하고, 과거에는 여성을 존중하려고 불렀던 호칭이 지금은 여성을 비하하는 멸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현재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 안전하게 교육받을 권리, 남성과 같은 임금을 받을 권리, 생존 할 권리,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며 끊임없이 성숙한 담론을 만들어오고 있다.
근데 2015년에 나온과 동일한 메세지가 "일침"을 놓기 위해 나왔다면, 아, 너무 게으르다. 지금은 2025년이다.
십년이 지나도 아직도 똑같은 얘기를 만들었는데도 새롭다고 박수쳐줘야한다니.
가장 괴로운건 이 똑같은 작품을 복제하는 감독과 작가들이 하나같이 자기들이 참신한걸 했다는 뽕에 가득 차있다는거다. 똑같은걸 또 복제해오는 사람도 그럴거다. 그럼 우린 이걸 또 봐야된다.
그래서 고어는 제자리에 있었나?
나는 고어를 싫어하지않는다. 그게 제자리에 있다면. 이 영화의 고어는 미학적이지않고, 단순히 여성은 추할수록 예술적이라는 공식에 나태하게 기대고 있다. 남성의 몸을 이렇게 추하게 망가뜨리며 입에서 불알을 토하고 온 몸에서 남성기가 삐져나와 흔들거리게 그리지는 않으면서, 여성의 추함만을 기계적이며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고어니까 대충 있어보이는 척 한다.
잘 만들었을때나 고어지 이건 뭐 그냥 싸구려 뽕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