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진짜 너무 재밌게 봐서 영화공부할 겸 완전 내 개인적인 해석!절대 정답이 아니고 오히려 꿈보다 해몽이라 이런 해석도 하는구나~정도로만 보면 될 듯ㅋㅋ댓글로 더 이야기 해주는 것도 좋아!!
<자기 혐오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1. 닭과 계란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달걀. 활성제를 주입하자 더 나은 버전의 ‘나’가 등장 한다. 여기에서 달걀은 누구인가. 바로 엘리자베스를 상징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히 활성제를 맞으면 더 젊고, 아름다운, 말 그대로 더 나은 ‘나’가 나와야만 하는데, 그 둘은 똑같아 보인다. 그저 똑같은 ‘나’가 복제가 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 시퀀스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변하지 않은 달걀처럼, 사실은 이 둘은 다르지 않다는 것.
달걀이 엘리자베스라면 닭은 ‘수’다. 이 영화에서 음식은 딱 두가지가 등장한다. 계란과 닭. 수의 욕심으로 늙어버린 육체를 가지게 된 엘리자베스가 분노의 요리를 시작했을 때, 티비에선 수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그 모습을 보며 마치 ‘수’가 생닭이라도 된 듯 마구잡이로 쥐어뜯는다. 닭이 수, 달걀이 엘리자베스라면 닭과 달걀 논쟁처럼 두 인물은 균형을 이룰 수 밖에 없어진다. 활성제를 주입한 순간부터 원형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 둘은 이상하리만치 점점 서로를 혐오하고 있다. ‘나’라는 자아를 잊어버려서일까? 이 영화는 허영심과 미에 대한 과도한 기준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적어도 이것이 메인 이야기는 아니다). 대비 되는 두 인물, 그러나 그 둘은 하나인 ‘나’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혐오할 때 어떻게 하는가? 마치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말을 하듯이 혐오를 한다. 이 영화는 자기혐오를 시각적인 대비로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진 ‘나’도, 늙어버린 ‘나’도 그저 혐오하기만 할 뿐이다.
2. 코미디
이 영화는 호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영화 속 연출은 오히려 코미디에 가깝다. 영화 속 여성 인물을 제외하면, 그 외의 남성 인물들(하비, 올리버 등등)은 대체로 우스꽝스럽고 과장 된 행동들을 하고 있다. 영화가 원체 기괴해서 이런 느낌이 중화 된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그들의 대사, 행동들을 잘 생각해 보면 현실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나?라는 의문점이 생긴다(여성혐오적인 표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액션을 말하는 것). 특히나 스릴러 장르라면 영화 속 톤을 맞추기 위해 배우들의 액션이 진중해 질 법도 한데,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도 가볍고 코믹스럽다. 이러한 연출이 사실 영화 속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와 ‘수’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주위에 있는 말도 안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도 알기 쉬운 메세지이고, 주인공은 호러 장르지만 주위는 코미디인 것이 마치 현실과도 비슷한 느낌도 든다.
3. 색의 대비
엘리자베스는 노란색, 그녀의 욕망을 상징하는 것은 빨간색, 본질은 파란색이다. 엘리자베스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는 분홍색이다. 할리우드의 명예의 거리 위 분홍색 별이었던 그녀가 파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를 사용하기 전, 그녀는 대체로 푸른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다. 그녀가 방송하는 곳, 그녀가 남아 있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찬 촬영장은 온통 적색으로 가득하다. 이 두 색의 대비로 그녀가 오히려 동떨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녀가 하비에게 모욕을 듣고 돌아가는 길, 붉은 차량을 타고 돌아가다 사고가 난다. 아직 그녀에게는 더 남아있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하다는 걸 보여주지만, 애석하게도 붉은 옷을 입고 있는 그녀의 광고판은 힘 없이 떨어지고.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욕망을 무너뜨려버리는 사고까지 나고 만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욕망은 붉은색 전화기를 통해 서브스턴스를 주문하는 것까지 이어졌다.
서브스턴스를 사용하고, 그녀는 다시 자신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던 시기로 돌아간다. 분홍옷을 입고, 다시 할리우드의 별이 될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엘리자베스인 상태로 돌아왔을 땐, 자기 혐오 뿐이 남지 않았다. 처음 사고가 났을 당시 노란 코트 속은 옷은 파란색이었지만, 자신의 짐을 받으러 갔을 때의 그녀의 노란색 코트 속 붉은 옷은 그녀가 아직 욕망이 가득하다는 걸 보여준다.
두 번째 수로 돌아왔을 때는 노란색 옷을 입고 있다. 이는 수 역시 엘리자베스라는 것을 ‘아직은’ 인지하고 있음과 동시에 더 나은 ‘나’에 대한 혐오가 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나’에 대한 혐오는 어디에서 오는가, 나 자신을 스스로 외면하고 말았을 때, ‘나’는 점점 파멸로 빠져들고 만다.
그런 그녀에게 이 영화는 계속해서 기회를 주고 있었다.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은 그녀가 오토바이남과 부딪히는 씬에서 잘 보면, 프레임 안에 붉은 자동차와 노란 자동차가 그녀의 양 옆에 배치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자신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라는 욕망을 선택할 것인지 두 가지의 색상 사이에 놓여있는 그녀가 앞으로의 운명이 그녀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는 자기혐오를 멈출 기회가 있었다. 이때 누군가를 만난다는 선택이 아닌, ‘나’를 선택했어야만 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동창을 만나러 간다는 선택(만나진 않았지만) 자체는 그녀 스스로 나아질 수 없다고 느꼈다. 이건 자기 혐오에 대한 이야기지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자기 혐오는 이제 끝이 없다. 나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균형을 잃은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마지막 피날레, 엘리자수가 파란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는 순간, ‘나’는 진정으로 “여전히 나에요!”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도 수도 아닌, 가면이 떨어진 엘리자수. 사랑 받고 싶은 욕망으로 점철 된 ‘나’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나서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가장 찬란했던 그때의 순간으로.
4. 기타
4-1. 영화에서 수와 엘리자베스가 타인처럼 보여지는 연출(서로가 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던가)로 인해 두 개의 자아라는 느낌 또한 들었지만,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이 하나라는 것을 꿈으로 보여주고 있다.
처음 수가 균형을 깼을 때-내장이 쏟아지며 잠에서 깨는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가 폭식을 했을 때-배에서 닭다리를 꺼내다 잠에서 깨는 수.
이 두개는 두 사람이 여전히 하나의 인물이며, 무의식 또한 한 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4-2. 이 영화가 잔혹동화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은 렌즈. 노골적으로 안면을 왜곡하는 클로즈업과 그와 동시에 심도를 깊게 만들어 주위를 보여주는 등 초현실적인 이야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는 오버헤드 샷을 처음과 끝에서 사용하여 관찰자적인 태도를 끝까지 유지한다. 이로 인해 더욱더 어디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 혹은 동화, 누군가의 삶을 들어보는 정도의 거리감을 준다(개인적으로는 감독이 이정도 거리감만 있어도 공감할 포인트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생영화라고 할만큼 너무 내취향인데다가 너무 재밌어서 여러번 봤는데..나랑 비슷하게 본 사람들 있으면 어떻게 봤는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