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한참 보다가 진행된지 30분 지난 시점에서
그런 생각을 했음
'아니, 사건이 언제 벌어지지?'
입장 시간과 퇴장 시간이 티켓에 쓰여 있으니
100분 좀 넘는 영화라고 보면 그 때 쯤은
큰 게 하나가 터져줘야 하는데 영화 내용상으론
그럴만한 일이 안 벌어지고 있는것 같았기 때문임
물론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가긴 했지
홍보 문구에 나와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의문을 가지자마자 얼마 후에
이야기 전체가 뒤집힐만한 사건이 시작되었음
이 얘기를 왜 하냐면 '보통의 가족'은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시점에서도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어서임
비결은 아무래도 감독의 가차없는
인물 묘사에 있을텐데
모든 주인공들과 거리를 둔 상태에서
당사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인물상과
그 행동이 묘하게 어긋나고 있는 걸 계속 보여주어
그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미묘한 긴장을
끊임없이 일으켰기 때문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상태에서도 주인공들의
삶을 마주하는게 흥미로우면서도 싫은
거리낌과 불안함이 있었음
'보통의 가족'의 스토리 전개는 길다란 활시위를
계속해서 당기는 걸 보는 것과 같음
어떤 일이 분명히 벌어지게 되어 있고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것 같은데
그 처절한 밑바닥에 닿기까지
어느 정도 강도로 갈등이 벌어질지는
쉽사리 예상할 수가 없는
이런 내용은 인물 묘사와 타이밍 조절이
정말 중요하고 쓰기가 매우 어려운데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놀라운 순간들을 보여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몇번이나 감탄하였음
높은 밀도와 서스펜스를 갖고 있으면서도
냉정한 블랙 코미디이기도 하고
이런 시선을 유지하며 끝까지 끌고 가는 건
보통 역량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서
크레딧을 보면서 작가 이름까지 확인하고 일어났음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좀 더 확인하다가 약간 실망하였음 ㅠ
'보통의 가족'은 '더 디너'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탈리아 영화의 리메이크 작품이며
이미 같은 내용으로 영화가 네 번 만들어졌다고 함
좋게 말하면 검증된 이야기를 갖고 온 것이지만
리메이크 영화는 원작을 보아야만
분명한 평가가 가능한거라서
'완벽한 타인'처럼 작중의 모든 중요한 부분을
원작과 복제품처럼 똑같이 만든 내용과
'콜'처럼 창의력이 발휘된 리메이크작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볼 수는 없는것이기에
그래도 나는 이 영화를 좋게 생각하려고 함
이탈리아 원작에서 많이 발전시켰을 수도 있고
어쨌든 결과물만 봤을 땐 올해 나온
한국 영화 중에 제일 재미있었음
오리지널 대본이었으면 아마 허진호가 말년이 되어
젊은 시절에 만들었던 명작들에 필적하는
커리어 최고작을 만들었구나 ㅠ 하고 생각했을것임
배우들의 연기력에 크게 좌우되는 내용으로
작중 모든 배우들이 훌륭하지만 특히 김희애는
이 영화로 이런저런 여우주연상 후보에
많이 오르지 않을까 함
그보다도 더욱 눈에 띄는 존재는 장동건인데
감독이야 원래 친했다고 하니 좋은 의도로
이 사람을 캐스팅했을테고
배우가 형편없이 나빠진 본인의 이미지를 일부러
이런 역할에 사용할 리는 없겠지만
공교롭게도 장동건이 이 역할을 맡으면서
작중에서 그리는 것보다 훨씬 그 힘이 강해져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인물에 대해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효과가 있었음
몇몇 장면은 정말 잔인할 정도로 잘 어울려서
좀 미안하지만 이 사람을 싫어할수록
오히려 이 내용에
더 몰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음
장동건 필모 사상 최고의 연기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