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장국영이 그런 나의 속내를 꿰뚫어보기라도 한듯이
"저는 청데이에 적격이에요. 저는 항상 예술 속에서 살고 있고, 제 안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고 있으니까요. 제 자신이 바로 청데이예요."
라고 말해서 그때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장국영은 인터뷰에서 "진정한 예술가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었죠. 자신의 영어 이름도 중성적인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레슬리라고 지었다고...)
실제로는 몇 초 되지 않는 굉장히 짧은 장면이고 영화에선 데이가 울지 않는데, 장국영은 촬영이 끝난 후에도 데이의 감정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계속 울고 있었다. 나는 그저 조명을 모두 끄라고 지시하고 장국영이 어두운 곳에서 혼자 감정을 추스르게 해줬다. 그때 나는 비로소 처음 만난 날 장국영이 말했던 "저는 청데이예요"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장국영은 자신의 모든 감정을 인물에게 투입해 새로운 경지를 창조하는 배우였다. 그의 눈빛이 바로 사랑과 시대의 반역이라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 그 자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패왕별희>는 굉장히 몰입해서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촬영에 임했던 작품이어서 영화가 완성된 후에도 후유증이 엄청나게 컸다. 영화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던 중, 어느날 잠을 자는데, 예쁜 푸른색 옷을 입은 데이가 꿈에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이만 안녕” 이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났는데..
꿈에 나온 사람이 장국영인지 청데이인지 알 수가 없었고, 왜 그런 꿈을 꿨는지도 몰라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 일이 있고 10년 후 장국영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때 그가 내 꿈으로 찾아와 미리 작별인사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하게 된다. 장국영을 처음 만난 날 그가 했던 말처럼 그는 정말 청데이처럼 살다가 떠났다. 사실 나는 그와 마주보고 있을 때에도 왠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처럼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장국영의 눈빛은 우리가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먼 과거의 어느 화려한 꿈속에서나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