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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을 맡은 지 딱 1년이 됐다. 원래 기념일이나 햇수를 잘 챙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11월3일 프로게이머 페이커 선수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을 달성한 것이다. 리빙 레전드의 눈부신 길을 목도하며 되뇐다. 아,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지난해 4회 우승으로 왕의 귀환을 증명했을 때 아직 손에 익지 않은 코너 ‘오프닝-편집장의 말’에 삐걱거리며 존경과 경탄을 짧게 기록한 적 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초월적인 업적은 때로 분야를 넘어 보편타당한 경이로움으로 연결된다.
이번 결승전을 라이브로 보며 심장이 크게 두번 두근거렸다. 도파민이 폭발하는 짜릿한 역전 한타의 순간, ‘고전파’(페이커의 아마추어 시기 닉네임.-편집자) 시절을 방불케 하는 피지컬과 야수의 심장으로 채색된 경기 운영이 빛난 4, 5세트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이윽고 폭풍 같던 환희의 순간이 지나간 뒤 대회를 마무리하는 중국 리그 해설진의 중계 멘트를 접하며, 낮고 웅장하여 멀리 퍼질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페이커는 (중국 리그에) 가장 높은 산이고 가장 긴 강이었다. 산과 강에는 결국 끝이 있기에.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오늘 결승전에서 20대 후반의 페이커는 완벽한 경기력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강의 끝에 이르니 하늘이 다시 벽이 되고 산의 꼭대기에 오르니 다른 봉우리로 이어지는, 그가 바로 페이커였다.” 실력과 인성, 성취와 업적 등 페이커에 환호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를 살아 있는 전설로 추앙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요소는 이른바 ‘미움받을 용기’로 압축되는 그의 태도에 있다.
페이커는 지지 않는 경기를 하는 대신 실패할지언정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경기를 한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짊어지고 “내가 책임질게”를 외치며 뛰어드는 용기. 심지어 그것이 도전자의 패기가 아닌 정상에 오른 이의 선택이라면 그 무게는 감히 짐작조차 어렵다. 페이커가 LoL 역사상 유일무이한 존재로 남을 수 있는 건 현재를, 순간을 불태우는 그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에 온몸을 던져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이 전설에는 어제의 영광 대신 ‘오늘’의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유일무이’란 칭호는 업적의 높이를 말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반복되지 않는 시간의 축적, ‘지금 이 순간’의 무한한 연장이야말로 우리를 누구와도 닮지 않은 무언가로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