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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 관객석은 독특한 장소다. 관객석의 아이돌은 수상이나 무대를 대기하는 동시에 관람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카메라가 언제라도 자신들을 포착할 수 있으므로 때에 따라 어떤 표정이든 지을 준비를 해야 한다. 리액션 영상에는 그들이 손뼉을 치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목을 쭉 내밀거나, 등을 뒤로 기대거나, 팔짱을 끼거나, 미소를 짓거나, 미간을 찌푸리는 순간이 고스란히 담기는데 이 모든 것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누군가는 자신이 존중하는 상대를 바라보며 턱을 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것은 예의에 어긋난 몸짓이라고 해석한다. 언제나 ‘관객으로서의 대중’이 ‘관객으로서의 아이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제니의 무대를 바라보는 가수들이 응당 호의적인 리액션을 해줘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경쟁 구도가 아닌 존중이 바탕이 된 관계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케이팝의 세계에서 존중은 연출이다. 얼마나 타인을 의식하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만 한다면 많은 부분이 괜찮아진다. 그것이 다른 아티스트의 무대를 향해 충분히 덜 반응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안전한 길이다. 에스파 지젤이 다음날 라이브 방송에서, 가수석에서도 무대가 잘 안 보이는 자리를 배정받았다며 제니 무대 도중 턱을 괴었던 자기 행동의 의도 없음을 간접적으로 해명해야만 하는 촌극이 빚어진 이유다.
2025년 11월19일 서울 여의도 케이비에스(KBS)홀에서 열린 제46회 청룡영화상에서는 화사와 박정민이 함께한 ‘굿 굿바이’(Good Goodbye) 축하 무대가 큰 호응을 얻었다. 이별을 앞둔 커플을 다룬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을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재현해냈기 때문이다. 청룡영화상의 방송 주관 및 중계권을 보유한 KBS는 이 무대의 관객석 리액션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번 청룡영화상을 연출한 강승연 피디는 ‘굿 굿바이’ 무대의 화제성을 높인 일등 공신으로 관객석에 앉아 있던 박지현, 김민주, 노윤서 배우가 나란히 입을 틀어막는 순간을 꼽았다. 실제로 그들의 반응은 다른 관객을 고양했다. 여전히 리액션은 중요하다. 그러나 언제나 무대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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