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대구 시국미사
‘12.3 비상계엄’이 발표된 밤에 생각했습니다.
“해가 뜨면 어떤 세상이 될까?”
“80년 광주처럼 나도 거리로 나가야 하나?”
“집에 숨어서 지켜만 본다면 과연 양심의 부담을 견딜 수 있을까?”
“사제관을 좀 오래 비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 짐은 누가 정리할까?”
“가족들, 친구들...”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밤새도록 온갖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대충 중요한 짐 몇 개도 정리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국회를 애워싸고, 맨몸으로 그 차가운 쇠붙이들을 밀어낸 시민들 덕분에,
정말 간발의 차이로 우리 사회는 큰 불행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또 한번 그분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어쩌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우리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우리 고향 대구경북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 고향 대구경북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우리 종교 ‘천주교대구대교구’의 책임도 큽니다.
종교가 ‘이 땅의 하느님 나라’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오도록”,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라는” 사회적 책무는 다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과 타협하고, 편한 길 그러나 죽는 길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깊이 뉘우칩니다.
*<매일신문>2021년 3월 19일 매일희평 만화를 보면,
계엄군이 광주시민들 폭행하는 사진을 패러디로 5.18을 조롱하는 만평을 올려
전국민이 분노했고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죄했습니다.
“이 만평으로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와 그 유가족, 그리고 부상자 여러분들에게
그날의 상처를 다시 소환하게 만든 점을 깊이 사과드립니다. 독자 여러분께도 사과드립니다”
*<매일신문>2022년 1월 10일자 지면 1면<전두환 전 대통령 각하 영전에 바칩니다> 광고를 보면
"각하는 대한민국 군인, 국가 영도자로서 탁월한 애국자였다."
"각하의 땀과 희생을 까마득히 잊고 사는 오늘 세태에 대한 원망과 회한이 적지 않지만
각하께서 견딘 모진 인고의 풍상에 어찌 견주겠냐."
"각하의 담대한 치적은 멀지 않은 날 세상에서 정당히 평가될 것이다.
존경하고 추앙하는 전두환 대통령 각하를 영원히 기억하겠다.“
너무 부끄러워서 518국립묘지에 가서 사죄를 드렸습니다.
그 때 우연히 만난 오월의 어머니 한 분은 저는 최시동 신부님과 소공동체 운동 같이 했고,
원유술 신부님도 알고, 대구교구에 회의도 여러번 갔습니다. 그런데 대구교구가 왜 그러셨어요?
*팔공산국립공원의 골프장도 전두환 신군부로부터 받은 특혜로 알고 있습니다. 깊이 반성합니다.
이런 토양에서 이런 집단이 자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3.1 운동, 일제식민지 시기, 박정희 독재 시기, 전두환 군부정권 시기 그리고 현재까지.
언젠가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 모두 함께 모여서 역사 안에서 천주교대구대교구의 잘못과 책임을 식별하는 기회를 갖기를 희망합니다.
‘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이다.’
‘준비가 덜 됐으니 국회 표결을 늦춰달라.’
‘탄핵은 헌정 질서의 중단이다.’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해 대통령의 직무를 위임한다.’...
우리가 뽑은 대구경북의 정치인들이 밝은 대낮에, 대놓고 이런 거짓말을 합니다.
그들의 거짓말들이 너무 뻔뻔하고, 너무 당당해서 언어를 오염시키고, 언어를 분열시켜서, 언어를 파괴해 버릴 것만 같습니다.
“언어는 우리 서로서로를 연결하는 금실”이라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과
이 뻔뻔하고 당당한 거짓말들이 어떻게 같은 시공간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지 신비로울 따름입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사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이익만 된다면 횟집 수조의 허연 거품물도 퍼마십니다.
방사능 독으로 모든 생명이 죽든 말든 아무 상관없고, 중요한 것은 오직 ‘나만의 이익’입니다.
전쟁이 나든 말든, 사람이 죽든 말든,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사익’입니다.
“국민을 죽여라!” 군대에 명령하고, 또 그런 자에게 동조하는 것도 아무 문제되지 않습니다. 내 사익만 채울 수 있다면!
모든 이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자고 우리 주권을 위임했는데,
위임받은 주권으로 오직 자신의 사익만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 이기심의 화신들이여!
당신들은 자신의 사익 추구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관심 없습니다.
위임받은 권한으로, 위탁받은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것은 “사회계약”의 위반이고, “헌법”의 위반입니다.
‘이 세상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함께 살아야 하는 곳’이라는게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세상은 함께 사는 곳’이란 이런 이기적 집단은 폐기하고 우리끼리만 잘 살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도 모두 함께 살아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당신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증오가 아니라 ‘가련함’입니다.
대구경북의 정치인 여러분,
사익만 추구하는 당신들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너무 가련합니다.
제발 이기심에서 벗어나 인간부터 되십시오.
(미사 강론부터 플레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