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에 늙은이 하나가 있는데 그는 홍치(弘治) 정사년(1497, 연산군 3)에 났으니 이해가 계사년(1593, 선조 26)이고 보면 나이가 97세였으며, 아들 하나가 있어 늘그막에 교생(校生)을 제수받았는데, 그 나이는 73세였다. 이들 부자가 한집에서 사는데, 손자 넷, 남자 종 하나, 계집 종 하나와 함께 힘써 농사지어서 겨우 조석을 이어 가고 있었다. 머리가 하얀 두 늙은이가 항상 나무 그늘 밑에서 바둑과 장기를 두니 보는 사람들은 그들을 그림 속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온 고을 사람들이 그들 부자가 나이가 많고 집안의 행실이 순수하게 갖추어졌다 하여 현관(縣官)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여 부역을 면하게 했다. 그 아비는 더욱 건강하고 총명이 조금도 쇠퇴하지 않았는데, 다만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아서 하루 세 끼 죽 한 사발씩을 다 먹는다. 나는 이 소문을 듣고 기이하게 여겨 어느날 가서 보았더니, 기거 동작이 강건하고 눈썹이 몹시 길고 눈빛이 빛났으며, 용모는 맑고 파리했지만 영특한 풍채가 오히려 남아 있었으니, 실로 속세의 사람의 아니요, 참으로 이른바 지상선(地上仙)이었다. 나는 놀랍고도 감탄해 마지않으며 그 늙은이에게 묻기를,
“젊은 시절의 일을 기억할 수 있소?”
하니, 늙은이는 입을 열어 묻는 대로 대답하는데, 목소리가 쟁쟁하고 조금도 떠듬거리지 않았다. 그는 말하기를,“나는 7세에 군보(軍保)에 소속되어 13세 때 비로소 서울에서 번(番)을 들었는데, 그때는 연산군(燕山君)이 방탕해서 날마다 노는 것만 일삼았습니다. 연산의 얼굴을 쳐다보니 빛은 희고 수염은 적으며, 키는 크고 눈에는 붉은 기운에 있었습니다. 연산이 전교(箭橋)에 거둥할 때 나는 역군(役軍)으로 따라갔는데, 화양정(華陽亭) 앞에 목책을 세우고 각읍에 예치했던 암말 수백 마리를 이 목책 안에 가둔 다음, 연산이 정자에 자리를 잡으니 수많은 기생만이 앞에 가득했고 시신(侍臣)들을 물리쳤습니다. 이에 마관(馬官)이 숫말 수백 마리를 이 목책 안으로 몰아넣어서 그들의 교접하는 것을 구경하는데 여러 말이 발로 차고 이로 물면서 서로 쫓아다니는 그 소리가 산골짜기를 진동했습니다. 그해 가을에 반정(反正)이 일어났습니다.”
연산의 얼굴을 쳐다보니 빛은 희고 수염은 적으며, 키는 크고 눈에는 붉은 기운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