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다시 만났네요.(웃음)
김수현: 네. 또 데리고 왔네요.(웃음)
Q. 이별 후 다시 재회한 셈인데요, 어떤가요.
김수현: 지난 생각이 많이 나죠. 저는 캐릭터를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감정이 곱하기 5로 더 크게 다가왔어요. 어쩌면 외로움이나 육체적 고통까지도 기대하고 영화에 들어갔는지 몰라요. 그래서 작품을 다 마쳤을 때 저 스스로에게 큰 위로를 보냈고요.
Q. 왜일까요. 왜 외로움과 고통이 있을 줄 아는 길로 갔을까요. 추측컨대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이후 충무로의 많은 시나리오들이 당신에게 들어갔을 겁니다. 그 중엔 지금보다 쉬운 선택지도 있었을 테고, 의지하면서 갈 수 있는 작품도 있었을 텐데요.
김수현: 사실 시나리오로 장태영을 처음 접했을 때, 제가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리얼’이 품은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고생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다른 데 보내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결정했어요. 연기하면서는 원 없이 담기도 했고, 원 없이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한만큼, 최선을 다 한만큼, 딱 그 만큼의 만족감도 느꼈고요. 남김없이 후회 없이 마친 작품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Q. 구체적으로 어떤 면을 원 없이 담은 건가요?
김수현: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 공부 해 왔던 것들, 혼나고 깨지면서 얻은 것들, 이런 것들을 농축해서 ‘리얼’에 풀어놓았습니다.
Q ‘리얼’이 김수현에게 어떤 영화인지 밑그림이 그려지는군요. 그럼에도 지금의 분위기는 뭐랄까. 당신이 원 없이 풀어 놓은 것이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장태영을 2시간 넘게 봤지만, 아직 장태영을 잘 모르겠다는 의견들이 많은데요.
김수현: 비유하자면 ‘리얼’을 큐브 같은 영화입니다. 이 큐브를 풀고 있는 건지 섞고 있는 것인지 혼동이 되는 면이 있지만, 사실 큐브의 해답은 정해져 있거든요. 그 해답을 찾아 큐브를 비트는 과정에서 다양한 단면이 나옵니다. 각자의 마음에 드는 색이 나올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럼 그 모양 그대로 각자가 봐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Q. 그런 생각도 듭니다. 닌텐도를 가지고 놀 수도 있는 배우가 큐브를 껴안은 느낌말이에요. ‘리얼’이 품은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고생을 했다고 했는데, 누군가에겐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김수현:(웃음)‘리얼’에 도전하는데 있어, 제가 고집부린 부분이 있는 게 맞아요. 욕심 부린 부분도 많고요. 주위에서 그걸 또 존중해 줬기에 도전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욕심은 이전부터 있었어요. 저마다의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매력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서 연기를 시작했으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욕심을 부릴 참입니다.
Q. 영화 속 두 명의 장태영은 ‘진짜가 되고 싶은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음을 던지죠. 진짜란 뭘까.
김수현: 저는 ‘리얼’이 믿음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생각합니다. 제가 연기한 두 장태영의 가짜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굉장히 강한 인물들이에요. 실제로 자신이 진짜라고 외치잖아요? 그런데 그 믿음이 점점 흔들립니다. 그런 점에서 ‘리얼’은 두 인물의 믿음의 크기가 변화되는 과정이고,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의 선택을 담은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Q. ‘내 안에 존재하는 가짜와 진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은 때때로 달라지는 존재니까요.
김수현: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저도 지금 이렇게 차분한 톤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집에 가면 또 다른 모습들이 나오거든요. ‘리얼’ 속에 풀어놓은 여러 색깔들을 보면서 ‘저 모습도 나의 일부’라고 인정을 하면서 감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리얼’이 가져 올 결과가 어떤 방향이든, 저는 이 작품에 굉장히 애착을 가지고 있고 계속 사랑을 할 겁니다.
Q.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지금 ‘리얼’에 쏟아지는 반응들이 좀 과하다고 느끼시나요.
김수현: 음…자연스러운 부분도 있고,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타인과 100% 교감하는 건, 불가능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Q. ‘은밀하게 위대하게’ 인터뷰 때 그런 말을 했어요. 갑작스러운 사랑에 “겁을 잔뜩 먹고 안으로 계속 가라앉게 된다”고. “조심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비밀이 돼 가면서, 많이 위축되고 작아지는 것 같다”고요. 4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요.
김수현: 지금은 다릅니다!(웃음)
Q. 확고하게 말씀하시네요.(웃음)
김수현: 네. 그게 얼마 안 됐어요. 서른이 된 지 이제 6개월 차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큰 변화는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앞에 숫자 하나 바뀐 정도인데, 움츠려드는 ‘나’가 많이 사라졌어요. 이전에는 ‘배우 김수현’과 비교하며 “난 필요 없나?” “인간 김수현이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가”라는 생각에 망가지고 부서지고 조각나는 기분이 늘 함께 했어요. 그러다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데…아, 이게(‘리얼’) 계기일 수도 있겠네요. 시기적으로 ’리얼‘이 끝났고 해가 바뀌면서 배우 김수현과 인간 김수현 사이의 간극이 많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어렴풋이나마 가까워지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저에겐 입대…입대가 있잖아요?(웃음)
Q. 아, 입대.(웃음)
김수현: 네. 입대가 있으니 본격적인 시작이 되려면 아마 그 이후, 그러니까 ‘입대 이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 그때를 기대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짜지는 않았지만 막연한 기대가 있습니다.
Q. 건강한 생각을 하고 있군요.
김수현: 네. 지금 방향, 아주 마음에 듭니다.
Q. 입대 전에 “한 작품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을 비추기도 했는데요.
김수현: 그런데 그건 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라서요. 타이밍을 지켜보는 중이고요, 조금 쿨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타이밍이 맞지 않을 경우 얼른 다녀와야죠.
Q. 망가지고 부서지고 조각나는 기분이 들었던 20대 때와는 확실히 달라진 것 같네요.
김수현: 올해 들어 조금 더 저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불행이라는 게 가까이에서 볼 때는 너무 아프고 너무나 큰데, 멀리서 보면 다르잖아요. 나만의 문제가 아닌 게 있더라고요.
Q. 스스로가 서른이라는 걸 아주 잘 자각하고 있네요.
김수현: 그렇다고 나이에 크게 연연하는 건 아니에요. 다면 “극복하는 과정이 시작된 느낌이 서른이라는 타이밍에 오더라”라는 이야기는 나중에 동생들에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언제가 김수현의 전성기일까요? 지나간 것 같지는 않은데요.
김수현: ‘별에서 온 그대’(2013)로 지나간 것 아닙니까…?
Q. 아… 이 대답에 속상해 할 팬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김수현: (수습하며)아! 그럼 안 되는데.(웃음) 제가 표현하는 색깔들에 조금 더 여유가 묻어나는 시점이 제 전성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유가 묻어나면 마음이 망가지는 일도 없을 것 같고요. 목표로 하는 것에 얼마만큼 가까이 갈 수 있는지도 계속해서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Q. 목표는 어디입니까.
김수현: 관객들로 하여금 신뢰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오래전부터 가져 온 제 목표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유가 있어야 보는 사람들도 불편하지 않을까 싶고요.
Q. “신뢰를 받고 싶다” 이건 결국 타인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건데요. 타인이 어떻게 바라보든 자기만족이 먼저여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김수현: 연기를 하는 입장에 있어서는 제가 1번이에요. 연기를 밖으로 재생시킴으로서 가장 먼저 만족을 느끼고 있거든요.
Q. 볼링은 어떤가요. ‘무한도전’에서 볼링에 대해 “상대하고 싸우는 게임이 아니라 혼자만의 싸움이 되는 게임”이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김수현: 연기를 하는데 있어 볼링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볼링장을 떠올리며) 볼, 레인의 컨디션, 저기 서 있는 핀. 결국 이걸 얼마나 믿고 가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 볼이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믿고 던지는 거죠. 그걸 연기에 대입해 보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요. 결국 연기도 캐릭터에 내가 얼마만큼 몰입해서, 또 그걸 얼마나 믿고 던지는가 하는 문제거든요.
Q. 작품 외적인 부분을 좀 묻겠습니다. 전작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도 감독 교체가 있었어요. 연달아 두 번. 분명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김수현: 외부적으로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 ‘리얼’을 진행하는데 있어서는 두 감독님(이정섭→이사랑)이 함께 많은 의견을 나누셨어요.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단계부터 마지막 촬영 때도 함께 계셨습니다. 이후 영화의 방향성이랄지, 색깔을 결정하는 데 있어 그런 선택을 해야 했어요.
Q. 이 질문은 노코멘트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꼭 묻고 싶기에 마지막으로 드릴게요. 김수현은 많은 주목을 받는 스타입니다. 그런 배우의 작품에 감독이 교체됐는데, 그 감독이 가족이라는 건 ‘배우 김수현’에겐 분명 마이너스입니다. 이건 ‘리얼’ 완성도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여러 상상과 논란의 여지를 먼저 던진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그에 대한 우려, 없으셨나요. 대답이 곤란하면 안 하셔도 됩니다.
김수현: (몸을 살짝 곧추세운다) 음…한 마디로 말씀을 드리자면…‘모두’의 선택이었습니다.
Q. ‘모두’의 선택…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군요.
김수현: 우리는 여러 가지 기준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기준들을 한가지로 통일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선택도 존중하지만 ‘나’도 조금 돌봤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수현이라는 배우가 조금 더 영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수현: 저도 제가 조금 더 매끄러웠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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