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30일 토요일 3시 터칭 더 보이드 후기
조가 처음 등장할 때 꽤 큰 볼륨으로 대사 치면서 등장하잖아.
근데 어제는 평소보다 차분하게 대사를 치더라고
오늘은 왜 평소와 톤이 다를까, 본인의 컨디션 때문인가,
아니면 오늘의 연기 톤을 그렇게 잡았나,
아니면 그냥 크게 계산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레 생긴 변화인가 별 추측을 다 했는데 ㅋㅋㅋ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끝으로 갈수록 그 차분했던 등장과 대비가 되는 감정들이 많이 나와서 더 극적으로 느껴졌던 날이었어
내 마지막 공연은 22일이었는데 그날보다도 더 살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어
목에 파스까지 붙이고 나와서 안쓰럽 ㅠㅠ
선호 떡볶이 마니 먹으라니ㅠㅠ
차분하게 등장을 해서 그런지
그 뒤에 이어지는 대사들이 좀 더 비장하게 들렸어
리처드에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 이렇게 살 수 있어
라고 하는 장면이라든가
토니 크루츠 독백씬 전에는 충분히 깨발랄하게 춤도 추고
평소처럼 유쾌했는데
독백씬도 평소와 다르진 않았던 것 같은데 괜히 더 와 닿는 거 있지
난 선호가 그 독백씬에서 대사를 꽤 빠르게 치는 게 언제나 놀라워
그 많고 복잡한, 외국어와 외국인 이름까지 섞인 그 대사를
언제나 리듬을 잃지 않고 빠른 속도로 완벽하게 치거든
그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극의 분위기가 바뀌어 있어
그 전엔 분명 새로운 산과 루트를 향한 설렘,
술 먹고 왁자지껄해진 분위기로 꽤 들떠 있었고
그 이야기를 시작하던 조도 자신의 영웅 이야기를 할 생각에 신나 있었는데
토니 크루츠의 마지막을 묘사하면서
선호는 관객을 그때 그 순간으로 데려가는 연기를 해
선호의 독백을 듣고 있다 보면 그 장면이 생생히 그려져
토니 크루츠가 홀로 절벽에 매달려 있고,
그 절벽 아래서 모두가 발을 구르며 토니의 선택을 지켜보는 그 순간
그 순간을 누나에게 생생하게 들려주면서
어느덧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몰입해버리는 조니까
조의 산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얼마나 필연적인 것인지 알게 돼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구나
조는 산에 가야 하는 사람이구나
선호가 그 씬을 그렇게 깊은 감정씬으로 만듦으로써
관객이 조를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 거라 생각해
아 그리고 토니 크루츠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누나가 토니 언급하니까 너무 좋아서 짜증나는 듯한 그런 표정 짓는 거 나 되게 좋아함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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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서 스노우굴을 파는 씬 있지
어젠 유독 그때 흐르는 노래가 슬프더라
I, I will be king
And you, you will be queen
Though nothing will drive them away
We can be heroes just for one day
We can be us just for one day
난, 난 왕이 될 거야
넌, 넌 여왕이 되겠지
비록 아무것도 그들을 물리칠 수 없다 해도
우린 영웅이 될 수 있어, 단 하루만이라도
우린 우리가 될 수 있어, 단 하루만이라도
이 노래는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둔 연인을 표현한 노래라고 하는데
넘을 수 없는 벽을 너무도 넘고 싶었을 연인이
단 하루만이라도 영웅이 되고자 했던 그 마음을 생각하면
조와 사이먼이 손과 헬멧으로 열심히 굴을 파는 그 행위가 좀 더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결국은 그 굴 속에서 그 누구도 본적 없었던 안데스의 달빛을 눈에 담을 수 있게 되었으니
두 사람은 그날 그렇게 영웅이 된 것 같아 기쁘기도 하고
어제 조는 헬멧이 아닌 손으로 굴을 팠는데,
그런 사소한 결정 하나 하나가 나중에 조가 자신의 손을 필요로 할 때
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게 만드는 선택이 된 건가 싶기도 했어
선호가 어디까지 생각하고 연기하는지 궁금하다
드뷔시의 달빛이 흘러나오며
아름다운 달빛을 바라보는 연기를 하는 선호의 표정
나는 처음봤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경이에 찬 연기를 하는 선호의 표정은
그동안 어떤 작품에서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라 또 대단하더라
그와 동시에 이 산에서 내려간 후의 자신의 삶을
약간은 회의적으로 돌아보기도 하는 씬이기에
복잡한 감정까지 담겨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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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더보가 워낙 역동적인 동선으로 이루어진 극이다 보니
조가 추락하는 과정이나, 추락 후에 사이먼이 조를 아래로 내려다보내주는 과정 등이
매일 같을 수 없겠더라고
ㄹㅇ추락 비슷하게 되어야 하기 때문에 매회차 약간 다른 동선과 방식으로 추락하는데
어제는 진짜 사고처럼 추락해서 너무 철렁했어
추락 후에 조는 어느 때보다도 크게 분노한 것 같았어
골절된 다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절규하는 그 목소리에
짜증과 분노도 함께 섞여 있었어 어제 선호 쇳소리 많이 냈는데
이때부터 목소리로도 굉장히 강한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함
"떨어졌어!!!"
"다리가!! 부러졌어!!!"
라고 할때부터 목소리가 어찌나 갈라지는지ㅠㅠ
다치지 않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고통 가득한 표정으로
울부짖고 소리 지르고 욕하면서
선호의 얼굴이 점차 땀으로 차오르는 걸 지켜봤어
다른 때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선호가 땀범벅이 되었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어제는 뽀송하던 얼굴이 점점 젖어가는 게 실시간으로 보여서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아 붓고 있는지 와 닿더라
대단하지 않니 그 씬이 움직임 자체가 큰 씬은 아닌데
감정 연기만으로 그렇게 땀에 젖은 상태가 되도록 많은 힘을 들일 수 있다는 게
연기를 안 해 본 나는 그거 어떻게 하는 건지 감도 안 잡혀서 더 대단하게 느껴지더라고
이후에 사이먼이 조를 로프에 매달아 아래로 내려 보내는 장면에서
조는 얼음도끼로 땅을 파다가 손으로도 파고, 손가락이 아프면 손바닥으로도 파고 그래
어제는 그렇게 손바닥으로 땅을 파다가 기절 직전까지 가는 것처럼 표현했던 것 같아
안 그래도 동상이 걸려가는 것처럼 보이던 손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지고
겨우 몸을 기대서 팔만 움직이며 땅을 파던 조의 입이 점점 벌어질 때부터
아, 곧 기절하겠구나 알게 돼
나는 그걸 그렇게 표정과 동작만으로 표현하는 선호가 넘 놀랍다...
그렇게 살짝 옆으로 누운 채로 무대에 기대 쓰러져 있다가
다시 겨우 손을 들어 로프를 세 번 흔들 때 얼마나 기쁜지
선호가 그 전에 극적으로 표현해 둔 그 죽음 직전의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조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로프를 흔드는 씬이 더 큰 감동을 지니는 것 같아
그래서 그 후에 조가 속절없이 로프에 대자로 매달리게 되어버리는 씬이 더 가슴 아프지
조는 이때도 몸을 일으켜보려 안간힘을 쓰면서 욕을 내뱉는데
그 욕 한 마디에 지금 조가 얼마나 무력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다 느껴졌어
어제는 목소리가 더 쉬어 있게 연기해서 그런지(실제로 쉰 건지ㅠㅠ)
욕도 더 강하게 꽂히더라고
그리고 그거 늘 궁금해.. 그렇게 대자로 뻗은 채로 매달려 있다가
나중에 로프 끊으면 바닥에 떨어지잖아
그때 안 아프니..?ㅠㅠ 허리랑 엉덩이뼈 괜찮은 거니..?
괜찮은 방법으로 찾아서 하는 거겠지만 볼때마다 아파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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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낭에 들어가기 전에
누나가 자꾸 말려도 다 포기하고 싶어하는 그 장면에서
조가 거의 처음으로 누나에게 어리광을 부리듯이 말끝을 늘이면서 징징거리더라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선호가 그런 말투로 그 씬을 소화한 건 처음 같았어
그렇게 누나한테 의지하듯이, 약간은 아이처럼 말하니까 조가 얼마나 지쳤는지 더 잘 알겠어서 슬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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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경야에 온 조에게 리처드가 묻잖아
"외로웠어요?"
조는 쓸쓸하게 약간의 미소를 머금으며 말하지
"....응"
이때 선호 표정이 너무 쓸쓸해서 미칠 것 같아ㅠㅠ
이것도 그동안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본 적 없는 표정인데
죽음을 앞둔 사람의 초연함과 슬픔,
결국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 자신에게 스스로가 갖는 연민,
혹은 그렇게 힘겹게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갖는 허무
그런 감정이 죄다 담겨 있는 표정이라 난 터더보에서 이 장면이 가장 아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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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조 뒤에서 조의 손을 잡고
등반하는 모습을 재현하면서 그러잖아
이게 너라고
예전의 조는 그때 마치 인형처럼 움직이면서
약간 멍하고 무력한 표정으로 서있었던 것 같은데
어제의 조는 훨씬 슬퍼보였어
자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어젠 더 힘들었나봐 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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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왜 오르냐고?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왜 살아야 하냐고? 생명이, 거기에 있으니까."
이 말을 듣고 마지막 힘을 낸 조가 침낭에서 나와 기고 굴러서 베이스 캠프로 향하잖아
조가 그럴 거라는 걸 알고 보는데도,
어제 선호가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해둔 상황들이 있어서 그런지
그 결심이 정말 반갑더라
결국 사이먼을 만나 사이먼에게 똥도 묻히고
사이먼에게 안겨 환하게 웃을 때 조가 너무 행복해보여서 덩달아 같이 웃었어
조는 웃으며 죽지 않았고, 웃으면서 살아났어
넘는 게 불가능해보였던 벽을 넘어서 다시 만난 그들이
영웅이 되었던 그 순간이 참 벅차고 아름답더라
-
오늘 어제의 연기를 곱씹으며 계속 생각해봤는데
김선호의 연기는 생각보다 더 엄청난 것 같아
선호의 연기보고 활어 같다는 표현 많이들 했잖아
선호 본체 자체도 무대에서 연기하면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만큼 연기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이번 역할도 무대에서 인간의 생명력을 표현해야 하는 역할이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생의 에너지를 표출하고 있는 것 같아
연극을 보는 순간에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오히려 잘 모르다가
극장을 나와서 집에 가는 길, 오늘처럼 연기를 떠올리며 하루를 보내는 날 깨달아
지금 나한테 남아 있는 이 여운 이 힘 이 에너지
전부 선호의 연기가 준 거구나
선호의 조가 관객에게 선물해준 거구나
나는 이 힘으로 내일 출근도 할 거고
우울함이나 슬픔이 내 삶에 끼어들 틈이 없는
긍정적이고 밝은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단지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를 봤기 때문이 아니라
선호의 조가 기적 같은 희망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란 걸 이젠 알 것 같아
터더보는 보면서 많이 웃을 수도, 편할 수도 없는 극이고
내 몸이 다 아플 정도로 긴장한 채로 봐야 하는 극인데도
결국 이 극을 보고 난 후에 남는 건
희망과 긍정 그리고 행복이라는 게 신기하다
매일 온 힘을 바쳐 극을 완성하며
자신이 쏟아낸 힘 만큼의 힘을
혹은 그 이상의 힘을 다시 관객에게 돌려주어
우리가 더 힘찬 일상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선호에게 또 고마웠어
오늘도 넘나 길어졌네 너무 긴 후기 미안해 읽어준 호떡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