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HN 정철우 기자)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은 위기가 찾아왔다고 사람부터 바꾸는 지도자가 아니다.
성적이 떨어지고 팀 분위기가 처질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처방은 대개 비슷하다. 1·2군 코칭스태프의 보직을 맞바꾸고, 부진한 주전 선수를 2군으로 내려보낸다. 실제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적어도 팀 안팎에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는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분위기 쇄신이다.
그러나 염 감독은 이 방식에 분명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코치를 바꿔서 잘되는 팀을 못 봤다.”
“회사원이 계속 잘하다가 조금 안 좋아졌다고 갑자기 평가를 바꾸면 힘이 나겠느냐.”
염 감독이 위기를 다루는 방식이 이 두 문장에 모두 담겨 있다.
잘할 때는 믿다가 성적이 떨어지는 순간 책임자를 찾아내는 것은 진짜 신뢰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두 번의 실패나 짧은 부진만으로 그동안 쌓인 평가를 뒤집으면 구성원은 감독을 믿기 어려워진다. 위기 때마다 사람이 바뀌는 조직은 다음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고, 실패를 피하려는 야구는 결국 더 작아질 수 있다.
염 감독은 그 위험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지금 LG의 상황이 단순히 한두 경기의 흔들림으로 끝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LG는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삼성에 5-6으로 패했다. 9회 역전 기회를 잡고도 경기를 뒤집지 못하며 승률에서 삼성에 밀려 2위로 전반기를 마쳤다. 이후 후반기 첫 일정이었던 KT와의 4연전에서도 한 경기도 잡지 못했다. 전반기 마지막 패배까지 더하면 5연패다. 두 달여 만에 순위도 3위까지 내려갔다.
단순히 결과만 나쁜 것도 아니다.
타선은 결정적인 기회를 번번이 놓쳤고, 마운드도 접전에서 버티지 못했다. 18일 KT전에서는 9회 무사 2, 3루 기회조차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경기 후반 점수 차가 벌어지자 관중들이 일찍 자리를 뜨는 장면까지 나왔다. 우승팀이 가진 안정감보다 무기력함이 더 짙게 느껴지는 경기였다.
이쯤 되면 보통의 팀은 움직인다.
타격코치나 투수코치의 보직을 바꾸거나, 1군과 퓨처스 코칭스태프 일부를 맞교환한다. 성적이 떨어진 주전 선수를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 내려보내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실제 경기력 개선보다 변화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경우도 있다.
LG는 다르다.
천성호 정도를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을 뿐, 중심 선수들을 대거 2군으로 내려보내는 충격요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부진한 주전 대부분을 그대로 안고 가고 있다. 코칭스태프 개편 움직임도 없다.
염 감독은 흔들리는 배에서 선원부터 바꾸지 않았다.
배가 다시 중심을 잡을 때까지 지금의 사람들과 함께 버티겠다는 선택을 했다.
이것이 염 감독의 소신이다.
염 감독은 선수와 코치를 평가할 때 짧은 결과보다 긴 과정을 중시한다. 시즌 초반과 전반기 동안 팀을 선두권에 올려놓았던 선수와 코치가 며칠 사이 능력을 잃었다고 보지 않는다. 잘할 때 쌓은 신뢰는 안 좋을 때 사용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에 가깝다.
이 같은 리더십은 위기의 팀을 붙잡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선수 입장에서는 감독이 자신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다. 몇 경기 부진했다고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 대신, 자신의 문제를 차분히 고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코치도 마찬가지다. 당장 책임을 피하기 위해 선수 탓을 하거나 단기 처방에 매달리지 않고 본래의 지도 방향을 유지할 수 있다.
LG처럼 이미 우승을 경험했고 기본 전력이 강한 팀에는 이런 안정감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LG의 선수들이 갑자기 야구를 못하게 된 것은 아니다.
오스틴 딘과 문보경, 오지환, 박동원 등 중심 선수들은 이미 큰 경기와 긴 슬럼프를 모두 경험했다. 선발진과 불펜도 시즌 전체를 운영할 수 있는 자원을 갖추고 있다. 팀이 가진 전력의 총량이 며칠 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문제는 타이밍과 흐름이다.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향하고, 한 점이 필요한 순간에 삼진이나 병살이 나온다. 선발이 잘 던진 날에는 타선이 침묵하고, 타선이 점수를 낸 날에는 불펜이 버티지 못한다. 위기의 팀에서 흔히 나타나는 엇박자다.이럴 때 감독까지 조급해지면 팀은 더 흔들릴 수 있다.
라인업이 매일 크게 바뀌고, 선수들이 실수 한 번에 2군행을 걱정하게 되면 플레이는 소극적으로 변한다. 코치진 개편까지 겹치면 준비 방식과 전달 메시지도 달라질 수 있다. 염 감독은 이런 혼란보다 기존 질서를 지키는 것이 반등 가능성을 높인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뢰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믿는다는 말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돼서는 안 된다.
코치를 바꾸지 않는 대신 현재의 훈련과 경기 준비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더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선수를 2군에 보내지 않는 대신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라인업을 유지하더라도 타순과 역할, 작전 선택에는 변화가 필요할 수 있다.
사람을 바꾸지 않는 것과 방법을 바꾸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구분이 무너지면 염 감독의 소신은 장점이 아니라 고집이 될 수 있다.
현재 LG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위험도 여기에 있다.
팀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때 작은 변화 하나가 반전의 계기가 되는 경우가 있다. 2군에서 좋은 감각을 보이는 선수를 올리거나, 타순을 과감하게 조정하거나, 불펜 보직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선수단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기존 구성원에 대한 신뢰가 지나치게 강하면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좋아질 것”이라는 판단이 한 번, 두 번 반복되다 보면 짧은 침체가 장기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선두에서 2위로, 다시 3위로 내려온 지금 LG에는 기다릴 시간도 무한하지 않다.
특히 올 시즌은 통합 2연패를 목표로 출발한 시즌이다. 염 감독도 시즌 전부터 구단 전체의 목표가 다시 한 번 우승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목표가 높은 팀일수록 위기를 견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위기를 끝낼 방법까지 찾아야 한다.
염 감독의 방식이 성공하려면 지금의 선수와 코치들이 감독의 신뢰에 결과로 답해야 한다. 감독이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변화의 칼날이 보이지 않는다고 긴장감까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
결국 염 감독이 선수단에 보내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나는 너희를 버리지 않겠다. 대신 너희가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이 메시지가 선수들의 자존심과 책임감을 깨운다면 LG는 빠르게 정상 궤도로 돌아갈 수 있다. 위기 속에서도 감독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경험은 가을야구와 우승 경쟁에서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부진한 선수들이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비슷한 경기 내용이 반복된다면 염 감독은 “왜 더 일찍 손을 대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코치와 선수를 지키려던 신뢰가 팀 전체의 반등 시기를 늦췄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염 감독의 선택은 양날의 칼이다.
성급한 인적 쇄신으로 조직을 흔들지 않는 안정의 리더십일 수 있다. 동시에 필요한 충격과 경쟁을 차단하는 보수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아직 어느 쪽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분명한 것은 염 감독이 가장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코치를 바꾸고 선수를 내려보내면 적어도 감독은 무언가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결과가 나쁘면 바뀐 사람에게 책임을 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염 감독은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그만큼 최종 결과에 대한 책임도 감독 자신이 더 크게 짊어져야 한다.
LG는 지금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염 감독은 함께 흔들리는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단단함이 선수단을 붙잡는 닻이 될지, 방향 전환을 늦추는 무거운 추가 될지는 앞으로의 경기에서 확인될 것이다.
위기의 LG를 바꿀 카드는 새로운 코치도, 대규모 2군행도 아니다.
염경엽 감독이 끝까지 믿기로 한 바로 그 사람들이어야 한다.
https://m.sports.naver.com/kbaseball/article/445/000044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