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 사실 영중초가 단촐한 야구부였기 때문에 그랬다. 영중초는 이 대회에 단 9명의 선수가 출전했고 그중 전문적으로 프로 선수의 꿈을 안고 시작한 선수는 4~5명 밖에 되지 않았다.

졸업 후 학교 야구부가 없어지면서 박해민, 그리고 그 동기들의 전국대회 출전은 학교의 역사 그 자체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박해민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포수는 물론 투수, 내야 등을 다 맡아했다. 야구부에서 가장 먼저 야구를 시작해 주장이 됐다는 박해민을 감독님이 배려해 직접 시포 마스크를 쓰게 됐다고 했다.
박해민은 “원래 주로 (백)용환(KIA)이가 포수를 봤고 나도 포수를 보긴 했는데 감독님이 그래도 주장이라고 배려 해주셔서 운 좋게 시포로 나가게 됐다”고 떠올렸다.
박해민에겐 영광의 순간, 그 자체였다. ‘코리안특급’으로 메이저리그를 점령하고 있던 박찬호를 직접 눈 앞에서 만나고, 또 그의 공을 받아 볼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 큰 어른들도 설레는 일인데, 초등학생이었던 그에겐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이었을까. 두근 두근.
그는 “그 공을 받았을 때 주변에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기억이 안날래야 안날수가 없다. 박찬호 선배님이 내 글러브를 끼고 시구를 해주셨다.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고 했다.
그의 첫 전국대회 출전. 팀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던 덕분(?)인지 박찬호와의 추억은 더 깊숙히, 그리고 진하게 그의 가슴 속에 남아있었다. 영중초등학교는 개막전, 그 경기에서 바로 탈락했다.
이 사진은 그에게 있어 가장 자랑스러운 사진이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자랑스러운 추억거리 사진’으로 꼭 박찬호와 함께 한 이 사진을 냈던 기억이 있다며 웃었다.
https://m.sports.naver.com/general/article/018/0003324886
절대 안까먹을 기억이긴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