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0일 만난 이영하에게 최근 성적 반등의 계기를 물었더니 “포기죠, 포기”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영하는 “욕심이 막 많이 생겨서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결국 또 뜻대로 안 됐다. 의욕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얼마나 잘 던지겠다고 이렇게 애를 쓰나 싶었다”며 “그래서 어느 날 힘을 빼고 툭툭 던졌는데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잘 들어갔다. 이렇게 던져도 안 맞을 수가 있다는 걸, 힘을 뺐는데도 구속은 나온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했다. 펜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지 않더라도 글씨는 잘 쓸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는 설명이다.
이영하는 “힘을 빼고 던지니까 공이 더 빨라지는 것 같다. 공이 좋아졌다. 전력으로 세게 던질 때의 느낌도 다르다. 몰랐던 새로운 감각이 몸에서 느껴진다”며 “옛날에 선발로 잘 던질 때는 나도 모르게 이게 됐던 것 같다. 지금 느낌이 그때랑 많이 비슷하다. 공은 그때보다 훨씬 빨라졌으니까 자신감도 붙었다”고 했다. 이어 “혹시 앞으로 몇 번 삐끗하면 다시 몸에 힘이 들어갈까 봐 경계하고 있다. 코치님들도 이게 맞는다고 해주셔서 확신이 들었다”며 “그동안은 왜 그랬을까 싶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중 옆을 지나던 김 감독은 “영하야, 잘할 때 누려라”고 장난을 걸며 “영하 지금 너무 잘한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칭찬했다. 미소짓던 이영하는 잠시 뒤 나지막이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인생 모르는 거네요.”
2016년 두산에 1차 지명을 받은 직후 수술대에 올랐다. 2017년 5월 1군에 처음 등록됐다. 2018시즌 첫 10승 고지를 밟고 2019시즌은 17승을 올렸다. 이후 내내, 심지어 올해까지 크고 작은 부침이 반복됐다. 이영하는 “인생이 너무 파도 같다. 계속 좋았다가 안 좋기를 반복한다. ‘나는 좀 안정적일 수 없는 건가’ 생각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파도가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든 것 같았다. 이영하는 “이젠 안정적이면 그건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파도가 치면 그 위에서 서핑하려고 한다. 파도 위에서 놀면 되는 것 같다”며 “안 좋아지면 그 이유를 찾는 재미로 야구하면 된다. 맨 처음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시작했던 거니까 그 마음만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 상황이 조금 안 좋더라도 동요를 덜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팀 투수진이 전체적으로 어린 탓에 이영하는 젊은 나이에도 사실상 불펜의 리더이자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후배들이 나를 라디오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불펜에 있으면 나는 계속 말하고 애들은 계속 웃는다. 어쩌다 (후배들이) 한 마디씩 대답해오면 그때는 대화를 좀 하고 다시 혼자 말한다”며 “그렇다고 동생들이 나한테 의지하진 않는다. 혼자 이겨내는 것이다. 다만 옆에서 조언을 할 뿐인데 그게 나한테도 도움이 된다. 말하는 대로 살게 된다는 걸 믿으니까”라고 했다.
젊은 포수 김기연·윤준호와 호흡하는 과정도 재밌다. 이영하는 “양의지 형과 할 때는 형을 믿고 따라간다면, 기연이나 준호와 할 때는 계속 대화하면서 맞춰나간다. 초반에는 (볼 배합에) 내가 고개를 흔들 일이 좀 많았고 지금은 딱히 그럴 일 없이 잘 맞는 것 같다. 같이 좋은 경험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은 목표는 두 개다. 올 시즌을 앞두고 맺은 FA 계약(4년 최대 52억원) 기간 내내 야구를 잘하는 것,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이영하는 “우승을 진짜 하고 싶다. 그 도파민을 못 느껴본 지가 너무 오래됐다. 우승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그 기분을 한 번만 더 느껴보고 싶다. 우승까지 가는 과정도 그립다”고 했다.
이영하는 “팀이 조금만 더 하면 순위를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문턱 하나를 못 넘고 있다”며 “최근 (세이브 상황이 많지 않아서) 내가 경기를 많이 못 나갔는데 많이 나가고 싶다. 경기할 때마다 혼자 속으로 ‘제발, 제발 나까지만 와라’ 생각한다. 많이 등판해서 혹사당한다는 얘기 좀 듣고 싶다”고 말했다.
https://m.sports.naver.com/kbaseball/article/144/0001118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