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방 커뮤니티의 새벽은 푸르게 가라앉아 있었다.
화면에 뜬 숫자 '0'
으쓱이는 스마트폰 화면을 엄지로 신경질적으로 문질렀다. 지워지지 않는 낙인 같았다. 양랑이가 옆에서 "괜찮아, 다들 바빠서 못 봤나 봐"라고 위로했지만, 그 다정한 목소리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장 화가 나는 건, 저 멍청한 선관위 곰, 됴디였다.
"대충 내가 한 표 던져줬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줘 ദ്ദിʕ •̅𐃬•̅ʔ"
대충? 불쌍해서 던져준 동정표?
으쓱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너한테만큼은 그런 식으로 동정받고 싶지 않았는데. 으쓱이는 홧김에 타자를 쳤다.
제목: 으쓱이는 이 일을 잊지 않을 거야 〆૮₍•Ⱉ•๑ ₎ა
오늘 일기 썼어. 됴르신 미워 s૮₍ `⌒´ ₎აz
글을 올리고 화면을 엎어버린 순간, 으쓱이의 개인 메신저가 울렸다.
[됴디]
으쓱이는 숨을 멈췄다. 받지 말까. 하지만 손은 이미 채팅창을 열고 있었다.
[됴디: 잠깐 나와볼래? 집 앞이야.]
가로등 불빛 아래, 커다란 덩치의 곰이 서성이고 있었다.
됴디는 평소의 헐렁하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이 아니었다. 축 처진 어깨, 불안하게 꼼지락거리는 커다란 손.
으쓱이가 슬리퍼를 끌고 나타나자, 됴디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으쓱아."
"왜 불렀어. 키티 챙기러 안 가?"
으쓱이는 일부러 더 쌀쌀맞게 굴었다. 팔짱을 끼고 시선을 피했다. 됴디의 시선이 으쓱이의 붉어진 눈가에 머물렀다.
"미안해."
됴디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뭐가? 투표 망친 거? 아니면 나 0표 만들어서 쪽팔리게 한 거?"
"전부 다. 그리고... '대충' 던진 표라고 말한 거."
됴디가 한 걸음 다가왔다. 으쓱이는 뒷걸음질 치려다 멈췄다. 됴디의 표정이 너무나도 절박해 보였기 때문이다. 항상 웃기만 하던 곰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사실은 손이 떨려서 그랬어."
"뭐?"
"사다리 타기 같은 거 몰라. 근데 네 이름이 후보에 올라온 거 보고, 내가 선관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 남들 손에 네 결과 맡기기 싫어서."
됴디가 으쓱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근데 내가 망쳤어. 널 웃음거리로 만들고, 상처 주고... 내가 너무 한심해서, 덜 쪽팔리려고 글을 그렇게 썼어. 널 가볍게 대하는 척하면, 내 실수가 덮어질까 봐."
으쓱이의 팔짱 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바보 같은 곰. 미련한 곰.
"그 한 표, 동정 아니었어 으쓱아."
됴디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으쓱이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닿을 듯 말 듯 한 손길에 으쓱이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거기 있는 후보들, 다 친구고 소중하지. 근데... 내가 진심으로 응원한 건 너 하나였어."
으쓱이는 울컥 치솟는 감정을 누르려 입술을 깨물었다. 키티랑 커플이면서. 으쓱이 자신도 양랑이가 있으면서. 왜 이 곰은 이 새벽에 사람 마음을 헤집어 놓는 걸까.
"치워, 그 손."
으쓱이가 틱, 하고 됴디의 손을 쳐냈다. 하지만 평소처럼 매섭지는 않았다.
"다음에 또 이런 식으로 일 처리하면, 그땐 진짜 안 봐줄 거야."
"응. 다신 안 그럴게.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
"그리고... 밥 사."
됴디의 얼굴에 그제야 옅은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비싼 걸로. 키티 몰래, 우리 둘만."
으쓱이의 마지막 말에 됴디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깊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둘만."
새벽 공기가 차가웠지만,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아슬아슬하게 가까웠다. 0표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싹트고 있었다.
친구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위험하고도 애틋한 1표의 진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