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구위를 가진 투수들이 너무 많은데요"
SSG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불펜 피칭을 하는 날이었다. 이전에도 투구를 한 적은 있지만, 어떻게 보면 2025년 시즌의 첫 출발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긴장도 했다. 다른 투수들의 불펜 피칭에 신경이 쓰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공을 던지면서 표정은 계속 밝아졌다. 확신을 가진 듯 조금씩 몸이 풀리고 힘이 들어갔다. 불펜 피칭을 마무리할 때쯤에는 육안으로 봐도 강한 공을 포수 미트로 꽂아 넣고 있었다. 김민(26·SSG)의 얼굴에는 미소가 흘렀고, 이숭용 SSG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2025년 시즌을 앞두고 오원석(24·kt)과 맞트레이드를 통해 SSG 유니폼을 입은 김민은 1월 31일(현지시간) 첫 불펜 피칭을 했다. 아직 전력투구를 할 상황은 아니지만 김민의 현재 몸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날이었다. 김민은 지난해 71경기에서 77⅓이닝이라는 꽤 많은 이닝을 던졌다. 비시즌 동안 몸을 더 철저히 만들어야 2025년 일정이 지장이 없는 업무량이다. 이숭용 감독, 경헌호 투수코치 등 코칭스태프가 김민의 주위로 몰려든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유신고를 졸업하고 2018년 kt의 1차 지명을 받은 김민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kt의 핵심 유망주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유망주 꼬리표가 꽤 오래 붙어 있었지만 지난해 맹활약으로 그 꼬리표와는 작별을 했다. 시즌 71경기에서 8승4패21홀드 평균자책점 4.31로 활약하며 위기에 몰렸던 kt 불펜을 구해내는 수훈을 거뒀다. 경력의 전기는 바로 찾아왔다. 시즌 뒤 오원석과 맞트레이드돼 SSG 유니폼을 입었다. 뭔가 숨이 가뿐 1년이었다. 트레이드 때는 생각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 잊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하고, 앞만 보고 준비했다. 잡념을 버리고 야구에만 전념한 결과는 첫 불펜 피칭에서 그대로 증명되고 있었다.
여전히 떼어 내야 할 물음표들이 많다. 지난해 많은 이닝을 던졌다. 혹사 논란이 있기도 했다. 몸 상태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 물음표는 자신이 곧 지워버릴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스스로 느끼는 몸 상태가 너무 좋다. 김민은 "시즌 끝나고도 꾸준히 공을 던졌던 것 같다. 여기서 트레이닝파트 코치님들이 많은 것을 잡아주시기도 했다. 되도록 빨리 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주문이 있어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팔이 넘어오는 느낌도 좋다. 김민은 오히려 "두 번 정도만 더 불펜 피칭을 하면 시즌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매우 만족하고 몸도 잘 쓰이는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고 우려를 일축했다.
두 번째 물음표는 SSG가 아끼던 선발 자원이었던 오원석과 트레이드가 된 가치를 해낼 수 있느냐다. 이것은 김민이 이제부터 증명해 나가야 할 명제다. 이숭용 SSG 감독은 마무리로 조병현, 그리고 6~8회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쓸 투수로 노경은을 낙점했다. 지난해 홀드왕이자 8회를 책임졌던 노경은이 앞으로 보낸다는 것은 김민을 믿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김민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공 하나로 경기를 이길 수도 있고, 공 하나로 경기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지난해 너무 많이 느꼈다고 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구단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각오다.
떼고 싶은 꼬리표는 또 있다. 김민은 어린 시절부터 건장한 체격 조건을 바탕으로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최고 구속이 시속 150㎞를 넘길 정도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것이 재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김민은 이제 그 시선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김민은 "'얘는 재능이다. 무조건 재능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유니폼도 새로 입은 것 아닌가. 재능의 김민이 아닌, 노력파 김민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보겠다"고 강조했다. 바뀐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나 보직, 유니폼이 아닌 그 마음가짐이었다.
목표는 일찌감치 정했다. 꽤 크게 잡았다. 크게 잡고 그 목표를 향해 뛰기로 했다. 김민은 "일단 2점대 평균자책점을 해보고 싶다. (작년에) 공 하나에 3점대로 가고, 공 하나에 4점대로 갔다. 이제는 2점대를 해보고 싶다"면서 "작년과 같이 70경기에 나가고, 구단에서 잡아준 목표대로 30홀드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민은 "작년에 했던 것이 운이 아니라면 가능할 것 같다"고 당차게 말했다. 그 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김민은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노력이 계속된다면, 트레이드의 부담감이나 비교는 곧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