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소식이 알려지자 여론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좋은 선수라는 것, 팀에 필요한 선수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지만 확실한 주전 선수는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출전 시간을 보면 실제 그랬다. 그런 선수에게 4년 총액 18억 원이라는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주는 게 맞느냐는 이야기가 빗발쳤다. 즐겁고 뿌듯해야 했던 FA 계약은 시작부터 '오버페이' 꼬리표가 붙어 선수를 괴롭혔다.
2023년 시즌을 앞두고 SSG와 4년 총액 18억 원(계약금 6억 원·연봉 총액 10억 원·인센티브 총액 2억 원)에 계약을 한 오태곤(34·SSG)은 그런 싸늘한 시선과 싸워가야 했다. 당시 SSG는 오태곤과 이태양(한화)이 모두 FA 시장에 나왔지만 샐러리캡 한도 탓에 둘 중 한 명만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현장은 내·외야 소화가 모두 가능하고 작전수행능력이 좋은 오태곤을 우선순위로 뒀고 그렇게 협상이 진행돼 계약에 이르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환영받는' 계약이 아니었다는 점은 사실이었다.
오태곤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오태곤은 당시를 떠올리며 "알고 있었다. 오버페이라는 말이 많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팬들께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다 관심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계속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는 의지도 생겼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런 여론이 오태곤을 더 부지런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 셈이다. 오태곤은 "일희일비하지는 않았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이었고, 내 할 것을 하자는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2023년 첫 시즌은 123경기에서 타율 0.239에 머물면서 팬들의 비판이 더 강해졌다.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역시 오버페이라는 지적이었다. 출전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선수가 어떠한 거대한 물줄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2024년 시즌을 앞두고 감독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태곤은 팀 뎁스차트에서 여전히 '백업'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이숭용 감독은 오태곤의 가치를 너무나도 잘 아는 지도자였지만, 젊은 선수들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주전 1루수 자리는 고명준에게 돌아갔다. 그런 흐름 속에 오태곤은 시즌 초반 출전 기회를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증명할 시간은 계속 줄어갔다.
하지만 항상 묵묵하게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한 오태곤은 시즌 중반 이후 대활약하며 팀의 '소금'에서 '빛'으로 떠올랐다. 어린 선수들의 페이스가 하나씩 처지고,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나올 시점 오태곤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그라운드에서 다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시즌 중·후반 이후로는 팀의 승리를 이끈 경기들이 많았고, 변함없는 멀티 포지션 소화 능력과 클러치 능력, 그리고 뛰어난 주루 능력까지 선보이며 여론을 돌려놨다. 4년 18억 원 계약에 회의적이었던 팬들 중 상당수는 이제 "그만큼은 줄 만했다"고 생각을 바꿨다.
분위기 반전에 성공해 욕심이 날 법도 하다. 주전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없다면 그건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오태곤의 기본적인 생각은 팀이 원하는 곳에 언제든지 나설 수 있도록 묵묵히 준비하는 것이다. 한 시즌을 주전 선수들로만 채울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자신을 비롯해 뒤를 받치는 선수들이 결국 시즌 성패를 좌우한다고 믿는다. 백업도 팀 성적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오태곤은 지난해 증명했다. 그러다 보니 쉴 시간이 없다. 더 철저하게 2025년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 경기장에 나와 최정 김성현 등 베테랑 선수들과 훈련을 하고 있는 오태곤은 "몸은 아주 깔끔하다. 준비가 됐다"고 자신했다. 마음 각오도 단단하게 먹는다. 오태곤은 "매년 솔직히 힘들기는 하다. 나도 당연히 주전으로 나가서 많이 뛰고 싶다. 하지만 항상 '네가 나가면 뒤에 받쳐줄 선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웃으면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역할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잘 받아들여서 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지난해 이상의 활약을 다짐했다.
백업들이 잘해야 올해 팀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고 강조하는 오태곤이다. 오태곤은 "백업들이 더 발전해야 팀이 발전할 수 있다. 작년까지는 (추)신수 형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지명타자 자리가 빈다. 돌아가면서 지명타자를 하면 누군가는 그 빈자리에 들어가야 한다"고 팀 상황을 짚었다. 그 선수들의 공백이 티 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몫이라고 믿는다. 오태곤은 "주전들이 다 잘하면 좋겠지만 16년 동안 하다 보니 그게 쉽지 않더라. 기회는 항상 2~3번씩 온다. 그때 잘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태곤이 말하는 대로 주전 라인업만 놓고 보면 10개 구단은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순위를 가르는 것은 선수층의 두께로 이어지는 백업들의 역량이다. 벤치에서 그 힘을 목도한 오태곤은 백업이라고 해서 기죽어 있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젊은 선수들이 지난해 이상의 활약을 할 것이라 자신하는 오태곤은 "우리 팀 분위기는 항상 좋은 편에 속한다. 우리가 하위권에 처질 전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증명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 중심에는 오태곤이라는 슈퍼 유틸리티가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