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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형사 개봉 전 필름 2.0 제작과정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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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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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밑에 텍스트 있음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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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극강의 영화 장인 이명세의 숙명적 스펙터클 


첫 번째 사극이다. 이번에는 대결이다. 하물며 사랑이다.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이어 애타게 기다려왔던 이명세의 신작 <형사 Duelist>가 막바지 후반 작업에 한창이다. 

<형사 Duelist>의 지난했던 제작 과정을 다섯 장면에 담았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이명세 감독의 신작 <형사 Duelist>(이하 <형사>)는 방학기의 만화 <다모>를 원작으로 삼았다. 동명의 드라마가 TV에서 인기를 끌며 폐인들을 양산했고, 드라마를 통해 조선 여형사 이미지로 각인된 하지원이 주연을 맡았으니 이를 두고 '<다모> 극장판'이라는 말들이 나온 건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형사>는 다르다. 달라도 많이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 이건 이명세의 영화다. 이명세의 <형사>는 만화 또는 TV 드라마의 극장판이 되려고 하지도 않지만, 되려고 한들 그럴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차라리 ‘조선으로 간 <투캅스>’나 ‘한복 입은 <로미오와 줄리엣>’일지언정 극장판 <다모>는 아니"라고 극구 주장했던 이명세가 이제 자신의 공언을 확인시켜 줄 날을 잡았다. 이명세의 일곱 번째 드라마가 이제 곧 시작된다.


때는 ‘아마도’ 18세기, 조정의 어지러움을 틈타 시중에 가짜 돈이 유통된다. 좌포청의 안 포교(안성기)와 단짝을 이룬 남순(하지원)은 매사에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의욕적인 신참이다.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남순은 안 포교의 걱정을 사지만, 경륜이 두터운 안 포교는 무공이 월등하고 변장에도 능한 후배 남순을 누구보다 믿고 있다. 안 포교와 찰떡 궁합을 이뤄 가짜 돈의 출처를 찾던 어느 날, 남순은 떠들썩한 장터에서 유력한 용의자인 병판 대감(송영창)의 오른팔 ‘슬픈 눈’(강동원)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단번에 슬픈 눈에 빠져버린 남순. 출생과 성장 배경이 알려지지 않은 채 자신을 거둬준 병판 대감의 명대로 임무를 수행하던 고독한 자객 슬픈 눈 역시 남순에게 연정을 느낀다.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상황에서 마주 선 ‘로미오와 줄리엣’.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대결의 상황에서 제어할 수 없는 사랑의 연심이 타오른다.



ㅣ1. 첫 만남-혼돈 속의 대결

<형사>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추적’ 모티프를 ‘대결’로 바꿨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 형사(박중훈)는 살인마 강성민(안성기)를 쫓으며 크고 작은 대결을 벌이지만 <형사>의 남순은 시작하자마자 슬픈 눈과 맞닥뜨린다. 만나고 어긋나기를 수 차례 반복하다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장렬한 대결을 벌인다. 영화 카피가 말해주듯이 ‘생애 단 한번의 대결, 그리고 단 한번의 사랑’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남순과 슬픈 눈의 첫 만남이 장터에서 이루어진다는 건 흥미롭다. 3천 평이 넘는 대지에 8억 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은 장터 세트는 ‘세트의 영화’를 추구해온 이명세의 전작들을 포함하더라도 스케일 면에서 단연 압권이다. 이명세는 “오픈 세트로 지어진 장터조차 넓은 실내 공간이 있었다면 실내 세트로 짓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평균 제작비를 넘지 않은 그의 전작들에 비해 순제작비만 78억 원이 투입된 <형사>는 이 정도 스케일을 가능케 했다. 이제껏 보지 못한 이명세 영화 최초의 군중 액션 신이 남순과 슬픈 눈의 첫 만남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장터 신의 테마는 ‘혼돈 속의 대결(duel in chaos)’이다. 옷 색깔이 다르고, 움직임의 방향과 크기가 다른 인물들이 ‘카오스’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귀면탈을 쓴 슬픈 눈과 치마끈을 동여맨 남순이 운명적으로 스친다. 찰라적 스침의 순간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직감적으로 느낀다. 이 운명적인 만남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은 두 사람을 포위한 집단의 움직임이다. 군중들 사이에 돈다발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돈을 집기 위해 뒤엉키면서 먼지를 일으킨다. 혼란을 틈 타 도망치려는 슬픈 눈의 귀면탈이 반쯤 벗겨지고, 동시에 범인을 잡으려는 남순의 머리채가 풀려진다. 먼지는 더욱 거세져 눈을 가리고 슬픈 눈이 시야에서 벗어나자 남순은 망연자실 그의 뒷모습을 좇는다. 슬픈 눈과 남순의 우연한 마주침은 혼돈이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격렬하게 요동치는 거부와 끌림, 임무와 자존, 행위와 감정 사이의 대결이 혼돈의 비주얼을 통해 보여진다.


장터 신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회화에 가까운 이미지다. 깊이감 있는 한 폭의 유화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이명세와 이형주 미술감독조차 "기대 보다 훨씬 잘 나온 수확"으로 꼽는 명장면. 이명세는 장터를 깊이감과 화려한 색감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설정했고 이형주 미술감독은 꽃가게와 포목점이 길게 늘어선 거리를 만들어 감독의 의도를 십분 살렸다. 촬영할 때는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보조 출연자 1백여 명이 흥청거리는 장터 분위기를 연출했다. 도입부 30분가량을 온전히 채우는 장터 신을 해의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찍었다는 황기석 촬영감독은 “<공각기동대>의 장터 신도 참조했지만 기본적으로 미식 축구의 한 장면을 모델로 삼았다”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공을 잡으려고 서로의 몸을 밀치고 쓰러지고 위로 올라타는 미식축구 선수들처럼 몸과 몸이 뒤엉킨 형상이다. 곱게 갈아서 만든 황토색 먼지가 일자 먼지 앞의 사람들과 먼지 뒤의 사람들이 분리돼 깊이감이 생기는 효과도 얻었다. 황기석 촬영감독은 “드라마 위주 영화는 피날레 부분에 가서야 큰 신이 나오지만 <형사>는 처음부터 크다. 마지막에도 크다. 따라서 촬영의 난이도도 크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쉽게 넘어간 장면이 하나도 없었던 <형사>에서 이명세의 최우선 목표는 ‘움직임’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가져가려 했던 건 움직임과 리듬, 딱 두 가지”라고 말한다. 운동, 흐름, 느낌은 모두 움직임에서 나온다. 장터 신 역시 이런 맥락을 깔고 있다. ‘움직임의 극대화’라는 전제 속에서 도입부 장터 신은 미식 축구, 마지막 집단 전투 신은 매스 게임처럼 보이도록 연출됐다. 집단적인 움직임과 리듬을 포착하려는 야심은 이명세의 전작에서도 발견된다. <첫사랑> 연출부로 이명세와 인연을 맺은 <형사>의 오은실 프로듀서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형사들이 김주연(최지우)의 아파트에 들이닥치는 장면을 꼽으며 “<형사>는 전작에서 감독이 추구했으나 제작 여건상 채울 수 없었던 한계를 뛰어넘는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세 영화의 종합편이고 관객들에게는 이전에 없었던 것을 보는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명세 감독은 두 번째 액션영화이자, 첫 번째 사극인 <형사>에서 데뷔 이래 줄기차게 추구해왔던 ‘영화적 움직임과 운동성’에 대한 집착을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ㅣ2. 상상의 권능이 만개한 대안 사극

'퓨전이 아닌 얼터너티브'. <형사>의 미술 컨셉에 대한 이형주 미술감독의 요약이다. 기와집 대신 아파트를 지을 순 없지만, 고쟁이 대신 청바지를 입힐 순 없지만, 검은 생머리를 금발로 염색할 순 없지만 사극의 재현 관습을 혁파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했다. 이명세와 <형사>팀이 던졌던 질문은 늘 같았다. “꼭 그것이어야 하는가? 다른 대안은 없는가?” 특별히 미술 스탭들에게는 끝없이 그런 질문을 던졌다. 가죽 옷에 날개를 달고 '미쏘니' 니트로 옷감을 해입는 기벽에 가까운 실험에 주저했던 스탭들도 차츰 "상상력을 깨우라"는 이명세의 지상 명령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기와집 대신 아파트를 지을 순 없지만 그 시대에도 유리는 있었으므로 문에 유리를 끼우는 건 가능했고, 고쟁이 대신 청바지를 입힐 순 없지만, 푸른 빛깔의 옷을 데님 천으로 지을 수는 있었으며, 검은 생머리를 금발로 염색할 순 없지만 누리끼리한 곱슬머리를 만들 수는 있었다. 사극이라는 대전제를 느슨하게 수용하면서 모던한 감각을 더하고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자 <형사>는 ‘사극=한복 영화’라는 따분한 고정관념을 멀리 쫓아낼 수 있었다.


장르상 <형사>의 별칭은 ‘조선 누아르' 혹은 ‘도시 사극’이다. 얼핏 보면 특이한 행색의, 자세히 보면 대담한 스타일의 디자인 요소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이명세가 끔찍히 싫어하는 건 '백의민족 신화'다. "사극에서 흰 옷 입고 나오는 건 딱 질색"이다. 감독의 뜻 받들어 정경희 의상팀장은 기기묘묘 형형색색의 의상 3백여 벌을 손수 디자인해 제작했다. 단추 하나 상투 끝 하나까지 디자인하고 옷감 하나하나까지 염색했다. 일단 한복의 상징인 동정을 다 떼버렸다. 옷 고름은 묶기가 가능한 끈으로 변형시켰다. 멀쩡한 옷 뒤집어 솔기가 밖으로 보이도록 하는 첨단 패션 트렌드도 도입했다. 이는 조선 여형사 남순의 캐릭터 때문이었다. 왈가닥 여형사 남순은 남자 못지않게 몸을 쓰는 과격한 인물이다. 잠복 근무차 기생 변장을 할 때도 있지만 여염집 아씨 마냥 긴 치마에 짧은 저고리를 입을 순 없는 노릇이다. 실루엣은 민첩한 느낌을 살렸고 니트 소재의 편물을 많이 써 활동성을 강조했다. 영화 속 배경이 겨울인지라 여러 겹 겹쳐 입은 남순은 요즘 유행하는 레이어드 룩을 연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독수리, 혹은 까마귀 이미지를 제시한 이명세의 아이디어를 이어 받은 정경희 의상팀장과 황현규 분장, 헤어 팀장은 슬픈 눈 캐릭터를 <매트릭스>의 네오를 연상시키는 전위적인 모습으로 제시한다. 슬픈 눈 또한 상투를 틀고 갓을 써야 하는 조선의 남자지만 그림자 같은 자객으로 활동할 때는 길게 늘어지는 정장 스타일의 검은 옷을 입는다. 검은 옷이 다양한 재질과 섞여 빛을 투과하거나 반사시키는데 이런 의상들은 대사가 거의 없는 슬픈 눈에게 새로운 표현 언어를 부여한다.


사극의 관습적 재현 방식을 타파하고 캐릭터를 드러내는 것 외에도, 의상은 '운동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됐다. 길게 늘어뜨린 천과 끈은 인물이 움직일 때마다 선과 면의 움직임을 만들고 흐름을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끊어지듯 층이 진 슬픈 눈의 긴 머리도 이 같은 운동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이다. 처음에는 한복과 긴 머리를 부담스러워하던 강동원이 우아한 자태로 휘날리는 옷자락과 머리를 보며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스탭들의 증언도 있다. <형사>의 접근 방식은 이렇듯 '재현' 보다는 '창조'에 있었다. 신분과 성별에 따라 색과 형을 엄히 구분하는 기존 사극의 정석을 폐기하고 액션의 순간마다 몸으로 검으로 옷으로 머리로 가장 미적인 운동감을 표현할 수 있는 요소들만을 한데 모았다.



ㅣ3. 감정을 디자인하는 율동

<형사>의 '액션'은 액션이 아니다. 액션이라는 말보다 여기에는 운동, 리듬, 율동, 안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이명세도 그런 말을 좋아한다. 칼을 들고 휘두르니 검술 액션, 무술 고수의 대결을 다루니 무협 액션이 맞지만 감정과 호흡이 담긴 움직임을 디자인한다는 점에서는 춤과도 통한다. 엄청난 경공술이나 불꽃 튀기는 검의 부딪힘은 애저녁에 포기하는 게 좋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통해 이명세의 액션 철학을 공유한 무술감독 전문식과 현대무용가 정광국이 배우들의 트레이닝을 함께 맡은 이유도 여기 있다. 강동원, 하지원뿐 아니라 안성기, 송영창 등 조연들까지 기초 체력 훈련, 낙법, 선무도, 탱고 등 액션 연출에 필요한 과목들을 모두 마스터했다. <형사>의 배우들은 '서 있지만 멈춰 있지 않고 격하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했다. "호흡의 끊어짐 없이 이어지며 그 안에서 부딪히는 액션"을 위해 쿵푸의 타오식(한쪽 다리로 버티고 서서 중심을 잡는 동작)과 탈춤을 응용한 동작, 자세를 낮게 해 호흡을 길게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무도, 춤 동작에 가까운 액션 안무를 위해 탱고, 야구에서 투수가 몸을 비틀며 와인드업(공을 던지기 위한 준비 자세)을 하는 동작까지 학습했다.


이명세가 탱고를 원했던 건 호흡과 리듬 때문이었다. 탱고를 사사한 정광국에 따르면 "트레이닝의 본질은 특정 동작을 익히는 게 아니라 배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근육과 골격의 특성을 자각해 스스로 느끼면서 능동적으로 액션을 하는 데 있었다"고 말한다. 몸이 어떤 자세로 어떤 긴장을 품고 있는가에 따라 표현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남순과 슬픈 눈의 대결은 움직임을 통해서도 보여지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에서도 확인된다. 자객이라는 정체성에 따라 빠르고 날렵한 칼을 놀리는 슬픈 눈에 비해 남순은 형사로 변장을 많이 하는 까닭에 몸에 숨기기 쉬운 단검을 주무기로 쓴다. 슬픈 눈은 날카로운 한 날의 칼을 쓰고 남순의 단검은 어느 곳이든 자유자재로 들어갈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긴 칼과 짧은 검, 한 날과 양날 등 무기에서부터 대결 구도는 관철되고 있다. 안 포교는 동작의 크기가 두드러지는 봉을 무기로 사용하고 유력 권력자인 병판대감에게는 권력의 상징인 장도가 쥐어졌다.


슬픈 눈과 남순이 대결을 벌이는 돌담 장면에서 슬픈 눈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스럽게 찔러줘." 감정을 표출하는 액션을 요구받은 이 장면에서 두 배우의 땀냄새 나는 훈련은 진가를 발휘했다. 서로의 목을 겨누고 있지만 "사랑하는 감정이 끈적하게 녹아났으면" 했던 이명세의 바람은 '빈틈을 노리고 파고 들었다가 휘감아 어루만지면서 돌아나가는 동작'을 통해 구현된다. 돌담 액션 신은 남녀의 성차를 무시하듯이 섬세하고 부드러운 슬픈 눈과 무모할 정도로 밀어붙이는 남순이 나누는 사랑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연결시킨다. 칼 끝에 묻어 있는 애정, 눈 속에 어리는 원망, 낯빛에 담긴 연민이 감정의 회오리를 일으킨다. 몸과 칼, 의상, 색, 빛 크고 작은 율동의 요소들은 원, 곡선, 직선을 넘나든다. 상극의 자석처럼 서로를 밀어내다가도 순식간에 한데 섞이는 조화, 두 사람이 움직이되 하나된 듯한 운동, 대결의 상대가 교합에 이르는 움직임은 감정의 액션을 극대화한다. 반투명 옷을 휘날리며 연심(戀心)을 머금은 칼을 휘두르는 슬픈 눈, 그 창백한 얼굴과 남순의 기묘한 시선이 부딪히는 격렬한 감정의 액션이 오르가슴을 방불케 하는 영화의 절정부를 채운다.



ㅣ4. 빛과 색을 얻기 위한 전쟁

<형사>에서 운동감과 리듬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색이다. “만화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색감이 강하다”는 황기석 촬영감독의 말에서도 짐작이 간다. 강렬한 색감의 영화라는 사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장이모우나 첸 카이거의 영화와 비교하기도 한다. 황기석 촬영감독은 "장이모우의 <홍등>은 색이 스타일적인 선택이었지만 <형사>는 스타일 자체가 색"이라며 "색감의 전략이 있다기보다는 색의 농도에 대한 전략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순수한 농도의 색깔의 추출해내기 위해 <형사>는 <매트릭스 리로디드> <스파이더맨2> 등 일부 할리우드영화에서 사용한 4K 포맷의 디지털 색보정(Digital Intermediate)을 시도했다. 색감 표현, 특히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전환될 때의 부드러움,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햇빛이나 달빛이 피부에 뭉개지면서 어리는 부드러운 느낌을 살려내고 싶었던 이명세는 4K 포맷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거의 대부분 4K의 지원을 받은 <형사>는 전반부 장터 장면에서 오색빛 찬란한 색을 만들어내더니 후반부 돌담길 밤 장면에서는 흑백 영화에 가까운 룩을 뽑아냈다. '색과의 전쟁'을 가장 혹독하게 치른 것은 미술팀이다. 색등과 화려한 장식들이 즐비한 홍등가, 달동네 분위기의 계단길, 컬러풀한 병풍을 둘러친 기생집 등 곳곳에서 색의 잔치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명세가 즐겨 쓰는 낙엽을 모으기 위해 한 달간 남산 변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1백 포대를 모았고, 눈만 해도 소금, 쌀가루, 지붕에 뿌리는 스노 카펫, 바람불 때 회오리 효과를 내는 스노 페이퍼 등 여러 종류가 쓰였다. 병판대감 집에는 국화 2천 송이를 싶었고 나무에 잎 달고 이끼, 담쟁이 붙이고 검은 옷에 떨어진 눈 떼고, 천지창조에 가까운 고행의 작업을 거쳤다.


‘세트의 영화’인 <형사>는 조명의 비중이 어느 한국영화, 어느 이명세 영화보다 절대적이다. 새로운 질감의 화면을 얻기 위해서는 새롭게 설계된 조명이 필요하고, 새로운 조명을 설계하려면 새로운 조명 장비가 필요했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에서 쓰이는 ‘스페이스 라이트’라는 조명기는 <형사> 이전에 한국영화에 부분적으로만 쓰였던 장비. <형사> 조명팀이 이 기기를 네 대 수입하고, 30대를 자체 제작하면서 현장에 본격 투입되기 시작했다. 광량을 확보하기 위해 발전차가 끌어 쓴 전력량은 한국영화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빛의 양을 늘인 이유 역시 움직임을 잡아내는 전략 때문이다. 돌담 신은 40m짜리 벽을 따라 조명기 30개를 촘촘히 배치해 작은 폭으로 쪼개서 빛을 던졌다. 큰 광원 한두 개가 아니라 작은 광원 여러 개를 배치했기 때문에 인물이 움직여도 그림자의 크기와 농도를 일정하게 맞출 수 있었다. 이명세는 그깟 그림자 때문에 감정의 호흡을 끊고 싶지 않아 했다. 돌담 신에서는 초당 24프레임으로 흘러가는 정상 속도를 120프레임까지 늘리면서 그로테크스한 리듬을 만들었는데 밤 장면 고속 촬영이 이 정도로 빨라지면 노출에 필요한 광량도 그만큼 늘어나기 마련이다.


돌담 장면에서, 격돌의 와중에 슬픈 눈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남순은 판타지인지 실제인지 분간할 수 없는 국면으로 돌입해 꿈에 그리던 슬픈 눈을 만난다. 남들이 볼까봐 죽일 듯 덤벼들지만 반가운 마음을 형언할 수 없다. 사랑하지만 사랑해선 안 되는 두 사람은 빛과 어둠 사이를 들어갔다 나갔다 하며 칼로 합을 교환하는데 사랑하는 연인들의 춤사위처럼 미려한 동작들이 이어진다. 이명세는 빛의 농담을 극명하게 가른 미궁 같은 돌담에서 카메라의 속도를 자유롭게 조절해가며 대화 장면 같기도 하고 섹스 장면 같기도 한 남순과 슬픈 눈의 액션을 연출했다.



ㅣ5. 전투-혼돈과 질서의 마지막 봉인이 열린다

<형사>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집단 전투 신은 미식축구를 모델로 한 도입부 장터 신과 수미상관을 이룬다. 낮과 대응하는 밤, 혼돈과 대응하는 질서, 황토색 먼지와 대응하는 흰 눈이 천지를 뒤덮는다. 이명세는 눈에 맺힌 게 많다. 전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계절 배경을 늦가을에서 겨울로 설정했음에도 이명세는 그 좋아하는 눈 한번 맘껏 뿌리지 못했다. 우 형사(박중훈)와 김 형사(장동건)가 눈발 날리는 놀이터에서 눈싸움하는 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명세는 우 형사와 강성민의 폐광촌 사투 장면에서 비 대신 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명세는 <형사>가 <첫사랑>이나 <지독한 사랑>을 잇는 러브스토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정을 풍성하게 해줄 눈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다. 아래서 위로 상승하는 수증기와 먼지, 위에서 아래로 하강하는 비와 눈 등 에너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다양한 질료들은 이명세 영화의 독특한 공간감과 정조를 만들어낸다. 그중에서 이명세가 눈을 좋아하는 건 오우삼이 흰 비둘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이유가 없다. 어쩌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눈 대신 비를 내린 게 찜찜했던 사람은 오직 이명세 자신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눈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 효과 업체 A.I.에 뿌린 제작비만 해도 무시 못할 정도로 <형사>에는 다양한 가짜 눈이 너울너울 화면 위를 춤춘다.


남양주종합촬영소 운당 세트에서 촬영된 클라이맥스는 안 포교가 이끄는 포졸 무리가 딸의 결혼식을 치르는 병판대감(송영창)의 집에 쳐들어 가 한판 전쟁을 치르는 장면이다. 명분과 이해를 달리하는 두 집단, 세력, 가문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숙명적인 대결을 벌인다. 이미 첫 만남에서부터 사랑에 빠진 남순과 슬픈 눈은 차라리 제가 죽고 싶은 심정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논리에 따라 서로에게 칼을 겨눠야 한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엄혹한 논리, 스크럼을 짠 양측 병사들이 팽팽히 대치하는 그 사이로 흰 눈이 펑펑 쏟아진다. 1백 명의 보조 출연자가 동원된 '배틀 장면'의 압권은 정수리에서 카메라를 들이댄 극부감 장면이다. 이명세의 클라이맥스 신 설계는 이랬다. '안 포교가 이끄는 포도청 부대가 ‘회오리 모양으로’ 병판 집을 포위하고 병판 집의 그림자 부대가 ‘파도처럼’ 담을 넘어 온다. 1백 명이 넘는 검은 옷의 병사들이 찌르고 베면서 싸우는 게 아니라 군무처럼 질서 정연하게 대결을 펼치고 군무가 끝난 후 안 포교와 병판대감의 2인무가 뒤를 잇는다.' 사생결단의 혈투지만 피는 거의 보이지 않고, 조직적인 움직임 위로 꽃잎처럼 눈송이만 흩날리는 광경이 그가 원한 그림이었다.


아마도 배틀 장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대결은 안 포교와 병판대감의 물리적인 대결이나 검은 밤과 하얀 눈이 빚어내는 시각적인 대결이 아니라 소리와 그림의 대결일 것이다. 여기서는 공간의 느낌과 무드가 모든 걸 결정한다. 대사가 거의 없이 거친 숨소리와 눈 내리는 소리만이 정중동의 긴박한 호흡을 만들어가는 사이 음악은 어떻게 회오리처럼 다가와 파도처럼 흩어질 것인가. '사극에 웬 팝송?'이라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홀리데이’ 같은 기막힌 선곡을 계획했던 조성우 음악감독은 감독과의 수 차례 토론 끝에 선곡을 포기하고 스코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조성우의 선곡 또한 멜로디 라인이 빼어난 것으로 ‘달콤한 액션’이라고 명명한 이명세의 액션에 어떤 힘을 실어줄 것인지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다. 다만 이명세는 “<형사>의 사운드은 대사, 음향, 음악의 구분이 무색한 새로운 접근의 영화 사운드”라고 밝히고 있어 ‘처마 끝에 맺힌 비정한 가야금 산조’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충무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이명세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국내외적 성공 이후 내놓는 <형사>는 난데없는 만화 원작, 선입견을 주는 <다모> 배우 재기용, 한국영화 장르의 블랙홀 사극에 던지는 도전장이라는 겹겹의 의구심을 죄 무위로 돌리고, 그저 '이명세의 일곱 번째 영화'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여기에는 첫 번째에서 여섯 번째까지의 이명세가 고스란히 있을 것이며, 그 모두를 뛰어넘으려고 한 일곱 번째 서명이 담겨 있을 것이다. 삼복 더위에 후끈한 녹음실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한국영화계의 국보급 장인 이명세는 “태초에 혼돈이 있었지만 혼돈에 일곱 구멍을 뚫었더니 세상이 태어났다”는 장자의 말을 남겼다. 이명세의 일곱 번째 구멍이 곧 뚫린다.

장병원, 한승희 기자



ㅠㅠㅠㅠㅠ이사하면서 없어진 필름 2.0.ㅜㅜ 그래도 내용 볼 수 있어서 다행임

기억이 어렴풋이 나니까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신난닼ㅋㅋㅋㅋㅋㅋ

필모 보다보면 낯익은 분들 생기는데 전문식 무술감독님 의형제도 하셔서 이제는 이름이 익숙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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