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어머니가 사시는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이 강변에 걸터앉는다.
마침 석양이 산에 가려질 무렵이여서, 하늘은 자주빛을 띠고 있었다.
봄을 잊고 여름을 예감케 하는 듯한 바람의 향에 기분좋게도 감상적이 되어버렸다.
머지않아 어두워질 강둔치를, 저 멀리서 자전거의 작은 등이 이쪽을 향해 오는 것을 보고, 지나치겠지 라면서 무심히 경치속으로 빠져들었다.
빛이 가까워오자 남녀 두사람이 탔다는 걸 깨달았다. 진부하잖아, 라며 마음속으로 웃어버리지만,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분명했다.
나는 일어서서, 바지에 묻은 모래를 털며, 손을 두 번 팡팡 울리고는, 자전거가 가버린 방향과 반대쪽으로 걸어가며, 마치 어제의 일과 같이 그녀를 떠올렸다.
소학교의 졸업식
벚꽃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눈부셔서 눈을 가늘게 뜨게 되는 계절. 체육관에서 있었던 졸업식 후, 소학교 뒷편에 있던 신사에 반별로 정렬해서 선생님의 마지막 말을 신호로 힘들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즐거운 추억으로 변한 육년간을 끝마쳤다.
훌쩍이는 소리가 바로 옆반 줄에서 들려온다.
몸집이 작은 한 여자아이를 둘러싼 서너명의 친한 친구들이 울고 있었다.
3학년까지 같은 반으로 신경이 쓰였던, 아니, 좋아했던 아이다.
반에서도 그다지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고, 친한 아이도 있었겠지만 자주 교실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던 것을, 문득 깨달으면 나는 떨어진 곳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신경이 쓰였다고 해도, 그렇게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학교에 가는 것이 즐거웠었다.
다만, 나는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사건은 갑자기 터졌다.
3학년 가을의 점심시간, 나는 언제나처럼 멍하니 그녀를 시선으로 비추고 있었다. 그러자 책상 앞에 뒷얘길 좋아하는 여자아이콤비가 나타났다.
마르고, 치켜진 눈매에 입술이 가는 아이와 조금 통통한 경단코를 한 아이. 마른쪽이 앞자리의 의자를 뒤로 돌려 앉고서는 나를 향해 치켜뜬 눈을 번뜩이며 이야길 꺼냈다
[저기 말야, 저얘......진짜 좋아해?]
교실 구석에서 독서를 하는 그녀에게 시선을 주면서 이야기했다.
왜인지, 뒷얘길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에게,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킨 듯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소문이 진짜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통통한 쪽이 히죽히죽 웃으면서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고는 작게 동요하는 나의 표정을 재미있어하는 듯 보이는게 싫었기 때문에 가능한 포커페이스를 가장했다.
[대답하지 않는다는 건, 틀림없이 좋아한다는 거지!]
통통한 쪽은 조그만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랄까 간단히 내 얼굴이 붉어졌다. 불그스름한 포커페이스라니..
거기서부터 언제부터 좋아했냐는 둥, 시시하니까 어울린다는 둥, 어디가 좋냐는 둥 마음없는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질문을 받으면 받을수록, 어째서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고, 어디가 좋은지 명확한 것은 어느 하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신경쓰이고 하지만, 그렇다해서 어떻게 했으면 좋은지,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조차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대화축에도 낄 수 없는 질문공세가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까- 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들은 자신들이 사랑고민을 들어주고 있다는 입장인양 터무니없는 것을 제안해왔다. 분명 미적지근한 내 태도에 파란을 일으키고 싶어한 것이겠지
고백을 도와주겠다고 말하면서, 끝내는 편지를 쓰게 만들고 나는 체육관 뒤에 있었다.
점심시간의 떠들썩함에서 떨어진 체육관 뒷편은 낙엽이 지면을 차지하고 있어 어딘지 처량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두근두근거리며 어디에선가 넘쳐오는 불안과 조그마한 기대같은 것들 사이에 세워져있었다. 실제로 서있었던 것은 체육관 뒤편이었지만..
심호흡을 두 번, 떨리는 호흡을 해도 쓸데없이 긴장만 됐다.
잠시 후, 여자아이 두명이 데려온 작은 체구의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왓다.
[자, 얼른!]
두 여자아이는 나에게 편지를 건네주라고 독촉해왔다.
빨개진 얼굴로 발도 옮길 수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그녀조차 바라볼 수 없다.
수선을 떠는 두 여자아이에게는 움직임마저 멈춰버린 내 기분따윈 모르겠지.
오른쪽 뒷주머니에 꽂힌 편지를 어떻게든 잡고 좋아함 중독으로 떨림이 멈추지 않는 손으로 겨우 앞으로 내밀었을 때에는 정말 잠깐 차로, 그녀는 발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두 여자아이도 그녀를 쫒아서 가버렸다.
억지로 써버린 편지이긴 했지만 진심의 마음을 담았다. 하지만, 그녀가 가버린 후에는 전부 거짓말처럼 생각되어 소각로에 찢어서 던지곤 직접 태워버렸다.
물론, 그 이후로 거북해져서 그녀와 얼굴을 마주할 일고 없이 내 첫사랑은 막을 내렸다.
억지로 내 안에 없던 일로 하고 싶었다. 그리고 4학년부터는 다른 반이 되어버려 그런 일조차도 잊혀져버렸다.
그런데, 눈앞에서 여자아이들 가운데서 흐느끼는 그녀를 보고 기분이 되돌아갈 듯해버렸다. 그래도 다시 좋아지려고 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누르려고 하는 자신도 있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고 여기서 다시 좋아해버린다고 해도 그 일로 분명 미움받고 있을테니,
하아. 사랑을 하면 어째서 이렇게도 겁쟁이가 되는 것일까.
하지만 머리속 어딘가에선 중학교때 또다시, 같은 반이 됐으면 좋겠다 라며 두근거리고 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 방학은, 길게 느껴졌다. 그녀에 대한 것이 왠지 신경쓰였기에 빨리 만나고 싶은 거구나, 라 생각한다.
새 교복, 새 신발에, 떨어진 벚꽃잎을 밟으며 하는 입학식.
조금 땀이 날 정도의 더위도 기분이 좋다. 그녀와 만날 수 있으니까.
입학식의 체육관은 새로운 공기와 익숙치 않은 기쁨이 가득 차 흐르는 듯 했다.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는 동급생이나, 졸업식때에 그녀를 둘러싸고 떠들썩 울고있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왜인지, 반편성표에도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직장 관계로 갑자기 근처 마을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래서 졸업식 후 함께 울고 있었구나- 하고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숨을 다시 불어넣은 사랑의 맥박은 경동맥부터 잘려나갔다.
하지만, 내 안에서 멋대로 키운 기대였으니, 새로운 중학생활에 들어서자 일상에 섞여 아무것도 아닌 기억이 되어있었다.
중학교 2학년의 여름. 나에게는 서로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다. 같은 육상부의 아이. 1학년때는 한번도 말해본 적 없는 아이였는데 육상기록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고민상담을 받아서 그 후로 왠지 함께 있게 된 것이다.
매일 만나는 동안 점점 사이가 좋아졌고 내 나름대로 상대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이야기가 통했고 나는 그 아이와 있는 것이 마음 편했다. 그 아이쪽도 내가 점점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겠지.
지금 생각하면 이 때의 연애는 애매해서 사귄다는 의미도 모르고 서로 좋아한다는 정도로 연애를 하고 있었다 생각한다.
여름의 일이었다. 마을 축제에 그 아이와, 항상 어울리는 반친구 너댓명과 가게 되었다.
축제 중에는 보행자 천국이라 평소 자동차로 점령되어있는 차도의 한가운데를 걷는 건 쾌감이다-. 라고 이야기하다가 그 아이와 문득 손이 닿아서 두근거리며 무심코 손을 잡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서로 얼굴을 붉혔지만 기쁘기도 했고, 부끄러움을 감추려 나는 손을 잡은 채 부웅부웅 앞으로 뒤로 흔들며 가볍게 걸었다. 깨달으니 반친구들과 떨어져 우리들은 둘만이 되었다.
땀이 어린 손을 그 아이는 부끄러워하며 치마에 문지르고는 [땀이 나서..] 라며 웃었다. [나도 그래]라며, 감싸주었지만 정말로 그랬으니까 자연스런 일이었다.
한순간 주위의 인파를 잊었다.
[있다, 있어. 어- 있! ]
뒤에서, 없어졌다고 생각한 반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후끈후끈하잖아]
남자아이들이 놀려댔다. 여자아이들은 그녀에게 [이상한 일 당하지 않았어?] 라며 농담을 건네서, 다시 분위기가 즐거워졌다.
우리들은 다시 손을 잡고 걸어갔다.
어느샌가 그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동작이 되었다. 그 아이는, 살짝 나를 올려다보고 조금 부끄러워하며 기쁜 듯 볼을 붉혔다. 또, 손바닥에 조금 땀이 난 기분이 들었지만 더욱 세게 손을 쥐었다.
나는, 일부러 그 아이에게서 눈을 돌리고 다음 어디로 갈까 하고 선두를 끊어 그 아이의 손을 끌었다.
분명 나는, 즐거운 중학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자, 포장마차가 이어져 있는 쪽에서 왁자지껄 여자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우리쪽 반친구 중에서 여자아이들이 꺄아- 소리를 지르며 왁자지껄한 소리를 낸 집합으로 끼어들었다.
그 집합의 가운데에 있던 것은 예전 그녀였다.
맞잡은 손이 순간 느슨해졌다. 땀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유카타 차림에 머리를 틀어올리고 있어 어딘가 여성스런 어른다운 매력을 느끼게 했다. 남자친구라도 생긴걸까.
내 옆에 있던 여자아이는 한순간 무언갈 느끼고는 손을 꼭 쥐고 울듯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소학교 뒤쪽에 있는 신사에 나의 손을 급히 끌었다.
나는 손을 잡고 있는 여자아이의 앞에 있었지만 의식은 다른 장소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파에서 벗어났을 터인데 왜인지 가슴언저리가 답답해져 견딜 수 없었다.
저신을 차려보니 눈 앞의 여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미안.... ]
죄의식으로 그 아이를 끌어안았지만 내기분은 어딘가 건성, 그 아이는 세게 나를 밀치고는 [가버리면 되잖아, 사과같은 거 필요없어!]
그 말을 겨우하고 눈물을 닦으면서 축제와는 반대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쫓아가려 했지만 쫓아가서 어떤 말을 해야 좋을런지 생각이 나지 않는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와글와글대는 축제에 돌아가고싶은 마음 들지 않아, 목적지도 없이 평소 가지 않는 길을 그저 오로지 내가 어떻게 하고 싶었는가도 정리하지 못한 채, 얼이 빠친 채 멍하니 걷고 있었다.
강둔치에 나왔다.
달이 물속에 흔들리고 있다.
방울벌레과 개구리가 울고, 때때로 강내음이 기분좋은 바람에 실려와 내 볼을 어루만진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아까 그 곳과는 다른 세상인 듯 조용한 여름에 잠시 몸을 맡기기로 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달이 구름에 가려 주변에 옅은 어둠이 깔린 때, 멀리서 하나의 그림자가 둔치를 걸어오고 있다.
그 그림자는 조금씩 강가에 내려와 내가 있는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웅크려 앉았다.
어디선가 들렸던, 그 그리운, 나를 몇번이고 두근거리게 했던, 그 훌쩍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울고 있었다.
겨우 진정되었을 마음이, 새롭게 뛰기 시작했다. 내 가슴의 조금 왼편을, 안쪽에 있는 또 하나의 내가 몇번이고 몇번이고 두드리고 있는 양. 심박수가 한번에 올라갔다. 몸 전체에 피가 돌아 살짝 올라간 듯한 감각에 빠진 채로. 바로 곁에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그녀의 뺨을 비췄다.
그 옆얼굴에 시간이 멈춤을 느꼈다.
얘기가 하고싶어.
왜 울고 있는거야.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계기가 뭐든 상관없다. 사랑을 하고 싶다면 그 기분을 소중히 여겨, 솔직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녀의 젖은 눈동자에 처음으로 내가 비쳤다.
2008년도 논노
단편연애소설 [심동]
작가 : 마루야마 류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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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ㅊ 초록창팬카페 칸쟈니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