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한껏 들떠 있는 분위기다. 2001년 이후 과학분야에서만 16명 배출. 3년 연속 배출. 일본 과학계의 쾌거라며 언론도 연일 도쿄공업대 오스미 교수의 노벨의학생리학상 수상을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 5일 일본의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풍요 속의 빈곤, 기초 과학계의 체질이 약해지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아사히 신문은 오스미 교수가 노벨상 상금(약 1억 엔)을 젊은 연구자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상금을 종잣돈으로 해 기업에 협력을 구해서 적어도 20∼30년간 젊은 학자에게 장학금이나 연구비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일본에서도 사회 전체가 대학을 지탱한다는 인식이 확산하지 않으면 과학자가 자랄 수 없다"는 노벨상 수상자의 말은 일본 사회에서 과학 연구 지원에 대한 자성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1년 이후 16명의 노벨 과학분야 수상자를 배출해, 미국에 이어 2번째 규모의 수상자를 가진 일본이지만, 수상을 이끈 연구 성과들이 대부분 10~30년 전의 것, 즉 '과거의 유산'이라는 게 일본의 고민이다.
노벨상을 많이 탔다고는 하나 우리와 마찬가지로 산업과의 연관성을 중시해 성과 나는 쪽에 지원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최근 일본도 마찬가지. 일본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를 보면 1949년 소립자물리학 분야에서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은 이후 그 관련 분야에서만 7명을 배출했다. 하지만 소립자물리학은 대표적인 순수기초과학으로 산업과는 관련 없는 분야라는 게 일본 과학계의 설명이다. 바꿔말하면 아예 산업적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기초 과학에서 가장 많은 수상자가 나온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 정부가 성과를 낼 수 있을 만한 연구에 자금을 중점 배분하면서, 국립대학에 연구비 등을 포함한 운영비 지원이 2014년 기준으로 10년 전보다 10% 정도 줄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노벨상 다수 배출 국가인 일본에서조차 기초 과학 분야 약화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젊은 연구자들의 감소. 오스미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요즘은 정신적으로 가장 가난한 시기인 듯하다"며 "후배들이 박사 과정까지 밟으려고 결의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구실을 지탱하는 박사과정의 학생 수가 줄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를 내지 못할까?'라고 부러워하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나라가 시끄럽다. 기초과학분야에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데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도 못 내는 과학분야라며, 예산은 얼마를 쏟아부었는데 어디로 갔나며, 복지부동의 과학자들이라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정책을 결정하지 말고 확실하게 준비해 백년대계를 세울 때다. 노벨상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과학 정책 방향도 중요하다.
이승철기자 (neost@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