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모리 아키나의 가수로서의 원점은 어머니 치에코이다. 워너의 제작 디렉터 시마다 유조는, 아키나와 모친과의 관계가, 2인 3각으로 가수의 길을 나아간 미소라 히바리와 어머니와의 관계에 겹쳐 보였다고 한다.
아키나의 어머니, 치에코는 19세 때에 미소라 히바리를 동경해, 가수를 목표로 카고시마에서 상경. 호스티스 겸 가수로서 일했던 신주쿠, 카부키쵸의 캬바레에서 아키오와 알게 되어, 21세에 결혼했다. 두 사람은 6명의 아이를 낳아, 살림살이는 결코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치에코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단념한 가수의 꿈을 딸들에게 맡기기 위해, 집에 피아노를 사고 발레를 배우게 했다. 아키나도 역시,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가수를 목표로 하고, 스타탄을 향한 도전을 이어갔던 것이다. ('문예춘추' 2021년 9월호로부터, 전 2회의 2회째/전편에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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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가족과 이어지는 생명선
아버지 아키오가, 치에코에 대해 이야기한다.
"집사람은,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고 너무 기뻐했어요. 켄온의 노자키 씨나 하나미 씨도 자택에 곧잘 와 주었고, 요리가 특기였던 집사람은 고향인 카고시마의 요리나 여러가지 것을 만들어 대접했습니다.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에 때로는 테이프 레코드에 스스로 노래를 취입해, 들려주는 일도 있었어요."
아키나에게 있어 노래는, 가족과 자신을 이어주는 생명선이기도 했다.
워너의 방악선전과에 있었던 토미오카 노부오는, 프로덕션용의 기초자료로서 아키나가 써주었던 프로필에 눈을 멈추었다. 거기에는 그녀가 어린 시절, 신체가 약하고, 병치레가 잦았던 것이 철되어 있었다.
"형제자매 중에서 혼자만 아프고 어머니를 독점한 부채감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느꼈습니다. 어쨌든 노래로 가족에게도 존재감을 나타내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의 워너는 아키나에게 1억엔에 달하는 이례적인 선전비를 걸고, 데뷔 전부터 적극적인 매출을 꾀했다.
"아키나 담당이었던 저는, 그녀에게 지방의 텔레비전 방송국이나 라디오국을 돌게 했습니다. 엔카의 '영업 돌기' 방식으로, 먼저 이름과 얼굴만 외우게 하려고 했어요. 아키나를 데리고 NHK 오디션을 받으러 갔을 때, 그녀가 회장실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에게까지 머리를 숙이고 인사하는 것을 보고, 그 필사적임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전출, 토미오카 노부오)
"엄하게 화를 내니, 울면서도 참고 있었습니다"
한편 아키나는, 82년 2월에 예정되어있던 레코딩을 향해, 보이스 트레이너 오오모토 타카히로의 밑에서 노래의 레슨을 거듭했다.
에비스의 높은 지대에 있는 오오모토의 자택 맨션. 4첩반에 피아노가 놓여있을 뿐인 방에서, 아키나는 매일 같이 1회 30분에서 1시간이 조금 안 되는 레슨을 받았다. 오오모토가 술회한다.
"당시는 레코드 회사의 의향으로, 야마구치 모모에의 악곡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짰어요. 다만 그걸로는 어떻게 해도 소리를 내는 방법이나 노래법이 모모에를 흉내내고 만다. 그 버릇을 철저하게 배제하기 위해, 모모에의 노래는 될 수 있는 한 레슨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아키나에게는 '자신의 강점을 드러내라. 노래를 좀 더 밀어내'라고 반복해서 말했어요. 엄하게 화를 내면, 울면서도 참고 있었습니다. 레슨을 거듭하는 사이, 그녀는 한개 음을 퐁하고 내면, 밑에서 퍼올린 비브라토를 걸어, 왓하고 꽃이 피는 듯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그녀의 오리지널리티가 된 거예요."
"포스트 모모에"를 의식했다.
문제는, 그 가창력을 살리는 데뷔곡이었다. 하지만, 라이벌과는 다른 독자노선. 당초부터 '포스트 모모에'를 의식했던 워너는, 결과적으로 모모에의 앨범에도 악곡제공을 했던 키스기 에츠코, 키스기 타카오의 남매 콤비를 특별히 뽑았다.
81년 12월 공개의 영화 「세라복과 기관총」에서, 두 사람이 담당한 주제가를 주연인 야쿠시마루 히로코가 불러, 한창 히트시키고 있었다. 디렉터인 시마다는, 키스기 타카오가 음악 방송에 출연해, 그 곡의 오리지널 버전을 피아노 반주로 노래하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고 한다.
"키스기가 아키나를 위해 쓴 3곡은, 어느 것도 그의 특기인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의 명곡이었다. 시마다는 다른 제작자에게도 악곡을 의뢰해, 앨범용의 10곡을 갖추었다. 거기에서 데뷔곡으로 뽑힌 것이, 키스기의 「슬로 모션」이었다. 선전 담당이었던 토미오카가 회상한다.
"4월부터 '아키나 신문'이라는 일러스트 넣은 전단지를 만들어 레코드점이나 매스컴에 보내, 본격적인 캠페인에 들어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슬로 모션」은 오리콘 차트 최고 순위 30위로, 약 17만장의 매상이었다. 나름대로의 반응도 있고 선전 담당으로서는 데뷔곡과 같은 노선으로, 키스기 씨가 쓴 「당신의 포트레이트」가 제2탄 싱글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의 아이돌은, 싱글 신곡이 3개월 사이클, 앨범은 년 2장의 발매가 정석 패턴이었다. 제작자는 항상 새로운 악곡을 찾았다.
"나카모리 아키나라는 신인 아이돌이 데뷔하고, 지금 앨범 제작준비중입니다. 곡을 모으고 있으니까, 써 보면 어떨까요?"
그 즈음, 아직 신출내기였던 우리노 마사오는, 어떤 뮤지션의 매니저로부터, 이런 일의 의뢰를 받았다. 카피라이터에서 작사가로 전직한 우리노라가, 체커즈의 일련의 히트곡으로 일약 인기인의 무리에 들어가게 되는 '전야'의 이야기다.
당시의 그는, 아직 아이돌에게 악곡을 제공했던 적이 없고, 어느 쪽이냐고 하면 어른이 할 일은 아니라고 경멸에 가까운 감정을 안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는 말해도 쓰는 법도 몰랐고, 마감도 다가온다. 재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와다 켄지에게 써서 탈락이 된 1곡 뿐. 남성이 해변가에서 10대의 여자아이를 꼬시려 한다는 설정의 「롤리타」라는 곡이었습니다. 나는 이 시점을 역으로 돌려, 주인공을 바꾸고, 여성의 시점에서라면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순간적으로 번뜩였어요."
소녀A의 "곡은 떨어졌지만, 가사는 붙었다"
우리노의 작사 스타일의 기본은, 우선 타이틀을 결정하고, 전체상을 잡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번에는, 아이돌이 불러도 나쁘지 않는 것으로, 듣는 사람을 놀래키며, 반사회성이 있는 것.... 머리에 떠오른 것은, 미성년 범죄자를 나타내는 "소녀A"라는 타이틀이었다.
"다음은 가사의 세계에 알맞은 말을 어떻게 고를 것인가. 노래책을 보고 연구했지만, 참고가 되지 않았어요. 다만, 유일, 아키 요코 씨가 야마구치 모모에에게 써 준 가사는, 골격이 확실하게 잡혀 있고, 어휘 선택의 센스에 뛰어난 재능을 느꼈다. 날카로운 기세의 강한 대사가 반드시 하나는 들어가고, 그것이 캐치한 후렴이 된다. 그 방법론을 참고로 가사를 썼습니다."
우리노의 가사에는, 상냥한 인상의 곡이 붙어, 「소녀A」는 일단 완성되었다. 하지만 워너 측은 불채용이 되어, 이 곡이 빛을 보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1주일 후, "곡은 떨어졌습니다만, 가사는 남았다"라는 연락이 있어, 다시 프로젝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가 타, 애가 타" 비화
그 후, 우리노와 같은 사무소에 있던 3살 연상의 작곡가, 세리자와 히로아키의 재고 곡이 후보로서 리스트업 되었다. 두 사람은 후에 히트를 연발하는 명콤비가 되지만, 이 시점에서는 면식조차 없었다.
"우선 워너의 담당 디렉터였던 시마다 씨에게 나와 매니저가 불려갔습니다. 아티스트 룸이라는 호화로운 스테레오 세트가 있는 방에서, 후보가 된 3곡을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것이나 마이너한 8비트였지만, 그 중에서 하나만 가사가 붙어있는 「샤갈의 그림」이라는 곡이 좋다, 라는 것으로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우리노는 시마다에게서, 가장 처음에 쓴 「소녀A」의 가사를, 이 곡으로 바꾸어 싣도록 의뢰받았다. 본래라면 곤란한 작업이지만, 2개의 가사는 구조가 비슷해서 기적적으로 잘 이행할 수 있다고 한다.
"「샤갈의 그림」은 작사의 전문가가 아닌 만화가가 쓴 가사로, 곡 첫머리의 A멜로가, 보통은 8소절인데, 32소절이나 되어 길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의 「소녀A」도 똑같아서, 요컨대 2개 모두 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쓴 가사였다는 거죠. 반대로 그 덕분에 미세조정만으로 거의 그대로 바꾸어 옮길 수 있었습니다. 다만, 내 안에서 가장 마음이 걸리던 것이 사비의 부분. 맨처음은 "저기 당신, 저기 당신"이라고 이어졌지만, 보다 강하게 "애가 타, 애가 타"로 바꾸었더니 보기좋게 꼭 맞았어요."

"싫어! 절대 안 부르고 싶어!"
아키나의 데뷔로부터 약간 시간이 경과한 5개월 반, 당시 켄온에서 아키나의 매니저를 맡고 있던 츠노즈 토쿠고로는, 평소보다 빨리 눈을 떠, 1시간 정도 일찍 집을 나섰다. 아키나의 다음 싱글의 일도 있어, 시마다를 만나러 워너에 들렀던 것이다. 시마다는 아직 출근하기 전으로, 데스크 위에는 두꺼운 매직으로 "소녀A"라고 쓰여진 종이가 있었다. 그 밑에 특징적인 문자로 가사가 적혀있고, '우리노 마사오'라고 써 있었다.
"아키나의 곡이라고 딱 감이 왔습니다. 시마다에게서 데모 테이프를 들으니, 이게 엄청 좋았다. '먹히겠다 이거. 바로 레코딩하자'라고 제안했습니다."
시마다에게 있어서도 「소녀A」는 자신작이었다. 그리고 「소녀A」는 세컨드 싱글로 채용하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레코딩 바로 전, 사건이 일어났다.
"싫어! 절대로 안 부르고 싶어!"
아키나 본인이, 격렬하게 울부짖으며 이 노래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 고함은, 그녀가 표현자로서 다시 태어나는 갓난아기의 울음이기도 했다.
글 / 니시자키 노부히코
문예춘추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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