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노키즈존' 도입을 요구할, 그리고 반대할 권리도 없다
로톡뉴스 박선우 기자
sw.park@lawtalknews.co.kr
2019년 11월 29일 11시 33분 작성
겨울왕국 2 개봉으로 다시 뜨거운 감자 된 '노키즈존'⋯ 법적 쟁점 확인해보니
[겨울왕국 2로 시작된 '노키즈존' 도입 논란]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가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4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겨울왕국 2'의 폭발적인 흥행과 함께 노키즈존(No Kids Zone) 논란이 뜨겁다. "아이들 없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도입 지지 의견과 "노키즈존은 차별 정책"이라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양쪽 모두 법적 근거가 있다. 도입 측은 "내 돈 주고 보는 영화인 만큼 온전한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고, 반대 측은 "그렇게 되면 헌법상 평등권이 침해된다"고 말한다.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노키즈존 설치를 둘러싸고 실력 행사를 예고하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 만일 노키즈존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영화관에 소음 배상 요구를 할 것'이라는 주장에서부터, 반대로 노키즈존이 만들어진다면 '아이들을 배제했으니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이 말대로 소송이 가능한지 변호사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사안을 검토한 변호사들은 의외의 답을 했다. "찬반 주장 모두 법적 관점에서 타당성이 없다"고 했다. 왜 그런 걸까?
"노키즈존 도입하라"고 영화관에 요구할 수 없는 이유
영화를 보는 행위는 법적으로 '관객과 영화관이 맺은 계약'이다. 영화관은 영화를 상영해주고, 관객은 푯값을 지불한다. 이 계약 안에서 영화관이 '영화를 보는 아이들 소음을 방지할 의무'가 있는 걸까. 만일 그렇다면 노키즈존 도입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서울종합법무법인의 서명기 변호사는 "영화관이 아이들 소음을 방지할 의무까지는 없다"고 했다. "'겨울왕국 2'처럼 전체관람가인 영화의 경우 관객들은 아이들이 함께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아이가 소음을 발생시켰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민법이 인정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불법행위가 없다면 그걸 바탕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불가능하다.
"노키즈존 도입하지 마라"고 영화관에 요구할 수 없는 이유
반대로 노키즈존이 도입될 경우, 배제된 사람들은 법적으로 구제를 받을 수단이 있을까. 마찬가지로 이것 또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노키즈존이 손해배상 책임을 발생시키지 않아서다. 우리 민법은 ①계약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와 ②불법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손해배상을 인정한다. 서명기 변호사는 "노키즈존은 이 중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① 표를 예매할 수 없다 =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영화관이 노키즈존을 도입했을 경우, 아이들 혹은 아이들을 동반한 부모들은 해당 영화표를 예매할 수 없다. 계약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계약이 체결되지 않는다면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손해배상 역시 성립할 수 없다.
② 불법행위가 있어야 손해배상 책임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 하지만 서 변호사는 "판매자(영화관)는 '영업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업의 자유'에는 (판매) 상대방을 선택할 자유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차별 행위'로 인정했지만…변호사들은 "막을 근거 없다"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아동을 동반한 손님의 출입을 금지한 음식점에 대해 "차별 행위"라고 판단했다. 당시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아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사업주들이 누리는 영업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 밝혔다
이런 결정이 있었는데도 변호사들이 '법적으로는 노키즈존 도입을 막을 권리가 없다'는 건 왜일까.
인권위 결정은 아동인권 보장의 차원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밝힌 것에 가깝지만, 헌법재판소는 상대적 평등, 즉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법 원리를 기준으로 차별의 합리적 이유가 있는 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결국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차별행위는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키즈존 자체는 차별 행위가 맞지만, 미취학 아동의 경우 인식과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제재하는 행위를 합리적인 조치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서명기 변호사는 "미취학 아동의 인식능력과 행위능력은 취학 아동(7세이상 초등학생)과 비교해도 현격한 차이가 난다"며 "자기를 통제할 능력이 없는 미취학 아동에 대한 출입금지 조치(노키즈존)는 이런 능력 등에 바탕을 둔 '근거 있는 차별'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노키즈존이 자체는 차별이 맞지만, 미취학 아동은 인식과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에 합리적인 조치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노키즈존(No Kids Zone), 결국 영화관이 결정할 일
결국 노키즈존 도입 여부는 고객이 아닌 영화관이 결정할 사안이다.
서명기 변호사는 "판매자가 일정 나이에 이르지 못한 아동들과의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것은 판매자의 영업 자유권에 속하는 본질적인 부분"이라며 "영업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되어야 하므로 판매자는 구매할 사람을 선택해 판매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자유의 보장과 자유시장경제주의 원칙에 합치되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는 운전자 보험계약에 있어 나이를 기준으로 보험료 납입금액이 달라지는 경우와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김동완 변호사 법률사무소'의 김동완 변호사도 "노키즈존 도입 반대 논리는 헌법상 평등권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노키즈존 찬성의 논리 역시 헌법상 영업의 자유에 기초한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라면서도 "(양측 모두) 무한정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일정한 요건하에 제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