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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망할 듯 망하지 않는 얄궃은 인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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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3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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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wIQ
소심이의 소심한 생활
망할 듯 망하지 않는 얄궂은 인생에 대하여
이러다간 무너진 일상을 영영 회복하지 못할 것 같아 문득 무서워졌다.

2018 . 05 . 24
LtpPn
다른 사람들은 언제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나의 경우 일상이 단정할 때 잘 살고 있다고 느낀다. 일과를 마치고 일곱 시쯤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간단히 챙겨 먹고 나면 대략 여덟 시. 샤워를 하고 음악을 고른다. 보송한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일기를 쓰고, 갓 업로드된 웹툰을 챙겨 본 후, 스르륵 잠드는 걸로 하루를 마치면, ‘어쭈? 내 인생 좀 살 만해졌는데?’싶다. 써 놓고 보니 괜히 새삼스럽다. 내 삶을 지탱하는 건 되게 사소한 것들이었구나.

따지고 보면 사소한데 그걸 사수하기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조금만 바빠져도 집부터 더러워진다. 그때부터 악순환 시작이다.집 꼴을 보면 청소할 의욕이 나지 않고, 치우질 않으니 점점 엉망이 된다. 옛말에 깨끗한 집에 맑은 정신이 깃든다고(방금 지어낸 말이다), 집이 엉망이 되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에 정신까지 엉망이 된다.

밤 열한 시 넘어 집에 왔는데, 갈아입을 속옷이 없고, 냉장고엔 액체 되기 직전인 가지(무서워…)가 있고, 방바닥에는 머리카락과 먼지가 크루를 이뤄 굴러다닐 때. 이부자리 정리할 기운조차 없어서 헝클어진 시트 위에 대충 구겨져 누웠을 때. ‘이것은 인생이 아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365일 중 300일쯤을 그 상태로 산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전쟁터 같은 집 한가운데 앉아 있다.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심란하다. 내일도 모레도 바쁠 예정이다. 대체 언제 여유가 생겨 집을 말끔하게 치울 수 있을 것인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 사는 걸까.

몇 주 전, 마찬가지로 밤늦게 귀가한 날이었다. “그거 알아? 우리나라 사람들만 이러고 산대. 스페인에 있는 구멍가게는 11시쯤 느지막이 열어서 한 시간 일하고 점심 먹고, 조금 있다가 또 낮잠 자고 그런대. 거긴 시에스타가 있으니까. 그렇게 쉬엄쉬엄 일하다가 대충 문 닫고 저녁은 가족들이랑 보낸다 하대?” 어디서 주워들은 선진국의 사례를 읊으며 시답잖은 농담을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유독 지친 밤이었다.

화장도 지우지 않고 패배자처럼 늘어져 있는데 얼마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화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데친 시금치처럼 축 처져 있었다. 꽃집 사장님이 물을 좋아하는 아이니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챙겨주라고 신신당부하셨던 그 녀석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시든 식물에 감정이입을 했다. 쓰레기통 같은 집에서 폐인이 되어 나뒹구는 내 모습이 데친 시금치와 오버랩되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이러다간 무너진 일상을 영영 회복하지 못할 것 같아 문득 무서워졌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우선순위를 바꿨다. 원래는 부족한 자료를 조금 더 찾아본 후 잘 계획이었으나,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닌 듯했다. 일단 식물에 물을 줬다. 아무래도 가망이 없어 보였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으므로. 그다음, 이불을 반듯하게 폈다. 침대 정리만 했을 뿐인데 방도 기분도 한결 말끔해졌다.

그에 용기를 얻어 싱크대 앞에 섰다. 자세히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가관이었다. 말라붙은 음식물 찌꺼기와 하나가 된 접시, 곰팡이가 핀 국그릇. ‘과연 이게 씻길까’ 싶었다. ‘안 되면 버리지 뭐’ 하는 심정으로 반쯤 포기한 채 수세미를 가져다 댔는데… 어? 의외로 쉽게 닦였다. 기름 묻은 프라이팬도, 커피가 말라붙은 컵도 쓱쓱 문지르니 금세 깨끗해졌다.

복구 과정이 생각보다 순탄하자 나는 신이 났고 기세를 몰아 냉장고를 비우고 걸레질까지 했다. 그 결과 불과 두 시간 만에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다시 살아나지 못할 줄 알았던 식물도 언제 그랬냐는 듯 생생해졌다. 폭발 직전의 마음도 어느새 진정되어 있었다.

그날 예정보다 두 시간 늦게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서 내가 조금 달라졌다는 걸 알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과 ‘일상을 지탱하는 근육을 단련해야 한다’는 말을 내 방식으로 소화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그때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과동기가 뜬근없이 떠올랐다. 어떤 상황에서건 정갈함을 잃지 않는 애였다. 전날 도서관에서 같이 밤을 새고 나서도, 다음 날 빳빳하게 다린 셔츠를 입고 나타나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그도 오늘의 나처럼 자신만의 요령을 하나하나 터득해가며 씩씩해진 거였을까. 잠이 쏟아지는 와중에 오늘 살려낸 식물과 오래 함께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어렴풋하게 들었다.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주는 주문
쉽게 망가진 것은 쉽게 복구되기도 합니다
[852호 – small mind]
illustrator l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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