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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나를 움직이는 순간들 -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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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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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란 타인의 삶을 통과하며 기쁨의 순간과 고통의 순간이 끊임없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이병헌 연기의 동력은 이 순간들에 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끝난 후 연이어 <남산의 부장들>과 <백두산> 촬영에 들어갔다. 이르면 올해 안에 두 작품을 볼 수 있겠다.

<백두산>이 생각보다 빨리 개봉할 것 같다. CG가 엄청난 영화인데, 후반 작업할 게 꽤 많은데도 작업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CG가 많이 들어간 작품은 <지.아이.조>를 제외하면 처음이다. 한국 영화 중에서 처음인 셈이다. 눈으로 모든 상황을 보면서 촬영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연기하는 장면이 어떤 식으로 채워지고 꾸며질지 확실히 인지한 상태에서 하는 게 중요하다. 상상력이 더 필요하다. 세트 촬영이 대부분이어서 자연적인 현상에 구애받지 않다 보니 수월한 점도 있다. 보통은 의외의 곳에서 예상치 못한 NG가 나오는데, 대부분 상황이 통제가 가능하다 보니 배우만 잘하면 오케이 컷이 나온다.



백두산 화산 폭발을 소재로 한 영화이니 일종의 영웅을 연기하게 되는 건가?

단편적인 영웅은 아니다. 한반도에 대재앙이 닥치고 극한의 위험을 무릅쓰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만 보면 영웅이라 할 수도 있다. <백두산>의 ‘리준평’이란 인물은 북한 사람이고 중국을 오가며 스파이 활동을 한다. 그런데 돈을 위해 남한 측에도 정보를 제공한다. 이념이 확실하거나 신념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돈을 위해 움직인다. 자기 잇속을 늘 첫 번째로 생각하는 간첩이다. 영화 촬영이 시작되고 공교롭게도 실제로 백두산이 폭발 위험이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반면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에게 모티프를 얻은 인물을 연기한다. 실존 인물이나 실존 인물에게 영향을 받은 인물을 연기할 때는 허구의 인물에 접근할 때와는 또 다를 것 같다.

아무래도 창조된 인물보다 지나간 역사 속 인물을 연기할 때 좀 더 예민하고 신중해진다. 이미 지나간 역사이기 때문에 실제 상황을 완벽히 확인할 수 없기도 하고. 그럼에도 사실에 근거해서 내가 맡은 인물에 최대한 가깝게 연기해야 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정치적인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감독이나 제작자, 그리고 나 역시 정치적 상황에만 초점을 두진 않았다. 그보다는 인간의 관계에 집중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사건만을 알고 있지만 영화는 그때 그 사람들의 감정은 어땠을까, 그들의 관계가 몇십 년 동안 어떻게 이어져왔을까, 그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으며 심리 상태는 어땠을까, 이런 질문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의 톤은 누아르에 가깝다.



얼마 전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삐딱하게 서 있는 스틸 컷이 공개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김재규’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영화속 이름이 ‘김규평’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실존 인물과 이름이 다르다. 정보부장 자리를 거쳐간 인물들이 나오는데,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는 진짜 인간이 보이는 영화가 될 거다.



지금까지 숱하게 받은 질문일 것 같다. 작품을 선택할 때마다 어떤 작품에 마음이 가는가?

결정적인 것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재미다. 그런데 재미의 기준이 굉장히 여러 형태다. 아주 상업적인 것도 재미가 될 수 있고, 어떤 한 부분에 완전히 꽂혀 그게 재미로 다가올 때도 있다. 장르, 소재와 상관없이 내 마음에 와닿는 재미가 있어야 비로소 선택한다.



요즘 부쩍 작품을 하는 속도가 빠른 것 같다. 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는 한 2년을 쉰 적도 있다. 당시에는 그게 내 소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오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영화 산업이 발전했고 시나리오 자체도 다양하고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그리고 이런 것도 있다. 내가 나를 좀 더 표현하고 더 디테일해진 감정을 잘 보여주고 표현할 수 있을 때, 내가 왜 작품을 하지 않고 쉬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세월을 의미 없이 보내는 것 같고. 할 수 있으면 더 해야지 싶다. 그런 생각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더 쉬지 않고 일했다.



지금의 속도가 괜찮나?

살짝 과한가 싶기도 하다.(웃음) 그래서 <백두산>이 끝나고는 좀 쉬고 있다.



많은 작품을 하면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관객에게 너무 익숙해져 버릴까 고민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배우라면 늘 가질 수밖에 없는 고민이다. 작품마다 새로운 인물을 보여줘야 하는데, 관객 입장에서 이 인물에 감정 이입하기까지 몇 분 몇 초가 걸릴지 당연히 고민된다. 그 시간이 짧을수록 배우는 행복하다. 저 사람만 보면 웃기거나 혹은 무섭기만 한다면 배우에게는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작품을 고를 때 새로움만 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느끼는 재미만을 따져 작품을 고르다 보니 장르도 캐릭터도 다양해졌다.



최근작만 따지면 <그것만이 내 세상>과 <싱글라이더>는 영화의 내용은 물론 외형적인 모습도 전작들과 많이 달랐다.

완전히 다른 색깔이었다. <싱글라이더> 시나리오를 봤을 땐 감동이 큰 재미였고 <그것만이 내 세상>은 조금 신파이긴 했지만 거기에서 보이는 웃음과 눈물이 재미였다.



이병헌은 늘 원 없이 연기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갈증이 있나?

언어에 대한 갈증이 있다. 정말 미국인처럼, 그들의 문화를 완벽히 이해한 상태로 마음 놓고 연기하고 싶다. 몇 년간 한두 달 터울로 계속 촬영 스케줄이 있어 외국 작품 중에 좋은 작품이 있어도 할 수가 없었다. 할리우드는 직접 가서 대면하고 이야기하는 게 중요해 그런 시간을 자주 가지려 한다.



관객은 어떤 영화를 떠올리면 배우나 연기,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영화를 봤을 때의 상황이 먼저 생각나기도 한다. 작품을 무엇으로 기억하곤 하나?

여러 상황인 것 같다. 어떤 영화는 시사회가 기억에 남는다. 또 어떤 영화는 촬영할 때가 생각나고, 관객들 사이에 숨어서 볼 때가 떠오르기도 한다. 일반 관객 사이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웃음이 크게 터지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작품을 위해 보낸 시간이 보상을 받는 것 같다.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촬영은 정말 힘들고 고생스러웠지만 바로 옆에서 관객이 웃고 울면 배우로서 행복하다. 저 사람들이 저 이야기 안에 빠져 있구나, 캐릭터에 이입되었구나, 이런 생각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문득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 경우가 있나?

그럼. 그때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더라. 한국어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싶기도 했고. 현장에서 혼이 너무 많이 나서 트라우마가 생길 것만 같았다. 내가 대사를 이렇게 쳐야 하나, 지금은 어떤 감정일까, 이런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대사를 한번 하고 나면 또 혼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첫 작품 때 하도 강하게 트레이닝을 받아서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데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웃음)



이제는 더 이상 현장에서 혼이 날 일은 없겠다.(웃음) 하지만 스스로의 연기가 마뜩잖거나 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있을 것 같다.

있다. 남들은 잘 못 느끼고 나만 느끼는 걸지도 모르는 미세한 부분일 수도 있고. 해를 더할수록 연기에 대한 답을 잘 모를 때가 많아지는 것 같다. 기술은 연습하고 시간이 쌓이면 능수능란한 선수가 될 수도 있고, 기술 한번 체득하고 나면 10년이 지나도 몸이 기술을 기억하지만 연기는 기술로 하는 게 아니다. 연기는 결국 타인의 인생을 잠깐 사는 거다. 그렇게 타인으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리가 하얘질 때가 있다. 갑자기 캐릭터가 안 보이는 거다.



그럴 때면 어떻게 답을 찾아가나?

다시 한번 객관적이 되려 한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 내가 어떤 인물인지 알겠다가도 두세 번 읽으면 인물을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으로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작가의 의도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되도록 멀찍이 떨어져서 이야기책을 읽는 느낌으로 읽어간다. 그래야 다시 인물의 이야기가 보인다. 아, 그래. 이렇게 생겼지 하며.



얼마 전 이름을 건 상영관이 오픈했다. 지금껏 배우로 살아오며 많은 상을받았고, 작품이 크게 흥행도 해봤고, 할리우드에 핸드 프린팅도 남겼다. 그런일을 이루다 보면 다음 행보를 위한 부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관이 씌어진 느낌이 든다. 그런데 배우라는 직업은 부담을 느끼고 그로 인해 굳어버리면 안 된다. 늘 자유로워야 한다. 가령 내 작품이 늘 좋은 결과만 있었는데, 다음에도 좋은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 할 텐데, 전작보다 사랑받아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 자유로울 수가없다. 내 이름을 건 상영관이 생기거나 상을 받는 일은 그냥 그 지점에서 끝내고 털어야 한다. 그 순간들에 갇혀 있으면 내가 너무 뻣뻣해지니까. 난 자유롭고 또 자유롭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면에서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운 신인 배우들에게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재기 발랄한 독립영화도 그런 힘을 줄 수 있고.

여전히 다양한영화를 보는 게 좋다. 저예산 영화인데 정말 괜찮다는 작품이 있으면 찾아 본다. 그러다 보니 독립영화도 많이 보게 되는데, 참 신선하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뭔가를 표현하면 다른 사람의 연기인데도 막 신난다. 아, 즐거움과 슬픔을 저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이러면서. 신선하고 새롭다. 그러다 내가 너무 구세대의 생각으로 굳어져가는 건 아닌지 싶을 때도 있다. 그렇게 새로운 얼굴들의 연기와 작품을 보면 풍요로워진다.



연기는 기쁨의 순간이 많은가, 고통의 순간이 많은가?

기쁨의 순간. 그래서 계속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너무 거창하게 내가 이렇게 연기해서 기쁘다기 보다는 굉장히 작은 순간들이 기쁨으로 다가온다. 촬영할 때 어느 신의 내 감정이 스스로 너무 좋으면 그날은 기분이 참 좋다. 집에 돌아와 축배를 들고 싶을 만큼. 몇 달 동안의 힘겨움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아 계속 테이크를 가고 나 자신과 타협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정말 괴롭다. 기쁨의 순간과 고통의 순간이 모여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렇게 순간이 모여 작품을 끝내고 나면 그 인물과 인물의 삶을 깊숙이 통과한 것 같다. 사람이 이럴 수 있구나, 배워나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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