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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함무라비 3화 리뷰 그 비슷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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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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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골목길의 봄날


골목길을 돌아서면 어디쯤에서..

3화 가슴털부장 사건의 쟁점은 두가지였어. 그런 사진을 보낸 것이 성희롱으로 성립될 수 있냐는 하나와 그에 따른 해고가 적절한 징계였는지를 판단하는 쟁점이 얽혀있었어. 얽힌 쟁점만큼 사건을 대하는 44부의 입장도 각자 달랐는데... 세상은 밥줄은 목숨과 같다는 생각 아래 해고를 신중하게 바라보자는 입장이고, 오름은 부장이란 위치의 힘을 이용해 인턴사원을 희롱한 사건 자체에 분개하지. 바른은 처음에는 세상의 입장에 동조하다가 오름이 초대한 시장체험학습 후 성희롱이란 측면에서 사건을 파고들었어. 이런 각자의 입장을 살펴보면.

먼저 세상. 법정에서는 원고가 자신감 넘치는 사람인 걸 알겠다며 비꼬듯 말하던 세상이 배석들에겐 잘못인지 모르고 살아온 세대, 밥줄을 끊어버리는 일 등의 표현으로 원고를 두둔하는 듯한 태도였어. 이런 태도는 원고와 비슷한 연배에서 다가오는 동질의식 때문 아닐까란 추측이 쉽게 떠올라. 그리고, 그 연배의 일상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며 세상에 대한 소소한 소개를 곁들이지. 그 소개에 따르면 통통 튀는 두 딸과 사과 한쪽도 허락 맡게 만드는 마나님을 모시고 사는 모습이야. 재밌는 건, 동질감을 일으킨 가장의 무게에 대해선 사건이 끝난 후 일상의 소소한 코믹으로 보여줬다는 것, 아파트 대출금 갚을 때까진 울릉도 따개비라며. 대신 사건이 진행중 일땐, 딸들의 말과 복장에서 불안함을 느끼고 이 선생 밥줄을 끊어놓고 싶어서 궁시렁대지. 이런 순서의 안배는 20년 경력의 판사 연륜 소개 같아. 그러니까 사건 진행 중에 자신의 가정속에서 가장의 무게를 절절하게 느끼는 세상을 보여준다는 건 자칫 원고에게 기울어진 모습으로 비쳐 부장판사답지는 않았을 거야. 그것보단 내딸들의 이야기가 되자 남의 밥줄도 쉽게 끊고 싶어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흠칫 깨닫는 모습이지. 그놈의 밥줄이 뭔지라며.

세상과 반대의 순서가 오름이야. 사건 한창 진행중에 유사한 자신의 기억을 두차례 떠올리는데 심지어 한번은 재판 중이었어. 그 모습을 세상에게 들켜서 사건과 거리를 두라는 충고를 듣고, 사건이 종결된 후엔 거리 유지에 실패했음을 인정하면서 바른에게 미안하다고 해. 거리 유지를 못한 것에 대한 사과, 즉 사건 초반 바른과 세상에게 보인 태도를 뜻하지 않을까. 성희롱의 피해자 기준은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란 바른의 지적에 큰일이다, 매우 심하게 느끼는 난 유별나서 판사의 자격이 없냐고 따지거나, 사회가 바뀌는 걸 따라잡지 못한 사람들이란 세상의 말에는 이번 생엔 따라잡으시겠냐며 비아냥 섞인 표현을 전한 태도에 대한 미안함이었을 거야. 오름의 무거운 기억을 알게 되고 스스로 인정한 후에 되돌아보면, 같은 성별과 비슷한 상처를 가진 판사의 유별나고 까탈스러운 반응이라 할 수 있고 이해가 되기도 해. 이해와 별도로, 오름이 따진 대로라면 판사의 자격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기도 한데...어느날 갑자기 부장판사가 될 수는 없으니까 말야, 자신의 마음을 단속하며 사건을 헤쳐나가는 경험, 연륜 하나를 쌓는 중인 초임판사로 받아주어야지 않을까. (오름의 기억은 사건의 증거에서는 부족하게 드러나는, 물리적 힘과 사회적 지위에 쉽게 억압당하는 한 성별의 입장을 현실감 있게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그 결과, 참지 않는 나댐에 진취적인 직업의식으로도 모자라 페미니스트일 수밖에 없는 기억까진 짊어진,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오름이 탄생한 건가? 이런저런 잣대로 비판 받는 모습이 점점 아픈손가락으로 다가온 오름이었는데, 이제 보니 3화에서 이미 아픈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노동자에게 해고는 사형선고라며 세상과 비슷한 고민하는 바른에겐 바로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해직당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노릇을 하는 개인사를 알기 때문일까. 그런데 바른의 시각을 바로 달라지지. 다소 유난스러운 마음 상태였을 오름이 신속하게 준비한 체험학습을 시장속에서 겪으면서 말야. 익숙하면서도 기분 더러운, 단순한 성별의 문제가 아닌 힘에 굴복해야하는 굴복감, 그 힘의 차이가 사건에 드리워있음을 깨닫지. 소위 일컫는 젠더감수성을 발휘해 이론과 판례만이 아닌 별의별 실제사건을 찾아보며 열심이야. 오름을 통해 느낀 사람의 마음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일을 작게나마 실천했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시도가 스스로 색다른 감회인지 늘상 보던 법복을 한참 들여다본 후 옷장에 넣기도 했어.


보왕이 개발중(?)이라는 알판고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판사는 개인의 입장과 기억, 경험에 따라 어느 정도 기울어지는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 그 기울어짐의 균형을 찾아가며 공평한 법의 판결을 내려야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란 생각도 다가온 3화였고. 44부가 각자 입장에서 균형을 찾아 만난 지점은 정황적 의심이라고 할 수 있어. 잘못했다, 미안하다, 주책이었다며 반성하는 원고와 그를 일관되게 옹호하는 증인들의 모습에서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는 별로 없어. 다만, 반대심문도 없이 무성의하게 대응하는 회사측 변호사의 태도에서 재판에 이기려는 의지를 전혀 읽을 수 없는 거야. 세상의 표현으로 짜고치는 고스톱의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오른 거지. 이 의심은 44부뿐만 아니라 보왕과 도연도 똑같이 느끼고 있어,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정황이기도 해.

SNS 여론을 달래기 위한 해고쇼라는 정황이 쉽게 드러난 것과 달리 판사인 그들이 직접 조사를 행할 순 없어. 그저 중립적인 심판으로 의심을 해결하기 위해, 증인을 다시 한번 증언대에 세우는 직권 하나가 전부지. 그 직권에 불려온 증인은 여전히 글쎄요, 잘 모르겠다는 일관된 침묵을 전할 뿐이야. 이에 바른은 사람의 마음이 담긴 언어로 차분히 하지만 속도감 있게 그 침묵에 압력을 가했어, 누구 때문에 가장 마음이 아프겠냐..외면하지 않을 사람이 누구이겠냐며. 바른의 언어에 담긴 힘이 증인의 마음에 닿은 듯 표정과 눈동자가 흔들렸어. 그순간을 놓치지 않는 오름은 증인신문이 끝나기 전엔 말을 정정할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비슷하지 않겠냐며 증인을 더 흔들지. 이런, 44부 좌우배석의 첫 컬레버레이션이 큰 역할을 하면서 드디어 증인은 침묵을 깨뜨리고 진실을 털어놓았어. 회사와 변호사가 인턴사원을 몰아붙여야 너희가 살아난다고 회유한 정황과 주책을 반성한 모습과 달리 다수의 인턴사원을 비슷하게 희롱해온 악질적인 부장의 행태를. 또한, 한사람이 깨뜨린 침묵에 용기를 얻은 원고의 아내도 변호사의 추태를 낱낱이 폭로했어. 그러면서 법정은...놔두라 세상의 방조 아래 뒤엉켜 싸우는 발정난 수캐들의 관계와, 포옹으로 잘못을 정정하며 마음을 나누는 사람과의 관계가 공존하는 모습이야. 아니, 공존은 몇 초에 불과했고 눈물투성이의 고마움을 전하는 사람과의 관계만이 남아 이상적인 감동을 전했지, 44부가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 하도록.


판결 전에 세상이 전한 명언, 가해자의 고통과 피해자의 고통은 같은 저울로 잴 수 없다는 말은 가장의 무게가 묵직하게 흐르는 세상의 마음을 알기에 더 진정성있게 다가와. 그리고 묵직한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내린 판결이기에, 주말에는 아내 옆에 따개비처럼 붙어 안정적인 월급쟁이랑 살면서라는 대꾸를 소탈하게 건넬 수 있었겠지. 또, 바른과 오름도 최선을 다한 판결 이후에는 데이트 같은 데이트 아닌 시간을 보내며 마음속 이야기를 한번 건네는 모습이야. 이렇게, 이상적인 감동위에 일상의 소탈함을 곁들여 마무리되는 것 같은 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타격이 전해오는 3화의 엔딩이 등장했어.  

처음엔 단디 역시 법정에서의 감동을 친구들과의 일상속 수다로 풀어가는 모습이었어. 그러나 찰나의 잠시 후, 검도만 3단이라는 유단자도 일 대 다수의 물리적 위협 앞에서는 낯선 취객의 무리에 섞여 얼른 도망쳐야하는 상황이 급습했고, 법이 보호해준다는 수다의 감동을 무색하게 만드는 현실의 타격이 엔딩을 장식했어, 그 현실이 버거운듯 비틀거리는 단디의 걸음을 보여주며. 선이상 후현실이란 배치에서 지독한 현실감이 제대로 다가와 현실적인 감동마저 느껴졌고, 또 하나 인상적인 배치가 있었어. 단디가 도망친 외진 골목길에서 몇십미터만 멀어지면 사람들과 밝은 조명이 존재하는 보통의 밤거리였거든. 이런 지척의 장소 배치에서 문뜩 맴도는 건 성적 굴욕감을 느낄 일이 그렇게 흔한가 하는 보왕의 스쳐간 한마디고, 3화에 나온 다양한 인물의 성희롱 때문인지 그게 그렇게 쉽게 겪는 일인가라던 넷상의 글 하나였어. 물론 흔하거나 쉽게 겪는 일은 아니겠지만, 늘 다니던 길과 이어진 골목길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이런 말을 선뜻 하는 이유는 꽤나 평범한 모습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는 내게도 오름과 비슷한 기억이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저 골목길 어디쯤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흔하진 않을지라도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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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동상이몽

3화 바름이들 관계는 꽤 부드러운 느낌으로 흘러갔어. 여기엔 바른의 젠더감수성이 좋은 역할을 한 것 같아. 시장체험에서 단순히 기분 나쁘다는 감정이나 고소하겠다는 장난스런 반응이었다면 이번에도 내생각 니생각으로 격렬하게 맞붙었겠지. 하지만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자신이 격을 수 없는 성별의 차이란 특수성에 바른은 이해가 명민하게 움직였어, 성별과 힘과 굴욕감의 역학관계에 대한 이해가. 그리고 이해한 것에 그치지 않고, 맡은 사건을 그 시각으로 다가서는 적극적인 태도야.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를 넘은 수용인 셈이고, 이런 이해와 수용에 오름은 개인적인 마음을 살짝 여는 모습으로 답했어. 남 일 같지 않고 익숙한 일이란 기억, 바른이 이해하고 들어줄 거란 믿음이 없다면 함부로 꺼내기 힘든 기억이잖아. 그 기억의 여파로 결혼은 못 할 것 같다, 일찍 알지 않아도 좋은 일도 있다는 개인적인 소감을 전하고, 그런 강경한 입장일수록 증거는 충분한지 다른 측면은 없는지 의문을 가져야하는 입장의 이해를 구하지. 그에 당연히 그게 우리 일이란 공감의 미소까지. 다른 생각으로 부딪히는 언쟁이 아니란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은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진 순간 같은데, 그건 오름이 이끌어낸 바른의 젠더감수성 위에서 흘렀다 할수 있지 않을까.


오름이 알바란 말을 꺼냈을 때 바른의 반응이 재밌어. 집 부유하지 않았냐, 그런 줄 알았다며 호기심 가득하거든. 고백 때 알고 싶은 마음이라더니 늘 그런 마음이 흐르는 듯 스치는 한마디에 두 눈 반짝거려. 오름의 반응은 각자 사정이 있는 거라며 바른의 관심에 약간 선을 긋는 느낌이지. 겉으론 활달하고 패기 넘쳐보여도 개인사의 굴곡의 주는 마음의 벽을 치고 있는 듯한 반응 같아. 그런 오름이 벽돌 하나 내려놓고 전한 어두운 기억 하나, 그것을 가능하게 한 젠더감수성 같은 바른의 유한 생각의 전환은 드라마 내내 이어졌어. 오름이 전하는 가족의 의미에 아버지와의 오해를 푸는 한편, 아버지의 조언에선 새로운 답을 찾는 실수라는 발상을 찾아 오름에게 전하지. 생전 처음 가본 응급실에선 비이성적인 인간에 대한, 오름의 걸음에 동행한 수렁속 동네에선 나약한 인간에 대한, 이해도를 깨치기도 하고. 최종적으론 나부터 징계하란 장외 투쟁을 벌여보고, 먹고사는 일도 널 위해선 내려놓을 수 있는, 강인한 유함 보여줬어. 이런 시간 속에서 오름의 벽은 조금씩 허물어졌고 오름에 대한 많은 것들을 어느새 알고 있는 바른이었지.

첨엔 오름을 만나서 생각이 유하게 변한다고 여겼는데, 갈수록 생각이 기본적으로 유했기 때문에 오름의 다름을 잘 수용한 것 같아. 유한 생각의 근원은 사고전환이 명민한 두뇌라 해도 되고, 안으로 품고 있는 말랑한 감성일지도, 본디 갖고 있던 착한어린이 본성일지도 모르는데...아마 그 모두가 합해진 결과물 아닌가 해. 그 결과물, 인간 임바른의 성장과 순애보를 그려낸 Mr. 함무라비라 볼 수도 있는 드라마이고, 3화 리뷰 제목에 비추면 바르고 곧은 직진보행만 할 것 같은 바른이 발끝에 걸리는 돌멩이 하나에도 걸음을 돌려 골목길 탐사를 곧잘 한다고 할 수 있지. 내가 바른에게서 느낀 매력 중 하나이기도 해서, 생각을 깨치는 과정 일부가 작위적이란 지적은 공감하면서도 그런 바른이가 좋아서 크게 거슬리지 않았달까.


생각이 유하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어. 센스나 오지랖 좀 있는 남정네였다면 오름이 캐리어를 여는 순간 같이 퇴근하려고 정리했을 텐데...그저 하던 일 마무리하겠다는 개인주의자 임모씨(31세, 모쏠 추정). 그러다 째깍째깍 늦은 시간임을 확인하고 오름이 얘기가 떠오르며...널 향한 신경세포가 깨어나는 순간이 좋아. 한순간 네가 신경쓰여 다급하게 뒤따라간 걸음임에도 아직 그런 티를 낼 수 있는 사이는 아니어서, 모임 안 좋아해 얼굴만 잠깐 비추는 개인주의자인 척하는 들숨과 날숨, 목덜미에 맺힌 땀방울도 좋아. 생색낼 의도는 딱히 없는데 자꾸만 티가 나니까 말야. 그리고 무의식적 티냄의 절정, 부족한 센스 대신 얼마나 다급한 걸음이었는지를 알려주는 검지의 파란색 골무는 말해 뭐해~ 이렇게 티가 나니 오름은 당연히 고마운데, 바른은 들숨에 한번 먹힌 발음으로 뭐가요라고 되물으며 여전히 생색내고 싶어하지 않아. 그럼에도 천천히 미소가 번지는 바른의 표정은 신기하네 어떻게 알았지 혹은 알아주니 기분 좋네 정도일까. 그리고 그 골무는 대체 언제 깨달았을까, 집에 가서? 자려고 세수하다?? 바른을 귀엽고 설레게 만든 마성의 허당 골무.

바른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나타난 순간, 오름은 우연으로 받아들였을 거야, 단디 앞에 나타난 취기의 부산갈매기 무리처럼. 우연히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표정으로 내려가는 중, 땀방울과 골무가 절대 우연이 아님을 알려주지. 그런데도 모임 있다고, 안 뛰어왔다고, 부담주지 않으며 챙겨주려는 마음씀씀이가 또 한번 다가왔겠지, 야근처럼. 그리고 어두운 기억을 들려준 상대가 바른이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을까, 그 기억에 과민반응하지 않으면서도 그 기억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주는 순간이니까. 그래서 그냥 다 고마운 오름에게 편안한 미소와 표정이 자리 잡고 있어서, 트라우마를 자그마하게 극복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하기도 했어. 버튼 누르기가 다시 두려울 때 바른의 손을 한번 떠올려 마음을 다잡고, 그래도 두려움이 밀려올 땐 파란 골무가 생각나 한번 웃으며 편안해질 수 있길, 그런 마성의 골무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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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 대뜸 주말알바 얘기를 꺼낸 건 바른이 들어줄 거란 확신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일 거야, 겉과 다르게 매정하지 않은 속마음을 하나둘 느끼는 중이었으니까. 그 알바는 핑계고 사적으로 만나 수다 떨어보고 싶었다는 건, 생각이 많이 다를 뿐 대화는 통하는 상대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혹은 관심)이 생겼기 때문 아닐까.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얘기하고 싶은, 즉 인간적인 교류를 원한 거지. 오름이 원하는 이 교류는 바른에겐 뭔가 낚인 기분을 전해주었어. 하나둘 챙겨준 건 아직은 뭐라 규정하기 힘든 첫사랑에 대한 관대함이 이끈 행동일 뿐, 아무에게나 그러는 건 절대 아니거든. 게다가 개인적인 관심이 늘 촉을 세우는 너를 지극히 사적인 시간인 주말에 만나는 건 관대함이 자꾸만 데이트로 착각하고 있어 곤란하기도 하지. 그런데 같이 수다 떠는 동료애를 확인하자니...낚여서 파닥이는 마음이 샐쭉한 표정과 말로 흘러나오네, 나랑 무슨 쓸데없는 수다를 떨고 싶었냐며.

오름이 흘러낸 수다는 그시절의 어두운 기억이고, 그 기억을 알고 있다는 바른의 기억합니다라는 한마디가 묘하게 인상적이더라. 그때 그일을 단순히 기억하고 있을 뿐, 해결하거나 힘이 되진 못했다는 옅은 죄책감이 깔려있는 것 같았거든. 그런 부채의식을 지닐 정도로 나약했던 그시절을 어떻게 이겨내고 지하철에서는 용기있게 행동했는지, 진정으로 궁금해서 물어봐. 그에 오름은 혼자가 아니라서, 바른 같은 사람이 있어서 이를 악물게 된다고 하지. 바른 같이 지하철 소동에서 도와주는 사람이고, 이번 사건에서는 눈앞에 보이는 불의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쫓아간 바른 같은 사람이지. 도와줄 수 있는, 외면하지 않을, 그런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끝으로 미소를 크게 지어보는 오름. 이부분에서 멋있는 사람이란 단어가 왜 자꾸 맴돌고, 오름의 미소가 뭣 때문에 천진하게 다가오는지를 한참 생각했는데... 이런 이유 같아,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상적인 인간에 대한 정의와 다짐을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는 천진했던 그 옛날로 돌아가야 떠오를 것 같아서 말야. 그렇게, 숨가쁜 현실을 살아가는 중이라면 쉽게 와닿지 않을 오름의 이상적인 천진함에 바른도 서서히 스며드는 미소를 지었어. 죄책감이 깃든 네가 이렇게 미소를 지으니까 되었고, 이런 인간애의 교류를 원했다면 샐쭉한 내 마음도 그만 만족해야지, 어느 쪽으로든 네겐 관대하게 흐르는 마음이니까.

바른과 오름이 거닐던 주변의 풍경은 봄이었어. 그에 맞게 바른의 옷차림은 가벼운데 비해 오름은 아직 겨울의 끝자락에 있는 것 같았어. 외투자락처럼 치렁치렁한 기억을 끌어안고서도 사람이 좋아서 수다 떨자는 오름과, 데이트 같은 생각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들뜬 바른의 살짝쿵 빗나간 동상이몽을 보여주는 듯한 복장의 차이일까. 그래도 그쯤이면 같은 봄안에 머문 것 같아. 과거에 주눅들지 않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오름의 밝은 미소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기운을 닮았고, 그 기운을 바라보는 바른의 유한 미소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봄햇살처럼 따스하길 기대하고 싶으니까.

같은 봄의 미소가 봄의 정경 위에서 흘러가고 있어.

gWWrH



덤. 부장과 애처가 사이 (※주의-대본집 스포가 있음!!)

대본집의 세상은 흔히 말하는 엄.근.진의 느낌이 있어. 단속하시오, 재경기 해봅시다 같이 배석들에게 존대를 가끔 건네고, '노기를 띤 채' 같은 지문상 표현이 그렇고. 부장판사를 떠올렸을 때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야. 그런데 드라마속 세상이 꼬박꼬박 존댓말을 전하는 건 집에 계시는 마나님이야. 이렇게 존대의 대상이 바뀌면서 근엄한 부장판사가 아니라 애처가 세상을 소소한 재미로 만날 수 있었지. 또 대본에 간간히 살을 붙이는 애드립이 계속 등장하는데...잘못 되면 둘 다 죽여버린다거나 사과 한쪽 허락 맡고 공손히 집는 모습은 친근하고 인간적인 느낌이야. 이런 느낌은 얼마 뒤 바른과 단무지나 택배를 두고 신경전 벌이는 모습과도 제법 어울리는 것 같아. (엄진근의 부장이 단무지를 얄밉게 샥샥샥 먹었다면...?) 이런, 캐릭터 해석과 애드립의 연기는 배우의 힘에서 크게 기인할 것 같아서, 오로지 드라마 44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한세상 부장이지 않을까.


//

드라마가 끝났지만 뭔가 현재진행형의 감흥이 남아있어서 리뷰도 붙잡고 있었는데...
계절이 한번 더 바뀌고 있어서 그런지,
이제 정말 끝나고 추억으로 자리잡는 느낌이 슬슬 다가오네ㅠㅠ
이런 느낌 별론데 시간은 그렇게 잘 흘러가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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