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전범 기업에 강제 징용된 뒤 정당한 노동의 대가와 빼앗긴 시간에 대한 배상을 받는데 앞장 서왔던 이춘식 할아버지가 27일 오전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춘식 할아버지와 함께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 온 시민단체들은 "우리들의 버팀목이자 역사의 산 증인으로 피해자의 존엄을 직접 보여주셨다"며 그를 추모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41년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으로 건너간 17살 소년 이춘식은 제철소에서 하루 12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기술을 배우긴 커녕 임금조차 주지 않는 노동착취가 3년 넘게 이어졌고 일제가 패망한 뒤 고향에 돌아온 그에겐 빈손과, 고된 노동으로 얻은 흉터만 남았습니다.
60년이 지나서야 이춘식은 포기했던 징용의 대가를 받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5년 일본제철의 후신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습니다.
함께 고생한 동료 3명과 같이 시작했지만 13년 뒤인 2018년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 줄 때 살아서 그 소식을 들은 건 이춘식 혼자였습니다. 이춘식은 승소 판결을 들은 2018년 10월 30일 법원을 나오면서 "오늘 나 혼자 나와서 내가 마음이 슬프고 눈물이 많이 난다", "같이 나와서 이렇게 판결받았으면 엄청 기뻤을 텐데 혼자 나와서 눈물이 나고 울음이 나오네"라고 말했습니다.
대법원 승소 판결 뒤에도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은 이춘식의 노동과 잃어버린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갚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죄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가해 기업은 일본까지 찾아간 피해자와 가족들을 문전박대했고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반발 성격으로 2019년 7월 수출규제 조치, 8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통보했습니다.
이때 95세였던 이춘식은 JTBC와 인터뷰에서 "나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이 손해가 아닌지 모르겠네. 나 하나 때문에 그러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보복 조치가 국민들에게 피해를 줄까 마음 쓰여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고맙지, 다 고마운 일이지. 미안하네, 아무 것도 줄 게 없어서"라고도 했습니다.
2023년 3월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가해 기업 대신 국내에 세운 정부 산하 재단이 기부금으로 배상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지만 이춘식은 이런 방식의 배상은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춘식을 포함해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싸워온 양금덕, 역시 미쓰비시 중공업의 강제동원 피해자인 고 정창희, 고 박해옥의 유족 등이 최근까지도 배상금 수령을 거부해 왔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이춘식, 양금덕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으로부터 배상금과 지연 이자를 수령했습니다. 고령으로 병원에 입원 중인 상태에 나온 갑작스러운 결정에 일각에선 본인의 수령 의지가 제대로 확인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춘식의 명복을 비는 입장문에 "할아버지는 백세가 넘는 고령에도 꺾이지 않는 의지로 돌아가실 때까지 일본 정부와 기업을 향해 강제동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셨다"고 썼습니다. 연구소 측은 "앞으로도 이춘식 할아버님이 남긴 뜻을 이어 받아 역사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습니다.
윤샘이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