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죄다 검은 옷… 누가 죽었나요?” 한국의 ‘흑백 결혼식’
75,936 518
2024.11.23 00:44
75,936 518

“아니 여기가 결혼식장이야, 장례식장이야?”

60대 주부 박모씨는 요즘 지인들 자녀 결혼식에 갈 때마다 놀란다. 신랑·신부의 친구들이 죄다 검은 옷을 입고 오기 때문. 검정 바지에 점퍼 차림으로 부케를 받기도 한다.


그는 “예전엔 ‘장례엔 돈이 부조, 결혼엔 옷이 부조’라는 말처럼 잔칫집엔 화사하게 꾸미고 가는 게 예의였다. 그런데 예의의 기준이 바뀐 것 같더라”고 했다.

결혼식 드레스 코드가 확 달라졌다. 닥치고 블랙이다. 밝은 옷 입었다간 평생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짧은 드레스나 레이스·스팽글 장식 등 화려한 디자인도 위험하다. 딱 ‘블랙 캐주얼’이 정답이란다.

이유는 신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결혼식이라는 일생일대 이벤트에서 신부가 가장 예뻐야 하고 공주처럼 시선을 빨아들여야 한다는 것. 흰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제외한 나머지를 어둡게 깔아주는 ‘바둑알 콘셉트’로 단체 사진이 나와야 한다.

최근 서울 모처에서 열린 결혼식에 톱스타들이 참석한 모습. 송혜교, 제니, 변우석과 김고은 등이 모두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블랙 캐주얼로 '드레스 다운'한 모습이다. /인스타그램

최근 서울 모처에서 열린 결혼식에 톱스타들이 참석한 모습. 송혜교, 제니, 변우석과 김고은 등이 모두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블랙 캐주얼로 '드레스 다운'한 모습이다. /인스타그램


이달 초 서울의 한 결혼식에 블랙핑크 제니와 배우 송혜교·변우석·김고은 등 톱스타들이 참석했다. 하나같이 평범한 검은 옷이었다. 해외 팬들은 “누가 죽은 거냐” “한국 결혼식은 미쳤다. 다들 직장에 출근하는 것 같다”며 놀랐다.

외국에선 하객도 멋지게 입는다. 간혹 신부와 같은 흰 드레스를 입은 시어머니나 친구가 도마에 오르지만, 그렇다고 검은 옷으로 ‘드레스 다운’ 하자고 결의하지는 않는다.

미국인 영어 강사 제니퍼씨는 “한국 동료 결혼식에 짧은 하늘색 드레스를 입었더니 ‘네가 뭔데 차려입었느냐’는 눈총을 받았다”고 한다. 반면 한 한국 여성은 도쿄에서 열린 일본인 친구 결혼식에 검은 옷을 입고 갔다가 화려한 하객들을 보고 ‘아차’ 싶었다고.

미국의 한 결혼식 단체 사진. 신랑신부의 친구들도 화려한 드레스 등으로 차려입은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미국의 한 결혼식 단체 사진. 신랑신부의 친구들도 화려한 드레스 등으로 차려입은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불과 4~5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남의 결혼식에 정성껏 차려입었다. 단체 촬영 때도 화려한 차림 하객은 앞줄에 세워 분위기 돋우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최근 결혼 비용이 치솟고 연애부터 프러포즈, 결혼과 출산에 이르는 과정이 희귀한 경험이 됐다. 그 정점의 이벤트인 결혼식 분위기도 달라졌다. 당사자가 주인공이 되는 극강의 효용을 경험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해졌다. 너도나도 호텔 결혼식을 하면서 어두운 실내에서 드라마틱한 조명을 신랑·신부에게 쏘는 사진이 유행했다.

사진사들은 밝은 옷 입은 하객을 뒤로 빼기 시작했다. ‘밝은 옷=민폐’ 공식을 많은 이의 뇌리에 심었다. 한 웨딩 스냅 업체는 “신부들이 ‘밝은 옷 하객은 촬영에서 빼달라’ ‘재킷 속 흰 셔츠도 신경 쓰이니 포토샵으로 어둡게 처리해 달라’고 미리 요청한다”고 했다.

지난해 연말 한 연예인 결혼식. 미혼인 신부의 언니가 분홍색 투피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이 "동생 결혼식을 망치려고 작정한 것"이라며 비난을 쏟아낸 일이 있다. 신부가 "내가 입어달라며 사다준 옷"이란 해명까지

지난해 연말 한 연예인 결혼식. 미혼인 신부의 언니가 분홍색 투피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이 "동생 결혼식을 망치려고 작정한 것"이라며 비난을 쏟아낸 일이 있다. 신부가 "내가 입어달라며 사다준 옷"이란 해명까지 해야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요즘 ‘민폐 하객’ 1순위는 축의금 적게 내는 이나 예식 안 보고 밥만 먹고 가는 이가 아니라 신부보다 예쁜 하객이다. 예쁘다는 건 주관적이지만, 옷 색깔만으로 그 불순한 의도를 가려낼 수 있다니 마녀 재판이 손쉬워졌다.

블랙 하객 룩을 둘러싼 ‘프로 불편러(매사 예민한 사람)’들의 상호 검열과 갈등은 상상 이상이다. 결혼 준비 카페와 소셜미디어에선 밝은 색이나 리본 달린 옷을 입고 신부 옆에 선 하객을 콕 집어 “미친 거 아닌가요?” “자기 결혼식인 줄 아나 봐요”라며 비난한다.

수년 전 보라색이나 노란색 옷을 입고 결혼식에 간 유명인이 ‘레전드 민폐 하객’으로 다시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이 원피스 민폐일까요?” “베이지 재킷 입고 간 게 마음에 걸리는데 늦게라도 신부에게 사과할까요?” 같은 고해성사도 쏟아진다.

일본의 한 결혼식. 신부 지인들이 밝고 화사한 기모노를 차려입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본의 한 결혼식. 신부 지인들이 밝고 화사한 기모노를 차려입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여성 친척의 국룰 하객 룩이었던 한복도 화려하다는 이유로 거의 퇴출되고 양가 어머니만 입는 추세다. 손윗동서 될 사람이 흰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었다고 신부가 “내 결혼식 망치려 했다”며 격분, 집안싸움으로 번진 경우도 있다.

30대 여성 이모씨는 “친구들에게 ‘내 결혼식에는 제발 예쁘게 입고 와달라’고 사정했지만 결국 검정 일색이더라”며 “남들에게 찍힐까 봐 조심하는 것 같다”고 했다.

옳든 그르든 남들처럼 하지 않으면 인격 살인 당하는 사회, 이렇게나 칙칙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872114?sid=102

목록 스크랩 (0)
댓글 518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화제의 '환승연애' 시리즈가 스핀오프로 돌아왔다!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 또 다른 시작> 출연진 예측 이벤트 128 01.09 23,723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66,109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4,666,309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8,265,469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6,816,194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1 21.08.23 5,782,142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40 20.09.29 4,748,508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66 20.05.17 5,335,424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89 20.04.30 5,786,671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0,620,441
모든 공지 확인하기()
2600872 유머 두부 먹어야 하는 강아지.shorts 1 02:21 93
2600871 이슈 엘에이 산불을 피해 주택가까지 내려온 사슴들 1 02:21 221
2600870 이슈 진돌 : 어 내 인생 세일 중이야 2 02:18 487
2600869 이슈 배우 신예은의 인생케미는?.jpgif 2 02:18 96
2600868 이슈 무려 14년 만에 멜론 일간 진입하더니 서서히 오르고 있는 걸그룹 노래.jpg 3 02:17 548
2600867 이슈 17년전 오늘 개봉한, 영화 "무방비 도시" 02:15 80
2600866 이슈 저긴 손발도 안 맞는 걸로... 02:13 403
2600865 유머 세탁고 vs 냉장기 02:11 159
2600864 유머 카리나 윈터의 손으로 말해요 2 02:10 226
2600863 유머 애교가 넘치는 23년생 말(경주마) 02:10 114
2600862 유머 자기계발서 서적 제목 짓기대회.shorts 02:08 253
2600861 이슈 박종철열사와 같은 서울대학교 84학번 13 01:56 2,185
2600860 유머 씽크빅하게 사진찍기 (ft.조각상) 7 01:49 899
2600859 이슈 강동원이 직접 부른 늑대의 유혹 OST 5 01:48 438
2600858 이슈 🎂케이팝 쌍둥이 아이돌 손브라더스의 생일을 축하해 1 01:48 581
2600857 유머 ???: 쟤들도 운동을 하는데 넌 새해에도 운동이라고는 숨쉬기밖에 안 하니? 1 01:38 1,777
2600856 이슈 분위기 비주얼이 다했던 인간중독 임지연 15 01:37 3,610
2600855 이슈 98,000명이 투표해서 정확히 50:50 나온 주제 ㄷㄷㄷㄷ 170 01:37 8,806
2600854 이슈 반려묘를 10분이상 안 쳐다봤더니 의아했던 냥냥이 반응 9 01:32 2,287
2600853 이슈 사람들이 레인보우 김재경에 대해 잘 모르는 사실 9 01:26 3,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