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에 아파트 1채를 소유한 이모씨(46)는 전세 만기를 앞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입자가 새로운 임차인에게 집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해서다. 부동산에 집을 보러온 손님들이 공인중개사와 함께 여러 차례 이씨의 집을 방문했지만, 내부를 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씨는 "계약 만료일에 맞춰 보증금을 받으려면 세입자도 협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집을 보여주지 않는데 무슨 수로 다음 세입자를 구하겠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이처럼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새 임차인에게 집 공개를 거부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세입자가 집을 보여줘야 하는 것은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니기에 전·월세 계약 만료를 앞둔 집주인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일부 집주인은 기존 세입자의 집 공개 거부로 신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서 보증금 반환을 위해 대출까지 받는 상황이다. 강원도 춘천에서 원룸에 세를 놓고 있는 집주인 최모씨(50)는 전세 계약 만료 전까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마이너스 통장으로 보증금 일부를 융통했다. 당초 최씨는 새로운 세입자에게 받은 보증금을 그대로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줄 계획을 세웠지만, 세입자가 집을 보여주려 하지 않으면서 자금 계획이 틀어졌다.
이처럼 세입자의 거부로 어려움을 겪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지만, 법적으로 집 공개를 강제할 방법은 없는 실정이다. 민법이나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임차인이 다음 세입자에게 집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는 조항은 명시돼있지 않다. 오히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상태서 집주인이 세입자 허락 없이 집에 들어갈시 주거 침입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에 사실상 집주인이 전적으로 세입자 협조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한 세입자의 경우 전세금 반환 지연 시 보증기관에 보증금을 청구하면 되기에 아쉬운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집주인 최모씨는 "세입자는 보증기관에 보증금 반환을 청구하거나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면 그만"이라며 "조금만 배려를 해주면 되는 문제인데 집주인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고 말했다.
반면 세입자들은 집을 보러오는 손님들로 인해 사생활 침해를 받고 있다고 토로한다. 서울 성북구에서 8년째 자취 중인 이모씨(28)는 공인중개사 연락이 올 때마다 수신을 거부하고 있다. 공인중개사가 이씨가 외출한 상태에서 집을 보러 가겠다며 출입문 비밀번호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여자 혼자 사는 집이다 보니 비밀번호를 알려줬을 때 안전을 위협받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된다"며 "집주인은 하루빨리 집이 나가는 것만 생각하고 세입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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