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팁/유용/추천 ‘혼자’를 누리는 일 - 혼자일때 느끼는 외로움에 대하여
16,621 63
2024.07.11 11:03
16,621 63

bNzMC

혼자 잠을 자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나를 친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외롭지 않느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나는 친구의 질문을 곱씹는다. 외로운지 그렇지 않은지. 그러곤 대답한다. 외롭다고. 외롭지만 참 좋다고. 친구는 그게 말이 되냐는 눈빛이다. 괴짜를 바라보듯 씨익 웃으며 나를 본다. 그리고 연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사랑이 얼마나 활기를 주는지를 설파하며 못내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바로 그때. 나는 즐거운 토론을 시작할 마음으로 자세를 고쳐 앉는다. 

어쩌면 친구에게 외롭지 않다는 대답을 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도식에 의해서라면, 나의 면면은 외롭지 않은 쪽에 가까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한 대답을 하고 싶어서 나는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에 긍정을 할 수밖에는 없다. 외롭다. 하지만 그게 좋다. 이 사실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건, 외로운 상태는 좋지 않은 상태라고 흔히들 믿어온 탓이다. 가난하다는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라고 흔히들 믿고 있듯이. 하지만 나는 외롭고 가난하지만 그게 참 좋다. 홀홀함이 좋고, 단촐함이 좋고, 홀홀함과 단촐함이 빚어내는 씩씩함이 좋고 표표함이 좋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외로우려 하고 되도록 가난하려 한다. 그게 좋아서 그렇게 한다. 내게 외롭지 않은 상태는 오히려 번잡하다. 약속들로 점철된 나날들. 말을 뱉고 난 헛헛함을 감당해야 하는 나날들. 조율하고 양보하고 희생도 감내하는 나날들의 꽉참이 나에겐 가난함과 더 가깝기만 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알람을 굳이 맞춰놓지 않고 실컷 자고 일어나는 아침, 조금더 이불 속에서 뭉그적대며 꿈을 우물우물 음미하는 아침, 서서히 잠에서 벗어나는 육체를 감지하며 느릿느릿 침대를 벗어나는 아침이다. 찬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사과 한 알을 깎아 아삭아삭 씹어 과즙을 입안 가득 머금고, 찻물을 데우고 커피콩을 갈아 까만 커피를 내려서 책상에 앉는 그런 아침이 좋다. 오늘은 무얼 할까. 영화를 보러 나갈까. 책을 읽다가 요리를 해볼까. 내가 나와 상의를 하는 일. 뭐가 보고 싶은지, 뭐가 먹고 싶은지를 궁금해 하는 일. 그러면서, 나는 소소한 마음과 소소한 육체의 욕망을 독대하고 돌본다. 외롭다. 그러나 오랜 세월 매만진 돌멩이처럼, 그런 외로움은 윤기가 돈다. 

외로움이 윤기나는 상태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외로울 때면 쉽게 손을 뻗어 아무나에 가까운 사람을 애인으로 만들었던 시절도 있었고, 외롭다는 사실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전화로든 채팅으로든 늘 누군가와 연결되어 아무 말이든 나누어야 잠이 들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고, 혼자서 식당에 찾아가 밥을 먹는 일이 도무지 어색해서 차라리 끼니를 굶는 시절도 있었다. 연락처 목록을 뒤져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지만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나날도 있었고,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히는 게 두려워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확인을 해야 안도가 되는 나날도 분명 있었다. 누군가와 연결이 되어야만 겨우 안심이 되는 그 시절들에 나는, 사람을 소비했고 사랑을 속였고 나를 마모시켰다. 사랑을 할수록, 누더기를 걸친 채로 구걸을 하는 거지의 몰골이 되어갔다. 사랑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기보다는, 나의 허접하고 경박한 외로움이 사랑을 그렇게 만들었다. 서로를 필요로 하며 부르고 달려오고 사랑을 속삭였던 시간들은 무언가를 잔뜩 잃고 놓치고 박탈당한 기분을 남기고 종결됐다. 그래서 지나간 사랑을 들춰보면 서럽거나 화가 났고, 서럽거나 화가 난다는 사실에 대해 수치스러워졌다. 어째서 사랑했던 시간의 뒷끝이 수치심이어야 하는지,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그러한 고독의 맛을 결코 음미해본 적이 없다면 그때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 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동녘 

지금 나는 사랑의 숭고함보다 혼자의 숭고함을 바라보고 지낸다. 혼자를 더 많이 누리기 위해서 가끔 거짓말조차 꾸며댄다. 선약이 있다며 핑계를 대고 약속을 잡지 않는다. 아니,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나와 놀아주기로, 나에게 신중하게 오래 생각할 하루를 주기로 약속을 했으므로 선약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와 놀아주기로 한 날이라서 시간이 없어요’라는 말은 안타깝게도 타인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허용받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을 하다하다 지치면 두어 달을 잡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 가족이나 친구가 함께 하는 것을 두고 나는 가끔 농담처럼 ‘회식자리에 도시락을 싸들고 가는 경우’와 같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관광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인간관계로부터 언플러그드하러 떠나는 것이므로. 오롯하게 혼자가 되어서, 깊은 외로움의 가장 텅빈 상태에서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여야 하므로. 감정 없이 텅빈, 대화 없이 텅빈. 백지처럼 텅빈, 악기처럼 텅빈. 그래야 내가 좋은 그림이 배어나오는 종이처럼, 좋은 소리가 배어나오는 악기처럼 될 수 있으므로. 

외롭다는 인식 뒤에 곧이어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뒤따르는 일을 나는 경계한다. 잠깐의 어색함과 헛헛함을 통과한 이후에 찾아올 더없는 평화와 더없는 씩씩함을 만나볼 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어딘가에서 감염된 각본 같아서이다. 슬프다는 인식 뒤에 곧이어 슬픔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뒤따르는 일 또한 나는 경계한다. 역시 어딘가에서 감염된 각본 같기만 하다. 외로움에 깃든 낮은 온도와 슬픔에 깃든 약간의 습기는 그저, 생물로서의 한 사람이 살아가는 최소조건이라는 걸 잊지 않고 싶다. 

요즘은 외로울 시간이 없다. 바쁘다. 탁상달력엔 하루에 두 가지 이상씩의 해야 할 일이 적혀 있다. 어쩌다가 달력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지 않는 날짜를 만나면, 그 날짜가 무언가로 채워지게 될까봐 조금쯤 조바심도 난다. 바쁠수록 나는 얼얼해진다. 얼음 위에 한참동안 손을 대고 있었던 사람처럼 무감각해진다. 무엇을 만져도 무엇을 만나도 살갑게 감각되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요즘 좀 질 나쁜 상태가 되어 있다. 쉽게 지치고 쉽게 피로하다. 느긋함을 잃고 허겁지겁거린다. 신중함을 잃고 자주 경솔해진다. 그런 내게 불만이 부풀어오르는 중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기다린다. 오롯이 외로워질 수 있는 시간을. 오롯이 외로워져서 감각들이 살아나고 눈앞의 것들이 투명하게 보이고 지나가는 바람의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나의 시간을. 

외로워질 때에야 이웃집의 바이올린 연습 소리와 그애를 꾸짖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모르는 사람들의 생활에 빙그레 웃기 시작한다. 외로워질 때에야 내가 누군가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떤 연결은 불길하고 어떤 연결은 미더운지에 대해 신중해지기 시작한다. 안 보이는 연결에서 든든함을 발견하고 어깨를 펴기 시작한다. 골목에 버려진 가구들, 골목을 횡단하는 길고양이들, 망가진 가로등,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들에 담긴 알 듯 말 듯한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어쩌면 좋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 이런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걸 수도 있다. 사랑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의식을 오래토록 행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경박한 외로움이 사랑을 망치게 하지 않으려고, 사랑을 망쳐서 사람을 망가뜨리고 나또한 망가지는 일을 더이상 하지 않으려고, 무공을 연마하는 무예가처럼 무언가를 연마하는 중일 수도 있다. 집착하고 깨작대고 아둔하고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든든하고 온전하고 예민하고 독립적인 사랑은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게 되는 게 지금은 나의 유일한 장래희망이다.

<월간 해피투데이 2014.1월호 - 김소연, ‘혼자’를 누리는 일>

목록 스크랩 (36)
댓글 63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더쿠X네이밍💝 <트임근본템> 네이밍 슬림라이너 체험단 100인 모집 277 00:05 5,320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015,086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2,063,948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997,377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5,375,485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79,849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5 21.08.23 8,532,331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8 20.09.29 7,446,345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06 20.05.17 8,654,828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8 20.04.30 8,536,308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442,964
모든 공지 확인하기()
3030476 이슈 ‘플래닛C’ 모디세이, 7인7색 비주얼 잔치 09:51 1
3030475 기사/뉴스 [단독] “틱톡 가입하고 포인트 내놔” 앱에서 돈 뺏는 ‘사이버 학폭’ 09:51 12
3030474 기사/뉴스 NCT DREAM, 6만 6천 팬들과 함께한 서울 앙코르 공연 피날레 09:50 56
3030473 기사/뉴스 이집트, 유가폭등에 밤 9시 영업종료 지시.. 카이로 철야 영업 타격 09:47 145
3030472 이슈 6년전 오늘 발매된, 수호 "사랑, 하자" 2 09:47 39
3030471 이슈 2026 한류실태조사 최선호 한국 배우/가수 (2021-2025) 17 09:44 758
3030470 유머 방과후 태리쌤 보다가 묘하게 위로받은 부분.x 1 09:41 710
3030469 기사/뉴스 [속보] 트럼프 "이란과 협상 잘하고 있어…곧 합의할 것으로 생각" 25 09:40 841
3030468 기사/뉴스 “나 이연희랑 사귄다”…이연희, 남편 지인들 불신에 실물 인증했다(‘미우새’) 30 09:34 4,085
3030467 이슈 오늘 난리난 주식장 17 09:34 3,100
3030466 기사/뉴스 “어서와 K-때밀이는 처음이지?”…찜질방·세신숍에 반한 외국인들 4 09:32 840
3030465 이슈 경악할 유튜브에 뜬 광고 수준 43 09:31 3,448
3030464 기사/뉴스 '왕사남', 1561만 돌파…105억 들여 1500억 벌었다 12 09:31 849
3030463 이슈 5인조 데뷔각이라는 멤버합 좋은 서바 멤버들 1 09:29 959
3030462 유머 특진한 ㅈ소갤러 14 09:29 1,288
3030461 이슈 ‘겨울왕국 3’,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결혼식이 담길 예정 26 09:28 1,647
3030460 유머 롱샷의 아부디가 된 박재범의 공연 에티켓 ㅋㅋㅋㅋ 16 09:28 1,038
3030459 기사/뉴스 윤택, 부친상 비보…父 간담도암 말기 투병 중 오늘(29일) 별세 11 09:27 1,019
3030458 기사/뉴스 위기의 자영업자…대출금리 0.25%p 오르면 이자 1.8조원↑ 09:26 137
3030457 기사/뉴스 유럽 '피시플레이션'…밥상까지 위협하는 이란 전쟁 1 09:26 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