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만화가 일상인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사이로 책장을 끼워가며 읽는 만화책만의 매력을 잃을 수 없지요. 웹툰 '술꾼도시처녀들', 오리지널 출판만화 '거짓말들'의 만화가 미깡이 한국일보를 통해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만화책을 소개합니다.
한국의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 이대로라면 100년도 못 가 인구 2,000만 명 선이 무너진다. ‘국가 소멸’ 위기에 직면하자 여야 모두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저출생 공약을 내놨지만 대부분 막대한 예산만 들이붓는 일회성 지원에 불과하다. 어떻게 해야 출생률이 오르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 일단 청년들이 취업을 해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돈도 시간도 마음에도 여유가 좀 있어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일을 그만두지 않고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야 임신도 생각해 본다.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아이를 낳을 환경이 아닌데,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현금 얼마를 준다고 안 할 결혼, 안 할 임신을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노경무(글), 쏘키(그림) 작가의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은 합계출산율이 0.4까지 떨어진 2030년 가상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다. 출생률을 높이는 데 모든 걸 바친 천재 의학박사 김삼신은 ‘그냥 가임인구 숫자를 늘리면 장땡’이라는 단순한 결론을 내린다. 그가 30년 연구 끝에 세계 최초로 ‘남성 임신’ 기술을 성공시켜 이제 남성도 임신이 가능하다는 뉴스 속보가, 막 열 번째 시험관 시술에 실패한 유진의 귀에 꽂힌다. 때마침 남편 정환이 “내가 임신할 수 있으면 벌써 했지”라는 빈말을 던지고 있을 때였다. 유진은 씨익 웃는다. “그럼 이제 네가 하면 되겠다. 임신.” 정환은 얼떨결에 남성 임신 지원자가 된다.
만화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에서 내심 집안 어른들의 반대를 기대하던 남성 임신 지원자 정환은 "최씨가 최씨를 낳으면 적통 중의 적통"이라는 할아버지의 응원을 마주한다. 파란거인 제공
그러나 정환은 유서 깊은 안동 최씨 집안의 장손이자 삼대독자. 매스컴을 통해 소식을 알게 된 그의 아버지는 부부를 불러다 호통을 친다. 임신이 내키지 않았던 정환은 아버지의 거센 반대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러면 임신 안 해도 되겠는데.’ 가부장제의 화신 할아버지까지 들이닥치자 속으로 환호작약하던 그에게 뜻밖의 반응이 돌아온다. “최씨가 최씨를 낳으면, 마, 적통 중의 적통 아이가. 하하하하하!”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정환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시술을 받게 되고, 여성들이 짊어졌던 불안, 공포, 사회의 편견, 신체 질환 등 임신을 둘러싼 각종 문제를 온몸으로 겪는다. 임신이 이렇게나 힘들고 무서운 거였다니!
단맛 쓴맛 신맛이 맛깔나게 버무려진 이 블랙코미디는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선을 보였다. 2023년 한 해에만 국내·외 24개 영화제에 초청받아 8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남자가 임신하는 허구의 세계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일들은 너무도 사실적이라 관객들의 열렬한 박수 세례를 받았다. 영화에 이어 출판한 만화책은 더 풍성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작품의 뒷이야기를 한번 상상해 본다. 시간이 30년쯤 더 흘렀다 치자. 남성 임신은 대중화될 수 있을까. 임신과 출산을 흔쾌히 선택하는 남자들이 많을까. 과연 대한민국 초미의 관심사 출생률은, 그때쯤이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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