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월 강원 삼척시에서 신혼부부를 엽총으로 살해하고 목격자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정형구와 범행을 방조한 한준희가 경찰에 체포된 모습. /사진=KBS
1999년 1월19일 오후 4시10분. 강원도 삼척의 한 비포장길에서 느닷없는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신혼부부 김모(28)씨와 장모(27)씨가 탄 차량으로 정확히 날아가 꽂혔다.
부부는 총격 한 시간여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과연 부부에게 이날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정형구가 범행에 사용한 산탄총과 탄환. /사진=KBS
사실혼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형편이 어려워 혼인을 미루다 7년 만인 그해 1월17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이틀 뒤인 19일 처가가 있는 강원도로 신혼 여행을 떠났고, 여행 기분을 내고 싶어 그랜저 차량까지 빌린 것으로 당시 언론 보도에는 나온다.
부부는 이날 오후 3시쯤 삼척 시내로 들어섰다. 외삼촌에게 전화해 "곧 찾아뵙겠다"는 말도 남겼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부는 산길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몸엔 수십발의 총탄이 박혀 있었고, 옷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범인은 부부의 차량을 앞질러 가던 액센트 탑승자 정형구(당시 36세)였다.
강도·강간 등 전과 6범인 정형구는 이날 자신이 과거 종업원으로 부린 한준희(당시 33세)와 함께 삼척에서 사냥을 마치고 동해로 가는 길이었다. 그에게는 경찰관서에 등록된 산탄총이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한준희는 느리게 비포장길을 달렸다. 그러자 뒤쫓아가던 부부의 그랜저가 한준희의 액센트를 앞질렀고, 흙먼지가 날렸다. 정형구는 순간 격분했다. 고가의 차를 탄 젊은 부부가 소형차를 타고 다니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한준희와 정형구는 차창을 열고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부부의 그랜저를 다시 앞질렀다. 김씨도 욕으로 받아치며 다시 한준희의 액센트를 제쳤다. 두 차량의 치열한 경쟁은 비포장길에서 5분간 이어졌다.
정형구가 쏜 총은 이탈리아 베넬리사에서 만든 12구경 산탄외대였다. 산탄총은 탄환 여러개가 흩어지도록 발사해 명중률이 높다. 정형구가 쏜 총알은 날아가 김씨의 뒤통수에 꽂혔다.
정형구는 다시 그랜저 앞유리창과 조수석을 향해 총알 두 발을 발사했다. 한준희는 부부를 차에서 끌어냈고, 아내 장씨는 "제발 남편을 살려달라", "병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빌었다. 정형구는 장씨가 보는 앞에서 김씨의 뒤통수에 총을 대고 확인 사살을 했다.
"나도 죽여"
남편이 죽는 것을 본 장씨는 정형구에게 달려들었다. 이에 정형구는 장씨의 복부와 턱에 각각 한발씩 총을 더 쐈다. 7년을 기다린 신혼의 꿈이 정형구의 총에 쓰러졌다.
정형구는 완전 범죄를 꿈꿨다. 강도짓으로 보이게끔 그랜저에서 카메라 1대와 여행용 가방, 양복 상의, 지갑을 꺼냈다. 현금 80만원을 가지고 가고, 나머지 물건은 인근 숲에 버렸다.
...
사형수 정형구 "국가가 국민 생명 뺏으면 안돼"
1심 재판부는 정형구에게 사형을, 한준희에게는 징역 5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2000년 7월28일 둘에 대한 형을 확정했다. 정형구는 사형이 선고되자 "내겐 자식들이 있다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며 재판장에 애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전주지법 제2민사부는 부부 자녀 2명이 정형구와 한준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에게 각각 1억원씩 총 2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정형구는 돈이 없다며 이를 지급하지 않았다.
정형구는 24년째 미집행 사형수로 있다. 그는 2021년 사형제 위헌 소원에 보조참가인으로 이름을 올리며 "국가가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4988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