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당장 엊그제 있었던 일이야. 나는 언니랑 정말 사이가 좋아서 방을 같이 쓰는데 침대 방은 화장실 바로 옆에 있어. 그래서 언니가 밤에 화장실에 가면 인기척이나 화장실 불빛 때문에 종종 잠에서 깨곤 해. 우리는 보통 방 문을 닫아두고 자는데 새벽에 문득 잠에서 깨니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어.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리길래 언니가 화장실에 있나 보다 했지. 그리고 다시 잠에 들려는데 화장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원덬아 내일 햄버거 먹으러 갈래?
언니가 원래 햄버거를 좋아해서 거의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먹는 것 같아. 새벽에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서 나한테 그걸 묻는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인데 잠결이었던 나는 이상함을 못 느꼈어. 그러자고 대답을 한 것 같긴 한데 워낙 잠에 취해 있어서 그때 대답을 못한 것 같기도 해.
그리고 여전히 비몽사몽한 상태로 방 문 쪽을 보는데 얼굴에 그늘이 진 언니가 몸을 반쯤 숨긴 채로 나를 보고 있는 거야. 그늘이 졌다는 표현은, 말 그대로 얼굴의 반쯤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는 뜻이야. 그리고 생긴 건 정말 내가 아는 언니의 모습인데 전체적으로 채도가 낮은 느낌이었어. 문 앞에 선 언니가 한 쪽 눈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여전히 화장실에서는 물소리가 들리고 있었어. 나는, 아 방 문 앞에서 나를 보고 있는 이건 언니가 아니라 귀신이다, 아니면 내가 지금 가위에 눌린 거다 하고 확신했어. 나는 순간적으로 그 형체를 향해 베개를 집어던졌어.
그런데 베개를 배에 정통으로 맞은 언니가 악 하는 외마디를 뱉으면서 쭈그리고 주저앉는 거야. 그 소리를 듣고 나서 문 앞에서 나를 보고 있던 게 진짜 언니고, 화장실에 있던 게 언니가 아닌 무언가였구나 깨달았어. 화장실에서 갑자기 햄버거를 먹으러 가자는 둥 이상한 말도 했으니까. 그래서 바로 언니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내가 잠깐 가위에 눌려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사과했어. 언니는 여전히 아픈 것 같았지만 괜찮다고 하면서 다시 내 옆에 누웠어. 나는 언니를 등지고 돌아누웠는데 갑자기 언니가
그래서, 햄버거 먹으러 갈 거야?
하고 묻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어. 그랬더니 언니가 다시 되물었지.
"진짜?"
"엉."
"진짜?"
"웅!!"
"진짜?"
나는 이 세 번째 물음을 듣고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어. 분명 햄버거 먹으러 갈 거냐고 물어봤던 건 문 앞에서 내가 던진 베개를 맞은 언니가 아니라 화장실의 언니였는데... 그리고 오래 전에 읽은 한 괴담에서 '귀신은 같은 행동을 세 번씩 반복한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어.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쳐서 언니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언니는 씩 웃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어. 이미 소름이 돋은 몸에 이중으로 소름이 돋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나는 그 상태로 기절하듯 다시 잠에 빠진 것 같아. 다음날 일어나서 생각해보니 어제 본 그건 언니를 어설프게 따라하려고 한 것 같았어. 언니가 자주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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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보니까 별로 무섭진 않은데 사실 언니랑 나는 이 방에서 자면서 비슷한 일을 수차례 겪었거든. 우리를 흉내내는 무언가의 존재를. 신기하게도 같은 날 그럴 때도 있고, 언니가 느낀 바로 다음날 내가 느낄 때도 있고. 공통점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언니는 그 존재를 나라고 착각하고, 나는 그 존재를 언니라고 착각한다는 거야. 한동안 이런 일이 없어서 잊고 지냈는데 엊그제 간만에 겪었더니 생경하고 무서웠어...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다른 일들도 천천히 풀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