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피로 물든 달
아버지가 해외 출장에서 귀국하기 전날 밤이었다. 그날도 철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 과외를 본 뒤 잠자리에 들었다.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굉음과 함께 비명이 고막을 터뜨릴 것같이 들려왔다. 철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몸이 쇠약해져 헛소리를 들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철이는 잠결에 이상한 기분을 느껴 잠에서 깨어났다. 분명히 사방은 막혀 있는데 어디에선가 음산한 바람이 불어와 자신의 얼굴을 스치는 것이다. 철이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이야!”
“누구세요?”
철이는 어떨결에 대답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응답도 없었다. 철이는 아무래도 내일 어머니에게 말씀드려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2시쯤 되었을 때였다. 다시 출장 가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이야, 철이야! …….”
“네!”
철이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었다. 음산한 공기만이 잔뜩 겁에 질린 철이를 엄습해오고 있을 뿐이었다.
“뚜벅 뚜벅!”
그때 현관으로부터 발자국 소리가 철이의 방을 향해 다가왔다. 자기 전에 단단히 걸어 잠근 현관문이 열릴 리 만무인데 그쪽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그 발자국 소리는 철이의 방문 앞에서 멈추었다. 철이는 잔뜩 겁에 질려 이불을 뒤집어쓴 채 빨리 이 환청이 없어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끼이이!”
그런데 이번에는 손잡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 속에서 눈만 내놓고 보니 정말로 손잡이가 돌아가고 있엇다.
“누, 누구세요?”
철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역시 대답이 없었다.
한참 지난 뒤 철이는 용기를 내어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현관 쪽을 바라보았지만 신장 위에 놓인 화분들뿐, 현관문도 잠긴 채 그대로였다.
‘또 환청이었구나.’
철이는 중얼거리면서 바람을 쐬기 위해 베란다로 나갔다. 12층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새벽의 거리는 음산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방금까지만 해도 환하던 달이 점점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페인트를 위에서 내리부은 것처럼 달 표면이 붉게 변했다. 철이는 눈을 비비고 다시 자세히 보았다. 꿈이 아닌가 꼬집어도 보았다. 그러나 분명한 현실이었다.
이번에는 달뿐만 아니라 별, 가로등, 빌딩, 철이가 있는 주변 모두가 핏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철이의 잠옷까지도 온통 피로 젖어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으아악!”
다음날 철이는 베란다에서 잠옷 차림으로 실신한 채 발견되었다. 어머니는 병원으로 옮겼다. 철이가 깨어났을 때 어머니는 철이 옆에서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엄마?”
사실을 알아보니 어젯밤 아버지가 탄 여객기가 미국에서 오던 중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의해 피격당했다는 것이었다. 뜻밖의 사고로 처자식을 두고 이승과 이별해야 하는 아버지의 혼백이 어젯밤 철이를 찾아온 것이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snow_music/223551001921
4-(20) 엘리베이터 이야기
○○아파트 3동에는 같은 반 친구인 영희와 미나가 각각 9층과 11층에 살고 있었다. 미나는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었고 영희는 하위권을 맴도는 열등생이었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자주 마주쳤고 그때마다 영희는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영희의 어머니는 항상 미나를 칭찬했고 그녀에게 미나를 본받으라고 했다. 영희는 점점 미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한때는 경쟁상대로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희는 미나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영희는 절망감에 빠져 삶을 포기할 생각을 했다. 결국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17세의 삶을 마치고 말았다
영희가 죽은 다음날이었다. 미나는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이라 엘리베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나는 혼자 타고 1층, 2층, 3층 …… 올라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9층에 이르자 갑자기 문이 열렸다. 그러나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순간 미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누군가의 장난이겠지 생각하고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엘리베이터는 또 9층에서 문이 열렸다. 미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내일은 현관에 나와 있으라고 부탁했다.
이튿날 미나는 현관에 나와 있던 어머니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또 9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서서히 열리더니 냉기가 감돌았다. 미나는 어머니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소리쳤다.
“누구세요?”
그러자 뒤쪽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나야,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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