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x13. 악몽Ⅰ
현욱이는 태현이 집에서 이번 토요일을 지내기로 하였다. 태현이의 부모님이 결혼 20주년을 맞아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평소에 못 하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을 것 같아 둘은 아주 신났다.
토요일 저녁, 그들은 짜장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고는 어머니가 질색하시던 헤비메탈 음악을 마음껏 들었다. 그리고 지난 명절 때 선물로 들어온 포도주도 한 병 따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셨다.
“아빠는 너무 오래되어서 포도주가 없어졌는지 잘 기억을 못하실 거야.”
태현이는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밤이 깊어지자 ‘미성년자 관람 불가’라는 빨간 딱지가 붙은 비디오도 한 편 보았다.
어느 덧 날이 밝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온 가족이 교회로 가기 때문에 현욱이는 아침 9시까지는 집에 돌아오기로 약속을 하고 외박 허락을 받아 낸 것이었다. 현욱이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이나 늦어져서 가족들은 모두 교회로 가고 집은 텅 비어 있었다. 현욱이는 졸리고 피곤해서 오늘 하루만 교회에 가지 않고 쉬기로 했다. 물론 아빠한테 혼날 걸 각오하면서...
현욱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어머니가 그새 침대 시트를 세탁해 놓았는지 유난히 시트가 하얗게 보였다. 침대에 눕자 피로와 함께 졸음이 쏟아졌다.
갑자기 싸늘한 기운이 돌더니 사방이 포도주를 엎질러 놓은 듯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현욱이는 왈칵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집은 텅 비어 있으니 소리쳐도 소용없는 일이다.
창문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았더니 젖은 여자의 머리가 쓰윽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비디오에서 본 그 여주인공이었다. 하얀 가운을 걸친 그 여자는 피가 뚝뚝 흐르는 금발머리를 하고 현욱이를 향해 씨익 웃었다. 현욱이는 너무 놀라 발버둥치다 그만 침대에서 떨어져 버렸다.
“휴, 꿈이었구나. 깨어나서 다행이다.”
그래도 현욱이는 무서운 생각이 완전히 가셔지지 않아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방문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려 현욱이는 살며시 뒤를 돌아보았다. 하얀 침대 시트 위에 아까 본 그 여자가 누워서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직 꿈이 깨지 않았던 것이다.
“아악!”
현욱이는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떨어져 잠이 깼다. 몸을 일으켜 세운 현욱이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식은땀을 닦았다. 빨리 방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방문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는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섬뜩한 느낌이 들어 돌아보니 꿈 속의 그 여자가 피를 흘리며 침대에 누워 웃고 있었다. 역시 꿈 속이었던 것이다.
현욱이는 영원히 계속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snow_music/223056102727
3x14. 악몽Ⅱ
혜순이는 부족한 게 없었다. 아빠는 큰 회사의 사장이었고 엄마는 아름답고 자상했다. 혜순이는 얼굴도 예쁜데다 중학교에 와서는 줄곧 1등이었다. 누군가가 시기를 한 걸까, 그런 혜순이에게 무서운 일이 생겼다.
어느 날 베란다에서 기르던 잉꼬가 목이 졸려 죽는 꿈을 꾸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정말 잉꼬가 끔찍하게 죽어있는 것이었다.
며칠 후 혜순이는 또 악몽을 꾸었다. 놓아 기르던 커다란 어미 고양이가 죽는 꿈이었다. 다음날 깨어 보니 넓은 정원 구석에 검정 고양이가 죽어 있었다. 고양이의 시체 옆에는 쇠막대가 놓여 있고, 깨어진 머리와 입에서는 피가 흘러 흥건했다. 혜순이는 소름이 끼쳐 어두워지면 혼자서는 화장실에도 갈 수 없었다. 꿈을 꾸기가 두려워 잠자기도 싫었다.
며칠이 흘렀다. 혜순이는 또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개가 죽었다. 그 개는 아주 영리하고 귀여웠는데, 혜순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같이 자라 정이 들 대로 들었다. 혜순이는 어지간한 친구보다 그 개를 더 좋아했다. 바로 그 개가 죽는 꿈을 꾼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혜순이는 불안한 가슴을 두근거리며 뛰어나갔다. 개 이름을 부르며 현관 문을 열던 혜순이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목에 칼이 박힌 개가 비참한 모습으로 나둥그러져 있었다. 죽는 순간의 고통이 개의 표정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깨어난 혜순이는 식사도 제대로 못 할 지경이었다. 혜순이의 부모는 며칠간 학교를 쉬게 했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혜순이 아버지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감안할 때 무언가 배경이 있다고 판단하고 엄밀한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가 계속되던 어느 날, 담당 경찰이 찾아와 아빠와 나누는 이야기를, 정원의 나무 그늘 아래서 놀던 혜순이가 우연히 듣게 되었다.
“뭐 좀 밝혀졌습니까?”
아빠의 말에 경찰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저, 따님 있죠? 혜순이, …… 혜순이가 몽유병이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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