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사진 기사로 일한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어가는 터라 웬만한 결혼식은 다 봤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싸구려 결혼식, 아름다운 결혼식, 비극적인 결혼식, 웃긴 결혼식, 심지어는 기괴한 결혼식까지. 들려줄 이야기가 수도 없이 많다. 예비 신랑이 신부 들러리와 자다가 들키는 것도 봤고, 가족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거나 신부가 화장실에서 약물 과다복용하는 사건도 있었다. 하객 없는 동성애 커플 결혼식(혹은 초대받지 않은 동성애 혐오 가족이 찾아와서 결혼식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등 다양한 썰이 준비되어 있다. 만약에 내가 본 결혼식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면, 아마 하루는 꼬박 걸릴 것이다. 하지만 오늘 할 이야기는 지난 10월에 갔던 결혼식에 관한 것이다.
나는 가을 결혼식을 가장 좋아한다. 만약에 내가 결혼하게 된다면 가을에 하고 싶다. 내게 연락해온 것은 신부 측 부모로, 2주 뒤에 다가올 딸 결혼식 촬영을 맡기고 싶다고 했다. 원래 고용했던 사진 기사가 갑작스럽게 그만두는 바람에 딸의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한 사진으로 남겨 줄 대체 기사를 급하게 찾게 된 것이었다.
그들이 운이 좋았는지, 마침 나도 그날 일정이 없었다. 급하게 예약한 만큼 추가 금액을 세게 불렀지만, 신부 아버지가 차고 있는 롤렉스 시계를 보면 그리 부담되는 액수는 아니었으리라. 나는 가정형편을 잘 맞추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제대로 맞췄다. 시라이츠 일가는 돈이 차고도 넘치는 집안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일할 땐 편하다지만, 그렇다고 나를 고용한 가족을 모두 좋아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해럴드 시라이츠는 내가 한눈판다 싶으면 내 가슴을 음흉하게 쳐다봤고, 그 부인인 캐럴은 누가 봐도 퇴물로 전락한 트로피 와이프였다. 살면서 그런 성괴는 처음 본 것 같았다. 뭐, 성형이나 보톡스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정선이라는 게 있으니까.
신부 대신 그 부모가 나를 찾아오는 것을 자제했어야 했지만, 그땐 신부가 결혼식 준비하느라 바쁜 탓이라고 여기고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이 되었는데, 어... 결혼식에 들어가는 순간 내가 원치 않은 사건에 휘말렸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신부, 타냐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아니, 신부가 대체 몇 살이지?' 16살? 아니, 많이 봐줘도 이제 막 18살 갓 넘은 것 같았다. 20살은 절대 아니야. 속도위반으로 급하게 결혼하는 어린 친구들도 많이 봐왔다. 그리고 신랑을 봤다. 마셀 윈게이트. 그는 아무리 젊게 봐줘도 30살은 족히 넘어 보였다. 그리고 마셀은 뭐랄까... 분위기가 이상했다. 덩치가 어찌나 큰지 타냐에게는 거의 거인 같았고, 나마저 훌쩍 넘는 키였다. 말상 얼굴에 푹 꺼진 두 눈이 '아담스 패밀리'에 나오는 러치와 너무 닮았다.
그가 내게 악수를 청하며 자기소개를 했을 때, 나는 떨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하지만 수년간의 경력 덕분에 그가 청한 악수에 웃으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응대할 수 있었다.
타냐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은 전부 캐럴이 대신했는데, "머리가 더 풍성해 보이도록 만들어줘요," 라던가, "속눈썹이 정말 예쁜 아이니까 눈이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해줘요," 따위의 주문을 넣어댔다. 다행히 캐럴은 15분에 한 번씩 담배를 피우는 골초였기에 메이크업과 헤어 담당이 그 시간만큼은 제대로 일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타냐는 정말 완벽했다. 흰색 야회복을 입은 그녀는 붉은 기가 도는 금발에 아름다운 티아라를 얹었다. 볼 역시 완벽한 분홍빛을 뽐냈다.
하지만 다른 신부들과 차이가 있었다면, 타냐는 일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쁨의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모든 걸 꾹 참는 모습도 아니었다.
'첫 번째 사진'이 주는 느낌 때문에 첫 사진들이 유행했던 것을 다들 기억하리라. 신부가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처음 본 신랑의 얼굴을 담아내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 굉장히 달달하게 나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를 바라보는 게 처음인 것 같다고 느낀 '첫 번째 사진'을 담아내고 말았다.
마셀은 아름다운 신부 모습에 감격한 것 같았지만, 자신의 손을 꼭 붙잡는 신랑을 바라보는 타냐의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마셀이 타냐의 볼에 키스하려고 몸을 기울일 때 움찔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내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정략결혼은 다른 나라나 다른 문화에서만 이뤄지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부분을 바로 잡을 때가 된 것 같다. 미국에서도 정략결혼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처녀'인 신부를 원하는 노인보다 '아직도 젖비린내 나는 고등학생'을 신부로 맞이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리고 나를 고용한 이번 결혼식도 아마 자주 일어날 것이다.
운 좋게 타냐가 신부대기실에 혼자 남아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열린 창문 옆에 앉아서 아직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손가락 사이로 굴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말을 걸면서 다가갔다, "불 필요해요?"
"괜찮아요. 담배 안 피우거든요. 그래도 피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고 들었는데, 진짜예요?" 인형 같은 파란 눈을 뽐내며 타냐가 물었다.
"기분도 나아지고 폐암과 인후암도 덤으로 주죠," 타냐의 손에 있던 담배를 가져가 불을 붙여 내가 피우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나쁜 예시니까 내가 하는 대로 하지 말고 내 말 들어요."
그 말에 아주 잠깐이지만 타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얼마나 자주 피워요?"
"그날그날 다르죠. 보통 2-3개비 정도예요. 힘든 날은 더 피고." 나는 담배 든 손을 내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타냐, 몇 살이에요?"
"19살이요. 몇 주 뒤면 20살 돼요. 제가 좀 동안이라서요," 타냐가 제 볼을 손가락으로 콕 찍으면서 말했다. "왜요?"
캐럴이 오는지 보려고 문을 확인한 다음 말했다. "타냐, 이거 원해서 하는 거 맞죠? 결혼 말이에요." 조용히 물었다.
타냐의 눈동자가 커졌다. "젠장, 감 좋네요," 타냐 역시 문을 흘긋대며 말했다, "해럴드... 새아빠가 꾸민 거예요. 아마 제멋대로 하도록 뒀다면 저는 15살 때 진작에 팔려 갔겠죠. 하지만 마셀이 계속 결혼을 연기했어요. 분명히 사업 때문이겠죠. 이번에도 1년 더 미루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새아빠가 다른 곳에서 제안이 왔다고 협박했거든요." 타냐가 부르르 떨더니 팔로 몸을 감싸고 말했다. "만약 제가 이 결혼을 따르지 않는다면 해럴드는 날 호적에서 파고 계좌도 모두 동결해버릴 거예요. 그럼 제겐 아무것도, 아무도 남지 않겠죠...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가방에서 내 명함 한 장을 꺼냈다. "뒤집어 봐요. 여성 쉼터 번호가 있으니까. 위험한 집안에서 탈출하려는 여성을 돕는 단체예요. 숨겨주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찾게 도와주거든요. 그 밑에 있는 번호는 내 번호예요. 혹시 대화가 필요하면 거기로 연락하면 돼요."
명함을 받은 타냐는 한동안 손에 꼭 쥐고 있더니 곧 속옷 안에 넣었다.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이네요," 타냐가 웅얼대듯 말했다.
"그러려고 노력해요," 내가 타냐의 어깨를 꼭 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들고 있던 담배를 창턱에 비벼 껐다. "오늘 밤중에라도 도망치고 싶다면 내게 화장실 가는 거 도와달라고 하세요. 식장에서 도망치는 신부를 만들어보자고요," 내가 농담하듯 말했다.
그 말에 타냐가 다시 한 번 웃었다. 때마침 캐럴이 방에 들어왔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서둘러, 이제 15분이면 식장 들어가야 해. 괜히 눈물 터뜨려서 얼룩덜룩하고 못생긴 얼굴로 들어가지 말고!" 신부의 엄마가 징징댔다. 타냐는 얼굴에 있던 웃음기를 싹 거두고 어머니를 따라서 나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내게 슬픈 눈빛을 보냈다.
결혼식 뒤에 감춰진 더러운 비밀을 몰랐더라면 아마 결혼식 자체만으로는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타냐는 결혼식 내내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신부 들러리도 타냐의 친구가 아니거나, 적어도 친한 사이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주례를 맡은 신부가 "신랑은 신부에게 키스하십시오," 라고 했을 때, 마셀이 그녀의 얼굴로 다가가기 전, 볼을 따라 흐르는 눈물 한 방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지하게 경찰에 신고할까 생각해봤지만, 그래봤자 그들이 뭘 어떻게 하겠어? 타냐는 한껏 움츠러들어서 다 괜찮다고 하겠지. 게다가 미성년자도 아니니까 마셀을 소아성애자라고 하거나 해럴드를 애 팔아 장사한다고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개떡 같은 것은 변함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타냐 인생 최악의 날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뿐이었다.
연회에서 캐럴이 사진과 관련해서 어찌나 징징대는지 머리카락을 뜯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신랑과 신부가 첫 댄스를 선보일 때,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춤추러 나온 타냐는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움직이며 마셀을 건드리는 것조차 머뭇댔다. 하지만 그때 마셀이 그녀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이후 타냐의 행동이 180도 뒤바뀌면서 타냐가 소리 없이 '정말로요?'라고 묻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말에 마셀이 고개를 끄덕였고, 결혼식이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웃지 않았던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걸리는 것을 봤다. 춤이 다 끝났을 무렵에는 오히려 분위기에 취했는지, 마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멜로디에 몸을 맡기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야말로 180도 바뀐 모습이었다. 이제 타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였고, 가장 들뜬 신부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심지어 춤이 끝나고 테이블에 앉은 후에는 그에게 고개를 기울여 볼에 키스하기도 했다. 이에 마셀도 얼마나 놀랐는지 그의 볼이 빨개질 정도였다.
혹시 마셀이 타냐의 마실 것에 이상한 흥분제라도 타서 저렇게 변한 것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할 무렵 캐럴이 내게 다가와 남편이 사라졌다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캐럴은 이 결혼식의 주인공이 딸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였고, 본인과 '해애애럴드'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징징댔다. 그 여자와 떨어지기 급했던 나는 해럴드를 찾아보겠다고 하고 빠져나왔다. 해럴드는 술을 과하게 마신 상태였기 때문에 분명히 화장실에서 토하거나 다른 여자와 일을 저지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뭐, 둘 중 하나겠지.
남자 화장실 앞에 섰더니 안에서 입을 헹구거나 무언가를 삼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윽, 역겨워, 나도 안다. 하지만 해럴드가 정말 다른 여자와 뻘짓을 하는 거라면 이렇게 찾아내서 징징대는 년의 하루를 망쳐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 나는 카메라를 준비한 채 화장실 문을 열었다.
내 눈이 해럴드 눈과 마주쳤다.
아니, 해럴드의 머리와 마주쳤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일까.
세면대에 놓인 머리는 비참한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화장실은 온통 피 칠갑이었고 잘린 신체 조각이 바닥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그 사이, 마셀은 입고 있던 턱시도를 벗어 던지고 해럴드의 팔을 삼키는 중이었다. 그것도 통째로.
상황이 이렇게 되니 혹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시던 샴페인에 이상한 약을 탄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간이라면 저런 식으로 턱을 늘릴 수 없다. 삼킬 때마다 팔이 목구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곧 해럴드의 손가락이 인사라도 하는 듯 살짝 흔들리며 그의 목구멍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나는 카메라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니, 방금 나는 신랑이 장인어른을 먹는 걸 봤다고. 고개를 치켜든 마셀의 눈은 흐리멍덩한 아까와 달리 갈색 점이 박히고 얇게 찢어진 동공으로 바뀐 상태였다. 그 눈이 나를 향하자 몸이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
"아, 정말 미안합니다. 잠시만요."
마셀은 비어있는 세면대로 가더니 먹은 것을 전부 게워냈다. 세면대 위로 무언가가 쨍그랑 소리 내며 떨어지는 것을 들었고, 곧 마셀이 물을 틀어서 모두 흘려보냈다. 당황스러운 듯 목을 가다듬은 그가 내게 접근하더니 나를 화장실 안으로 당겼다.
곧 죽으리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마셀은 대신 내 손바닥에 다이아몬드 몇 개를 올렸다. "카메라값이에요.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가 말했다.
"아하," 손바닥을 가득 채운 다이아몬드를 보며 대답 비슷한 소리를 냈다. 이거면 카메라 몇 대를 사고도 남을 것이다. "대체 왜..."
"해럴드를 먹었느냐고요? 아, 몇 년째 벼르던 거였거든요," 마셀이 휴지로 턱을 닦으면서 말했다. 피만 닦으면 피범벅인 나체로 서 있다는 사실도 같이 지워진다고 생각하나? "끔찍한 사람일수록 맛이 좋거든요. 당신은 정말 맛없겠네요. 아마 손톱 먹는 느낌이랑 비슷할 것 같아요. 하지만 상대방에 사람을 먹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딸을 희생양으로 바치는 몹쓸 놈은 마블링 넘치는 스테이크를 양념해서 미디엄 레어로 구운 것과 비슷한 맛이 나거든요."
맙소사.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은 이제 아주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것 같았다. "잠깐만요, 진짜 해럴드가..."
"그럼요," 마셀이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 "그 인간은 기회만 되면 또 똑같이 할 놈이죠. 내가 인간 뼈까지 다 소화한다면요."
나는 다이아몬드를 움켜쥐면서 말했다. "타냐를 해치지 않을 건가요?"
마셀이 고개를 힘차게 젓더니 말했다. "절대로요! 결혼을 미룬 이유도 타냐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해럴드가 점점 초조해하는 게 보이더군요. 타냐라면 기꺼이 돈을 낼 인간이 많았을 겁니다. 내가 제안한 금액이 다른 이의 3배는 훌쩍 넘지만요."
헐, 이제 점점 어지러워졌다. 나는 지금 화장실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신랑과 대화 중이다. 잠깐 화장실 밖을 살피던 내게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셀의 선한 호의를 받고 타냐를 도와줄 수 있으리라. "만약에 캐럴한테 남편이 화장실에 있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내 말에 마셀이 잠깐 의아해하더니 곧 이해한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해럴드의 머리를 들어서 화장실 칸 안으로 던졌다. 변기 물이 튀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낄낄대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사실 히스테리에 가까웠다. "어서 다녀와요, 여기서 기다릴게," 그가 해럴드의 남은 신체를 이리저리 발로 차며 말했다.
화장실을 떠나기 직전, 한 가지 더 물어봐야만 했다.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뭐예요?"
그러자 마셀이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직전,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피 칠갑으로 끔찍하긴 했지만 보통 사람의 모습이었던 그는 곧 뱀으로 변했다... 뭐, 나름 뱀이었다. 그의 신체는 아나콘다의 그것으로 바뀌었지만, 머리는 여전히 사람의 것이었다. 뱀의 혀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가 내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우습지만 당신이 맞췄으면 했어요. 나도 모르거든요."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복도에서 캐럴과 마주쳤다. "우리 그이 어디에 있죠?" 캐럴이 따지듯이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엄지손가락으로 어깨 너머로 보이는 화장실을 가리켰다. "속이 별로 안 좋은 모양이에요," 한껏 기분이 상한 망할년이 나를 밀어 넘어뜨리기 전에 대답했다.
화장실에서 비늘 달린 꼬리가 솟구쳐 나와 캐럴의 팔 부근을 찢고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는 것까지 구경한 다음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그날 밤,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은 알아서 해결됐다. 마셀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결혼식장으로 돌아왔고, 남자 화장실은 누군가가 현장을 발견한 후 그대로 폐쇄됐다. 타냐는 이제 비위 맞출 엄마가 사라져서 그런지 자기 방식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눈치였다. 나는 따로 챙겨온 보조 카메라로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을 빠짐없이 담았다. 캐럴과 해럴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고, 다시는 두 사람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게다가 마셀로부터 받은 다이아몬드 덕분에 훨씬 좋은 카메라를 장만할 수 있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날 본 결혼식은 절대 잊을 수 없지만, 무엇보다 내가 그 이야기를 여기에 나누고 싶었던 이유는 최근 타냐로부터 페이스북 친구 추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고객 친구 추가는 안 받는 주의지만 타냐는 예외로 두기로 했다. 타냐는 훨씬 좋아 보였다. 대학생이 된 그녀는 조각과 그림을 취미로 하는 듯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알려줬던 여성 쉼터에서 주기적으로 봉사활동도 하고 매주 금요일 밤이면 마셀의 친구 커플과 단체로 오락실에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보아하니 마셀이 펌프는 초고수지만 총게임은 젬병인 것 같았다.
최근에 올라온 사진은 마셀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활짝 웃는 그녀 손에는 초음파 사진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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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마셀 배불뚝이 노친네로 상상되다가 읽다보니 급 잘생기게 보정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맨틱하지 않아?
나는 가을 결혼식을 가장 좋아한다. 만약에 내가 결혼하게 된다면 가을에 하고 싶다. 내게 연락해온 것은 신부 측 부모로, 2주 뒤에 다가올 딸 결혼식 촬영을 맡기고 싶다고 했다. 원래 고용했던 사진 기사가 갑작스럽게 그만두는 바람에 딸의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한 사진으로 남겨 줄 대체 기사를 급하게 찾게 된 것이었다.
그들이 운이 좋았는지, 마침 나도 그날 일정이 없었다. 급하게 예약한 만큼 추가 금액을 세게 불렀지만, 신부 아버지가 차고 있는 롤렉스 시계를 보면 그리 부담되는 액수는 아니었으리라. 나는 가정형편을 잘 맞추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제대로 맞췄다. 시라이츠 일가는 돈이 차고도 넘치는 집안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일할 땐 편하다지만, 그렇다고 나를 고용한 가족을 모두 좋아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해럴드 시라이츠는 내가 한눈판다 싶으면 내 가슴을 음흉하게 쳐다봤고, 그 부인인 캐럴은 누가 봐도 퇴물로 전락한 트로피 와이프였다. 살면서 그런 성괴는 처음 본 것 같았다. 뭐, 성형이나 보톡스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정선이라는 게 있으니까.
신부 대신 그 부모가 나를 찾아오는 것을 자제했어야 했지만, 그땐 신부가 결혼식 준비하느라 바쁜 탓이라고 여기고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이 되었는데, 어... 결혼식에 들어가는 순간 내가 원치 않은 사건에 휘말렸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신부, 타냐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아니, 신부가 대체 몇 살이지?' 16살? 아니, 많이 봐줘도 이제 막 18살 갓 넘은 것 같았다. 20살은 절대 아니야. 속도위반으로 급하게 결혼하는 어린 친구들도 많이 봐왔다. 그리고 신랑을 봤다. 마셀 윈게이트. 그는 아무리 젊게 봐줘도 30살은 족히 넘어 보였다. 그리고 마셀은 뭐랄까... 분위기가 이상했다. 덩치가 어찌나 큰지 타냐에게는 거의 거인 같았고, 나마저 훌쩍 넘는 키였다. 말상 얼굴에 푹 꺼진 두 눈이 '아담스 패밀리'에 나오는 러치와 너무 닮았다.
그가 내게 악수를 청하며 자기소개를 했을 때, 나는 떨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하지만 수년간의 경력 덕분에 그가 청한 악수에 웃으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응대할 수 있었다.
타냐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은 전부 캐럴이 대신했는데, "머리가 더 풍성해 보이도록 만들어줘요," 라던가, "속눈썹이 정말 예쁜 아이니까 눈이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해줘요," 따위의 주문을 넣어댔다. 다행히 캐럴은 15분에 한 번씩 담배를 피우는 골초였기에 메이크업과 헤어 담당이 그 시간만큼은 제대로 일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타냐는 정말 완벽했다. 흰색 야회복을 입은 그녀는 붉은 기가 도는 금발에 아름다운 티아라를 얹었다. 볼 역시 완벽한 분홍빛을 뽐냈다.
하지만 다른 신부들과 차이가 있었다면, 타냐는 일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쁨의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모든 걸 꾹 참는 모습도 아니었다.
'첫 번째 사진'이 주는 느낌 때문에 첫 사진들이 유행했던 것을 다들 기억하리라. 신부가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처음 본 신랑의 얼굴을 담아내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 굉장히 달달하게 나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를 바라보는 게 처음인 것 같다고 느낀 '첫 번째 사진'을 담아내고 말았다.
마셀은 아름다운 신부 모습에 감격한 것 같았지만, 자신의 손을 꼭 붙잡는 신랑을 바라보는 타냐의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마셀이 타냐의 볼에 키스하려고 몸을 기울일 때 움찔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내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정략결혼은 다른 나라나 다른 문화에서만 이뤄지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부분을 바로 잡을 때가 된 것 같다. 미국에서도 정략결혼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처녀'인 신부를 원하는 노인보다 '아직도 젖비린내 나는 고등학생'을 신부로 맞이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리고 나를 고용한 이번 결혼식도 아마 자주 일어날 것이다.
운 좋게 타냐가 신부대기실에 혼자 남아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열린 창문 옆에 앉아서 아직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손가락 사이로 굴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말을 걸면서 다가갔다, "불 필요해요?"
"괜찮아요. 담배 안 피우거든요. 그래도 피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고 들었는데, 진짜예요?" 인형 같은 파란 눈을 뽐내며 타냐가 물었다.
"기분도 나아지고 폐암과 인후암도 덤으로 주죠," 타냐의 손에 있던 담배를 가져가 불을 붙여 내가 피우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나쁜 예시니까 내가 하는 대로 하지 말고 내 말 들어요."
그 말에 아주 잠깐이지만 타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얼마나 자주 피워요?"
"그날그날 다르죠. 보통 2-3개비 정도예요. 힘든 날은 더 피고." 나는 담배 든 손을 내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타냐, 몇 살이에요?"
"19살이요. 몇 주 뒤면 20살 돼요. 제가 좀 동안이라서요," 타냐가 제 볼을 손가락으로 콕 찍으면서 말했다. "왜요?"
캐럴이 오는지 보려고 문을 확인한 다음 말했다. "타냐, 이거 원해서 하는 거 맞죠? 결혼 말이에요." 조용히 물었다.
타냐의 눈동자가 커졌다. "젠장, 감 좋네요," 타냐 역시 문을 흘긋대며 말했다, "해럴드... 새아빠가 꾸민 거예요. 아마 제멋대로 하도록 뒀다면 저는 15살 때 진작에 팔려 갔겠죠. 하지만 마셀이 계속 결혼을 연기했어요. 분명히 사업 때문이겠죠. 이번에도 1년 더 미루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새아빠가 다른 곳에서 제안이 왔다고 협박했거든요." 타냐가 부르르 떨더니 팔로 몸을 감싸고 말했다. "만약 제가 이 결혼을 따르지 않는다면 해럴드는 날 호적에서 파고 계좌도 모두 동결해버릴 거예요. 그럼 제겐 아무것도, 아무도 남지 않겠죠...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가방에서 내 명함 한 장을 꺼냈다. "뒤집어 봐요. 여성 쉼터 번호가 있으니까. 위험한 집안에서 탈출하려는 여성을 돕는 단체예요. 숨겨주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찾게 도와주거든요. 그 밑에 있는 번호는 내 번호예요. 혹시 대화가 필요하면 거기로 연락하면 돼요."
명함을 받은 타냐는 한동안 손에 꼭 쥐고 있더니 곧 속옷 안에 넣었다.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이네요," 타냐가 웅얼대듯 말했다.
"그러려고 노력해요," 내가 타냐의 어깨를 꼭 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들고 있던 담배를 창턱에 비벼 껐다. "오늘 밤중에라도 도망치고 싶다면 내게 화장실 가는 거 도와달라고 하세요. 식장에서 도망치는 신부를 만들어보자고요," 내가 농담하듯 말했다.
그 말에 타냐가 다시 한 번 웃었다. 때마침 캐럴이 방에 들어왔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서둘러, 이제 15분이면 식장 들어가야 해. 괜히 눈물 터뜨려서 얼룩덜룩하고 못생긴 얼굴로 들어가지 말고!" 신부의 엄마가 징징댔다. 타냐는 얼굴에 있던 웃음기를 싹 거두고 어머니를 따라서 나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내게 슬픈 눈빛을 보냈다.
결혼식 뒤에 감춰진 더러운 비밀을 몰랐더라면 아마 결혼식 자체만으로는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타냐는 결혼식 내내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신부 들러리도 타냐의 친구가 아니거나, 적어도 친한 사이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주례를 맡은 신부가 "신랑은 신부에게 키스하십시오," 라고 했을 때, 마셀이 그녀의 얼굴로 다가가기 전, 볼을 따라 흐르는 눈물 한 방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지하게 경찰에 신고할까 생각해봤지만, 그래봤자 그들이 뭘 어떻게 하겠어? 타냐는 한껏 움츠러들어서 다 괜찮다고 하겠지. 게다가 미성년자도 아니니까 마셀을 소아성애자라고 하거나 해럴드를 애 팔아 장사한다고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개떡 같은 것은 변함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타냐 인생 최악의 날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뿐이었다.
연회에서 캐럴이 사진과 관련해서 어찌나 징징대는지 머리카락을 뜯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신랑과 신부가 첫 댄스를 선보일 때,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춤추러 나온 타냐는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움직이며 마셀을 건드리는 것조차 머뭇댔다. 하지만 그때 마셀이 그녀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이후 타냐의 행동이 180도 뒤바뀌면서 타냐가 소리 없이 '정말로요?'라고 묻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말에 마셀이 고개를 끄덕였고, 결혼식이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웃지 않았던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걸리는 것을 봤다. 춤이 다 끝났을 무렵에는 오히려 분위기에 취했는지, 마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멜로디에 몸을 맡기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야말로 180도 바뀐 모습이었다. 이제 타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였고, 가장 들뜬 신부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심지어 춤이 끝나고 테이블에 앉은 후에는 그에게 고개를 기울여 볼에 키스하기도 했다. 이에 마셀도 얼마나 놀랐는지 그의 볼이 빨개질 정도였다.
혹시 마셀이 타냐의 마실 것에 이상한 흥분제라도 타서 저렇게 변한 것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할 무렵 캐럴이 내게 다가와 남편이 사라졌다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캐럴은 이 결혼식의 주인공이 딸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였고, 본인과 '해애애럴드'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징징댔다. 그 여자와 떨어지기 급했던 나는 해럴드를 찾아보겠다고 하고 빠져나왔다. 해럴드는 술을 과하게 마신 상태였기 때문에 분명히 화장실에서 토하거나 다른 여자와 일을 저지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뭐, 둘 중 하나겠지.
남자 화장실 앞에 섰더니 안에서 입을 헹구거나 무언가를 삼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윽, 역겨워, 나도 안다. 하지만 해럴드가 정말 다른 여자와 뻘짓을 하는 거라면 이렇게 찾아내서 징징대는 년의 하루를 망쳐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 나는 카메라를 준비한 채 화장실 문을 열었다.
내 눈이 해럴드 눈과 마주쳤다.
아니, 해럴드의 머리와 마주쳤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일까.
세면대에 놓인 머리는 비참한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화장실은 온통 피 칠갑이었고 잘린 신체 조각이 바닥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그 사이, 마셀은 입고 있던 턱시도를 벗어 던지고 해럴드의 팔을 삼키는 중이었다. 그것도 통째로.
상황이 이렇게 되니 혹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시던 샴페인에 이상한 약을 탄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간이라면 저런 식으로 턱을 늘릴 수 없다. 삼킬 때마다 팔이 목구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곧 해럴드의 손가락이 인사라도 하는 듯 살짝 흔들리며 그의 목구멍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나는 카메라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니, 방금 나는 신랑이 장인어른을 먹는 걸 봤다고. 고개를 치켜든 마셀의 눈은 흐리멍덩한 아까와 달리 갈색 점이 박히고 얇게 찢어진 동공으로 바뀐 상태였다. 그 눈이 나를 향하자 몸이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
"아, 정말 미안합니다. 잠시만요."
마셀은 비어있는 세면대로 가더니 먹은 것을 전부 게워냈다. 세면대 위로 무언가가 쨍그랑 소리 내며 떨어지는 것을 들었고, 곧 마셀이 물을 틀어서 모두 흘려보냈다. 당황스러운 듯 목을 가다듬은 그가 내게 접근하더니 나를 화장실 안으로 당겼다.
곧 죽으리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마셀은 대신 내 손바닥에 다이아몬드 몇 개를 올렸다. "카메라값이에요.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가 말했다.
"아하," 손바닥을 가득 채운 다이아몬드를 보며 대답 비슷한 소리를 냈다. 이거면 카메라 몇 대를 사고도 남을 것이다. "대체 왜..."
"해럴드를 먹었느냐고요? 아, 몇 년째 벼르던 거였거든요," 마셀이 휴지로 턱을 닦으면서 말했다. 피만 닦으면 피범벅인 나체로 서 있다는 사실도 같이 지워진다고 생각하나? "끔찍한 사람일수록 맛이 좋거든요. 당신은 정말 맛없겠네요. 아마 손톱 먹는 느낌이랑 비슷할 것 같아요. 하지만 상대방에 사람을 먹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딸을 희생양으로 바치는 몹쓸 놈은 마블링 넘치는 스테이크를 양념해서 미디엄 레어로 구운 것과 비슷한 맛이 나거든요."
맙소사.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은 이제 아주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것 같았다. "잠깐만요, 진짜 해럴드가..."
"그럼요," 마셀이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 "그 인간은 기회만 되면 또 똑같이 할 놈이죠. 내가 인간 뼈까지 다 소화한다면요."
나는 다이아몬드를 움켜쥐면서 말했다. "타냐를 해치지 않을 건가요?"
마셀이 고개를 힘차게 젓더니 말했다. "절대로요! 결혼을 미룬 이유도 타냐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해럴드가 점점 초조해하는 게 보이더군요. 타냐라면 기꺼이 돈을 낼 인간이 많았을 겁니다. 내가 제안한 금액이 다른 이의 3배는 훌쩍 넘지만요."
헐, 이제 점점 어지러워졌다. 나는 지금 화장실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신랑과 대화 중이다. 잠깐 화장실 밖을 살피던 내게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셀의 선한 호의를 받고 타냐를 도와줄 수 있으리라. "만약에 캐럴한테 남편이 화장실에 있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내 말에 마셀이 잠깐 의아해하더니 곧 이해한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해럴드의 머리를 들어서 화장실 칸 안으로 던졌다. 변기 물이 튀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낄낄대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사실 히스테리에 가까웠다. "어서 다녀와요, 여기서 기다릴게," 그가 해럴드의 남은 신체를 이리저리 발로 차며 말했다.
화장실을 떠나기 직전, 한 가지 더 물어봐야만 했다.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뭐예요?"
그러자 마셀이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직전,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피 칠갑으로 끔찍하긴 했지만 보통 사람의 모습이었던 그는 곧 뱀으로 변했다... 뭐, 나름 뱀이었다. 그의 신체는 아나콘다의 그것으로 바뀌었지만, 머리는 여전히 사람의 것이었다. 뱀의 혀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가 내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우습지만 당신이 맞췄으면 했어요. 나도 모르거든요."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복도에서 캐럴과 마주쳤다. "우리 그이 어디에 있죠?" 캐럴이 따지듯이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엄지손가락으로 어깨 너머로 보이는 화장실을 가리켰다. "속이 별로 안 좋은 모양이에요," 한껏 기분이 상한 망할년이 나를 밀어 넘어뜨리기 전에 대답했다.
화장실에서 비늘 달린 꼬리가 솟구쳐 나와 캐럴의 팔 부근을 찢고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는 것까지 구경한 다음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그날 밤,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은 알아서 해결됐다. 마셀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결혼식장으로 돌아왔고, 남자 화장실은 누군가가 현장을 발견한 후 그대로 폐쇄됐다. 타냐는 이제 비위 맞출 엄마가 사라져서 그런지 자기 방식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눈치였다. 나는 따로 챙겨온 보조 카메라로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을 빠짐없이 담았다. 캐럴과 해럴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고, 다시는 두 사람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게다가 마셀로부터 받은 다이아몬드 덕분에 훨씬 좋은 카메라를 장만할 수 있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날 본 결혼식은 절대 잊을 수 없지만, 무엇보다 내가 그 이야기를 여기에 나누고 싶었던 이유는 최근 타냐로부터 페이스북 친구 추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고객 친구 추가는 안 받는 주의지만 타냐는 예외로 두기로 했다. 타냐는 훨씬 좋아 보였다. 대학생이 된 그녀는 조각과 그림을 취미로 하는 듯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알려줬던 여성 쉼터에서 주기적으로 봉사활동도 하고 매주 금요일 밤이면 마셀의 친구 커플과 단체로 오락실에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보아하니 마셀이 펌프는 초고수지만 총게임은 젬병인 것 같았다.
최근에 올라온 사진은 마셀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활짝 웃는 그녀 손에는 초음파 사진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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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마셀 배불뚝이 노친네로 상상되다가 읽다보니 급 잘생기게 보정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맨틱하지 않아?